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각 나무그늘 아래서 사람들은 목침을 베고 한가롭게 낮잠을 즐기고 있다.
ⓒ 조찬현
전남 여수시 소라면 사곡리 장척마을. 귀목나무 고목 8그루가 뙤약볕에 서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정각 나무그늘 아래서 사람들은 목침을 베고 한가롭게 낮잠을 즐기고 있다. 오가는 나그네와 마을 사람들의 쉼터다. 마을사람들은 이 나무가 "1946년에 심었응께 금년이 딱 환갑이여"라고 말하며 나무의 수령이 60년이나 됐다고 얘기한다.

모세의 기적 복개도, 청정갯벌은 다양한 바다생물들의 보고

▲ 장척 갯마을 해변 가에는 열대여섯 명의 아낙네들이 한데 모여 대나무에 그물을 묶고 있다. 새고막 종패를 붙이는 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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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척 갯마을 해변 가에는 열대여섯 명의 아낙네들이 한데 모여 대나무에 그물을 묶고 있다. 새고막 종패를 붙이는 그물이다. 바다는 날물 이라 무인도인 모개도와 장구도 밥그릇뚜껑을 닮은 복개도 섬이 발목을 드러내놓고 첨벙대고 있다.

장척마을 앞의 무인도인 복개도는 하루에 두 번씩 물이 갈라지는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다. 바다가 갈라지면 아낙네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복개도로 향한다. 섬에는 바지락과 고막 뿔게가 많이 살고 있다. 낙지도 제법 쏠쏠하게 잡힌다. 모개도와 장구도 사이를 고막 채취선이 오가며 고막 종패와 성패를 잡고 있다.

▲ 도둑게는 가끔씩 집 안마당까지도 찾아와 부뚜막에서 음식물찌꺼기를 훔쳐 먹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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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가에 쌓아둔 대나무사이를 도둑게가 바삐 지나간다. 민물에 사는 두둑게를 제자리에서 뱅뱅 돈다고 마을사람들은 뱅게라고 부른다. 도둑게는 가끔씩 집 안마당까지도 찾아와 부뚜막에서 음식물찌꺼기를 훔쳐 먹기도 한다. 바닷가 산허리에 서식구멍을 만들고 살아가는데 서식구멍이 뱀 구멍을 닮았다고 해서 뱀게로도 불린다. 할머니는 게가 뱀과 입 맞춰 태어나서 뱀게라며 웃는다.

사진을 찍으려 다가가자 도둑게는 자꾸만 도망간다. "제발! 잠깐만 서다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주머니는 그런 아저씨를 보고 "게가 뭐랐게요? 하며 생뚱맞은 질문을 한다. "예?" 빨리 대답을 못하고 망설이자 "너 같으면 서겠니?" 그러면서 도망가는 거라며 박장대소를 한다.

갯벌이 훤히 드러난 바다에는 어선 한척이 밧줄을 길게 늘어뜨린 채 닻을 내렸다. 홀로 외롭게 갯벌을 지키고 있다. 갈라진 바닷길에는 바다에 사는 생물들을 관찰하기에 아주 그만이다. 크고 작은 수많은 꽃게가 구멍 속을 들락거린다.

숨죽이고 곁에 앉아 한참을 기다리면 녀석들은 살며시 고개를 내민다.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 인기척에 '후다닥~' 재빠르게 사라지곤 한다. 모래밭과 갯벌에는 고둥이 조심스럽게 기어간다. 주변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다양한 바다생물들이 수없이 많이 살고 있다.

▲ 모래사장에서 꽃게가 집게발로 먹이를 부지런히 먹고 있다. 하얗고 커다란 집게발을 앞세우고 조그마한 집게발로 쉴 새 없이 주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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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사장에서 꽃게가 집게발로 먹이를 부지런히 먹고 있다. 하얗고 커다란 집게발을 앞세우고 조그마한 집게발로 쉴 새 없이 주워 먹는다. 특이한 사실은 어떤 게는 커다란 집게발이 오른쪽에 있고 또 어떤 게는 왼쪽에 집게발이 있다.

게는 경계심이 아주 강하다. 구멍 속에서 나오다말고 눈자루를 높이 세우고 주변을 살피다 조그마한 인기척에도 이내 구멍으로 사라지곤 한다. 게는 집과 멀리 떨어져있다가도 인기척이 나면 재빠르게 각자 집을 찾아간다. 어떻게 찾아가는지 그 모습이 참 신기하기만 하다.

"묘하더라고. 색깔이 변한 것도 있드라고" 김대용(66세)씨는 집게발이 하얀 게도 있고, 빨간 게도 있다고 말한다. 또한 집게발이 오른쪽에 있는 것은 수컷이고, 집게발이 왼쪽에 있는 것은 암컷이라고 알려준다.

장척갯마을 김씨의 바다사랑과 눈물겨운 삶

▲ 장척마을 이장을 5년간 역임했으며 현재는 반장을 맡아 동네 궂은일까지 다 챙기는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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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에는 석설구라고 부르는 아주 조그마한 조개가 많이 산다. 흡사 민물에 사는 갱조개를 아주 많이 빼닮았다. 겨울철에는 바다오리 등의 먹이가 된다고 김씨는 말한다. 28가구가 사이좋게 모여 사는 장척마을은 마을에 대소사가 있거나 갯일을 할 때는 마을 공동 작업을 한다. 작업장은 유머와 노래 소리가 그칠 새가 없이 흥겹다.

마을 젊은 사람들은 시내의 식당이나 찻집에서 일을 하고 바다 일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나이 드신 어르신이다. 함께 일하는 김대용(66세)씨는 장척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라고 한다. 7대째 이 마을에서 사는 김씨는 농사일보다는 갯일을 주로 한다. 바지락과 고막양식을 한다.

"요즘은 소득이 얼마 안 돼. 판로가 없어서 제값도 못 받고…" 김씨는 양식업의 발달로 생산량은 많아지는데 어패류를 사가는 사람이 별로 없다며 안타까워한다. 한참 잘 나갈 때는 장척마을 호당 고막과 바지락으로 5백만 원의 소득을 올렸는데 지금은 2백만 원 남짓도 어렵단다.

"그런께로 힘들제. 일 있을 때는 공사판의 노가다도 다니고 그란디. 일이 없어 노는 때가 더 많아. 이 일도 길어야 한 달. 이제 며칠 안 남았어."고막 종패그물 작업은 외지인의 부탁으로 하루 5만원의 노임을 받고 일하고 있다. 여자는 하루 일당이 4만5천이다.

작업장에서 일하던 할머니가 갑자기 소리 높여 노래를 한다. "돈 갖고도 못갑니다. 하늘에~" "왜, 못 간다요?" 곁에 있는 아주머니가 묻자 "아이고! 그게 아니여"라며 할머니는 "빈주먹 쥐고 나와서 빈주먹으로 가는 게 인생"이라고 말한다. "백발이 돼 불고~" 할머니의 노래는 또다시 이어진다.

김씨는 매년 연말이면 여행객들이 장척마을을 아주 많이 찾는다고 한다. "지는 해 볼라고 얼마나 많이 오는지. 그때 오면 참 멋있어" 해지는 모습이 그야말로 장관이라며 자랑을 늘어놓는다.

장척마을 이장을 5년간 역임했으며 현재는 반장을 맡아 동네 궂은일까지 다 챙기는 김씨에게 바다와 함께 더불어 살아온 이야기를 해 달라 부탁을 하자 "세상 살아온 이야길 할라치면 참말로 기가 막히제. 몸이 아파서 11년간이나 고생고생 했어" 김씨는 슬하에 2남 3녀인 5남매를 뒀다. "다 객지 나가 불고 두 내외만 살고 있어. 농사는 묵고 살라고 쪼끔 짓고 갯일을 주로 해."

지난 1975년. 김씨는 서른여섯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에 걸려 11년간이나 투병생활을 했다. "아 그때는 정말 죽게 돼 부렀어" 각혈을 하고 병세가 위중해 결핵병원에서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그런 그가 이렇게 오늘날까지 살아 있는 것은 순전히 아내의 유별난 지극정성과 바다 덕분이 아니겠느냐고 한다.

"나도 모르제 무었으로 나았는지. 그때는 폐가 하얗게 구멍이 숭숭 뚫리고 숨쉬기도 곤란해 부렀어. 병원에서 더 이상 살기 힘들다고 투약도 중지하고 치료를 안 해줘 싸우기도 많이 했어"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약을 먹으며 최선을 다했단다. 그의 그런 노력으로 드디어 11년 만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김씨는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날(1986년 8월 20일)의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간 늙은 시부모 모시고 5남매를 키우면서 살림을 도맡아온 아내의 눈물겨운 세월을 보상해줄 길이 없어 한스럽기만 하다고 한다. 본인도 울고, 아내도 울고… 그때를 회상하던 김씨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힌다. "근께! 묵고 살고 병원비 대느라 논밭 다 팔아 불고… 오죽하면 죽을라고도 했것소."

여행객은 노을이 되고 바다가 되고...아름다움에 탄성이 절로

▲ 배 위에서 어부가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 조찬현
바다에 서서히 물이 들고 있다. 파도는 고개를 들고 쉼 없이 뭍으로 돌아오고 있다. 일렁이는 물결과 물결. 바닷물은 쉼 없이 맴돌면서 망망대해 긴 여행의 여독 때문인지 자꾸만 뭍으로 향한다.

바다는 물이 찰랑찰랑 차 복개도 가는 길이 사라졌다. 배 위에서 어부가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외사촌 동생과 함께 일하는 최병선(70세)씨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정말 아름답다.

어부에게 고기가 많이 잡히느냐고 물었다. "옛날 같잖아. 고기를 잡아도 돈도 안 되고, 이녁 반찬이나 할라고 맘 쓰이면 한번 가보고 아니면 안가고 그러죠" 배를 가리키며 "쪼깐한 요걸 갖고 뭘 할꺼요? 낚시꾼들이 배를 팔라고 그래도 안 팔아요. 팔아봤자 돈 몇 푼 온데간데없이 없어져부요." 외지인들이 낚시 배로 이용하려고 자꾸만 배를 팔라고 보챈단다.

▲ 그물 손질이 끝나자 최씨 형제는 닻의 밧줄을 당기며 바다로 나간다.
ⓒ 조찬현
그물 손질이 끝나자 최씨 형제는 닻의 밧줄을 당기며 바다로 나간다. 모개도와 장구도 복개도의 무인도 섬 앞을 지나간다. 힘찬 엔진소리와 함께 물살을 가르며 간다. "철썩~ 철썩~" 파도가 뱃전을 때린다.

장척마을은 해가 지고 땅거미 질 무렵의 바다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나도 모르게 탄성이 절로 나온다. 아름다운 해변 장척마을에 어둠이 깃들면 여행객은 노을이 되고 바다가 된다.
이 기사는 미래에셋생명 사보에도 보냈습니다.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순천IC - 여수 방면 - 율촌 - 상봉 - 사곡리3구 복촌마을 (티롤레스토랑건너 해넘이길) - 장척마을
여수 시청 - 죽림 삼거리 - 현천 마을 - 풍류 삼거리 - 신흥마을 - 사곡1구 마을 - 장척마을
  2006-08-03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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