모현의좋은사람들 모임 이끌며 보람

‘모현의 좋은 사람들’이 가는 곳에는 정낙춘씨(52·처인구 모현면 일산리)와 안순예씨(49) 부부가 늘 함께 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한 각종 봉사활동을 실시하고 있는 ‘모현의 좋은 사람들’이 결성된 것은 올해로 4년째. 남편 정낙춘씨는 이 모임의 대표로, 아내 안순예씨는 인터넷 카페의 카페지기로 모임을 이끌어가고 있다.
봉사활동에 뜻을 같이 하는 모현지역 주민 40여명이 참여하고 있는 모임에는 부부 참여자로는 이건영 전 시의원 부부와 함께 정 대표 부부가 유일하다.


음식 봉사에도 역할 분담

이 모임은 어쩌다 한번 갖는 활동으로 생색만 내는 봉사단체가 아니다. 모현지역의 소외된 곳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굶주리지 않도록’ 이웃을 돌보는 것이 이들의 주요 업무. 회원들이 매달 회비를 거둬 김치와 떡과 밑반찬을 만들어 나눠주고 있다. 두 달에 한번은 정기적으로, 농산물을 찬조 받게 될 경우에는 그것을 주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수시로 이웃을 찾아간다.
반드시 싱싱하고 좋은 재료만을 고집하는 것과 봉사대상자의 현실을 고려하는 것이 음식봉사의 철칙. 그래서 ‘좋은 사람들’은 다른 봉사단체에서 김치를 돌리는 김장철에는 김치를 담그지 않고 고기를 사서 나눠준다. 오히려 요즘 같이 장마가 끝나 채소 값이 폭등했을 때 더 많은 양의 김치를 담근다. 2년 전 배추 값이 포기당 6000원까지 치솟아 일반 가정에서도 김치 담그기를 망설일 때도 이들은 변함없이 두 달에 한번 갖는 김치봉사를 실시했다.

이들이 가는 곳은 주변 사회복지시설과 독거노인 등 모현지역의 어려운 가정들. 시각장애인시설인 소망의집과 소망천사원, 장애인단체인 포곡밀알선교원 등이 이들이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곳이다. 또 중증장애아를 돌보는 요한의집에 목욕봉사활동도 나가고 있다.

“가장 하기 어렵지만 제일 재미있는 일이 음식봉사예요. 메뉴를 짜고 장을 보고 손 가는 일이 많지요. 그래도 받는 분들이 즐거워하고 준비하는 우리도 잔칫날처럼 떠들썩해서 재미가 나요. 음식 만들 때는 회원들이 보통 20여명 정도 모이는데 어떤 일에든 싫은 내색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다들 일도 잘하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서 전혀 힘든 줄 몰라요.”

음식봉사에 남자회원의 역할은 별로 중요할 것 같지 않지만, 정낙춘씨는 의외로 가장 바쁜 사람이다. 차량운전부터 장보기, 김치 버무리기, 음식 배달하기까지 전 과정이 그의 손을 거친다. 물론 가는 곳마다 부인 안순예씨가 함께 한다.

이들 부부에게는 ‘좋은 사람들’에서 실시하는 봉사활동이 끝이 아니다. 교육활동에 참가하는 장애아동들을 수송하는 차량봉사도 매주 실시하고 있다. 또 최근 발족된 모현적십자회에 남편과 아내가 각각 회장과 총무를 맡아 일하고 있다. 모현적십자회는 ‘좋은 사람들’이 모태가 되어 설립됐다.
부부가 요직(?)은 모두 차지한 듯싶지만 이 부부가 있어야 봉사현장의 활기도 살아난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얘기. 두 단체의 회원이 중복돼 가족처럼 편안한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부부를 봉사에 전념하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부부의 스케줄의 대부분은 봉사활동에 맞춰져 있다. 상시 활동이 없는 경우에도 긴급한 상황이 발생해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회원을 소집하고 어디든 달려간다. 지난 2일에는 수해지역인 강원도 평창을 방문, 복구공사를 돕기도 했다.

“저는 이 나이가 되도록 골프를 친다든지 남들처럼 취미활동을 가져본 일이 없어요. 오직 취미가 있다면 봉사하는 거 한 가지에요. 내가 즐겁고 좋으니까 하는 거죠 남이 시키면 절대로 못하는 게 봉사활동이에요. 이것도 일종의 자기만족이지요.”

가난한 성장과정을 거쳐 자수성가하기까지 이를 악물고 살아온 만큼 정낙춘씨에게 나누고 베풀 수 있는 지금의 삶은 행복이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이었지만 시골에서 셋집에 살던 사람은 드물었어요. 그런데 우리집이 그런 경우였지요. 먹을 게 없어 수제비를 도시락에 싸갖고 다녔어요. 국물이 들어가지 않게 건져낸 수제비가 퉁퉁 불었는데 아이들이 어찌나 놀리던지 산소 뒤편으로 올라가 몰래 먹곤 했지요. 도시락마저 싸가지 못한 경우도 허다 하구요. 배고팠던 사람만이 배고픈 자의 심정을 알 수 있어요.”

카페 1돌 자축연 열어

그가 나눠주는 것이 단순히 먹을거리가 아님을 그는 말하고 있었다. ‘좋은 사람들’이 다양한 봉사활동 가운데서도 음식봉사에 정성을 기울이는 것과 매달 결식 중학생들의 급식보조비를 지원하고 있는 이유가 모두 설명되는 대목이다.

“많은 보람도 느끼지요. 앞이 보이지 않는 분들에게 고기를 구워 드리던 날, 장애아동의 대소변을 받아가면서 하룻밤을 지새우던 날, 폭설로 무너진 양계장에서 내 축사가 무너지던 때의 아픔이 떠올라 위험을 무릅쓰고 지붕 수리 하던 날 이 모두가 생생하게 마음에 남아 있어요.”

그러나 봉사현장이라고 늘 보람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자식들이 돌보지 않아 홀로 사는 노인들이 굶고 있는 현실이 때로 그를 분노하게 한다.

“먹을 것을 들고 어느 노인 분을 찾아갔는데 집 앞에 자가용 두 대가 있는 거예요. 그게 자녀분들 거라고 하더군요. 분명 누구 한 사람 돌보는 이가 없다고 들었는데, 처음에는 집을 잘못 찾은 줄 알았어요. 아들이 알콜중독자라 부모가 어렵게 산다는 얘기를 나중에야 들었어요. 멀쩡한 자식들이 있는데도 부모가 배를 주리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자식들이 돌보지 않는데 우리마저 외면하면 그분들 어디 기댈 데가 없어요.”

젊은이들일수록 봉사활동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도 부부에게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정낙춘씨 부부는 생업에 매달려 빠듯하게 살던 시절, 중년 이후에는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갖자고 다짐해 온 그대로 그렇게 살고 있다. 축산업에 종사해오다 생업을 잠시 접고 있는 부부는 온종일 봉사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요즘 마음껏 나누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봉사활동을 마친 후 이웃이기도 한 회원들과 함께 어울려 고단함을 위로하고 서로의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것도 봉사활동의 특별한 보너스다.

현장에서 돌아오는 날은 안순예씨가 찍어온 사진과 글을 카페에 올린다. 카페에서 만나 서로를 격려하는 이웃들. 그들이 달아놓은 꼬리글 한 개 한 개가 다시금 봉사현장으로 달려갈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준다. 남편 사랑을 아이디에 담아‘춘이 사랑’으로 카페를 꾸려가고 있는 안순예씨는 그래서 더욱 애정을 갖고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금년 5월에는 회원들이 우리 집에 모두 모여 카페 개설 1주년 돌잔치를 가졌어요. 케이크도 사다놓고 신나게 자축파티를 열었지요.”

그는 얼마 전부터 배우기 시작한 컴퓨터 실력을 총동원해 카페를 꾸미는데 초보의 정성을 기울이고 있단다.

봉사활동 초기에는 회원 모집도 쉽지 않았지만 소문을 듣고 아름아름 이웃들이 모여 들어 이제는 제법 조직의 면모를 갖췄다. 회원 가운데는 팔순의 노인도 있다. 직접 몸으로 봉사하기는 어려우나 후원은 빠지지 않겠다며 다달이 2만원의 쌈짓돈을 보내오고 있다.

봉사활동을 함께 하면서 부부의 대화도 풍부해졌다. 이웃의 기쁨과 슬픔을 나눠가지는데서 오는 삶의 열매인 것이다.

“저희가 얻은 가장 큰 결실은 우리가 만난 이웃들이에요. 봉사활동을 하지 않았을 때는 단지 그냥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지나지 않았지만 자원봉사를 하며 서로를 알아가다 보니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한 이웃이라는 걸 깨닫게 됐죠. 이웃이 아니라 이젠 가족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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