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요양소 29일 문열어

세상이 만만했던 37세의 한 남자가 있었다.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와 같은 운명을 거부하고 출세의 길을 택했던 남자. 그는 미국 펜타곤 국방성 외국연구원의 교수로 임명돼 출국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찾아온 실명은 그에게서 모든 것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재산과 아내와 두 딸이 그에게서 떠나갔다. 서울역 주변을 전전하며 구두닦이 소년들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연명해야 했던 그. 이후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 안요한목사
시각장애인 목사의 삶을 다룬 이청준씨의 실화소설이며 영화로도 상영된 ‘낮은 데로 임하소서’ 의 주인공 안요한 목사(67·사진)가 원삼면 사암리에 노인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요양소를 세웠다.

오는 29일 개원예배를 시작으로 문을 여는 ‘새 빛 요한의 집’(031-321-9862)은 시각장애 노인 전문시설로는 국내 최초로 건립돼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대지 700평, 연건평 430평 규모에 본관과 행정동, 기숙사동을 갖추고 있는 이 요양소는 30명의 무의탁 시각장애인들이 생활하는 무료시설로 운영될 예정.

폭염이 쏟아지는 8월의 휴일 오후 이 시설의 본관 지하 강당에서 안요한 목사를 만났다.

“30년 전 품었던 꿈이 이제 이뤄졌습니다. 실명한지 얼마 안 돼 한 양로원을 방문한 적이 있어요. 거기서 맹인 노인을 만났지요. 그가 나를 붙들고 우는 거예요.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씻지도 먹지도 못하는 불편함이 말로 다 할 수 없다고 하면서. 그때 나는 우리들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요양소 건물 안에 일제히 붙어있는 점자유도판과 점자안내판, 기둥에 부착된 완충용 쿠션, 거울 없는 욕실 등이 이곳이 시각장애인 전문 시설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밖에도 물리치료실, 야외농장, 산책로 등이 갖춰졌다.

▲ 원삼면 사암리에 세워진‘새 빛 요한의 집’은 국내 최초의 노인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문시설로 건립, 무료로 운영된다.
마음 같아서는 큰 병원이 있는 도심지에 시설을 세우고 싶었지만 경제적 형편과 주변여건을 감안하여 찾아든 곳이 용담저수지 인근. 그러나 2001년 착공한 공사가 5년여를 끌기까지 2번의 소송을 치르는 어려운 고비를 넘겨야 했다. 장애시설이 들어선다는 사실에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섰던 것.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우리 사회에 심하다보니 그분들이 잘 몰라서 그런 거지요. 사실은 우리 시각장애우들이 지역사회에 줄 것이 많습니다. 대부분이 마사지, 안마, 침술 한방치료 등에 전문가이기 때문에 주민들을 대상으로 봉사할 생각입니다. 요양소를 중심으로 반경 2km 이내의 주민을 조사해 보니 남자 노인이 500명, 여자 노인이 700명이에요. 이분들을 대상으로 경로대학도 열 계획입니다. 주위에서 어떻게 보시든 끝까지 사랑하고 베풀려고 합니다. 우리가 도움을 받기 보다는 마을에 도움이 되고 싶어요.”

그가 모든 일에 가장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은 ‘영혼구원’. 갈등을 불러일으켰던 마을 주민들을 사랑할 수 있는 힘도 여기서 비롯된다.

요양소에는 또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가족과 이웃에게 소외된 노인들도 받아들여 “적은 식구들이 여유 있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갈 계획이다.

안목사가 처음 이웃에게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시각장애인이 된 이후. 자신을 먹여주고 돌봐주었던 구두닦이 소년들, 교복 입는 것이 소원이었던 그들을 위해 야학을 세워 배움의 길을 열어 주었다. 이 야학을 통해 배출된 학생만 827명. 지금은 사회 각 분야에서 기라성 같은 위치에 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야학을 기점으로 그는 서울 방배동에 사회복지법인 새빛복지재단과 새빛맹인선교회, 시각장애인재활원 등을 잇달아 설립, 운영하고 있다. 또 시각장애인 목사가 된 이후 국내외 7000곳을 다니며 집회 강사로 활동해 왔다.

정상의 눈을 가진 이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그는 “육신의 눈이 감긴 대신 영혼의 눈이 떠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수술하면 개안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대로 맹인의 삶을 선택했다.

“눈으로 본다고 행복합니까? 물론 저도 보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하지요.
그러나 맹인이 되어야만 맹인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맹인들에겐 내가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길을 주신거라 믿어요.”

그래서 그는 ‘행복한 맹인’‘행복한 목사’ 라고 어디서나 주저 없이 자신을 소개한다.

안요한 목사는 ‘새 빛 요한의 집’에 대한 자원봉사활동과 후원 등 지역사회의 관심을 당부했다. 오는 17일 오후 7시에는 서울 서초구민회관에서 가수출신 조하문 목사의 개원축하콘서트도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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