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기적 복개도, 청정갯벌은 다양한 바다생물들의 보고
장척마을 앞의 무인도인 복개도는 하루에 두 번씩 물이 갈라지는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다. 바다가 갈라지면 아낙네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복개도로 향한다. 섬에는 바지락과 고막 뿔게가 많이 살고 있다. 낙지도 제법 쏠쏠하게 잡힌다. 모개도와 장구도 사이를 고막 채취선이 오가며 고막 종패와 성패를 잡고 있다.
사진을 찍으려 다가가자 도둑게는 자꾸만 도망간다. "제발! 잠깐만 서다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주머니는 그런 아저씨를 보고 "게가 뭐랐게요? 하며 생뚱맞은 질문을 한다. "예?" 빨리 대답을 못하고 망설이자 "너 같으면 서겠니?" 그러면서 도망가는 거라며 박장대소를 한다. 갯벌이 훤히 드러난 바다에는 어선 한척이 밧줄을 길게 늘어뜨린 채 닻을 내렸다. 홀로 외롭게 갯벌을 지키고 있다. 갈라진 바닷길에는 바다에 사는 생물들을 관찰하기에 아주 그만이다. 크고 작은 수많은 꽃게가 구멍 속을 들락거린다. 숨죽이고 곁에 앉아 한참을 기다리면 녀석들은 살며시 고개를 내민다.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 인기척에 '후다닥~' 재빠르게 사라지곤 한다. 모래밭과 갯벌에는 고둥이 조심스럽게 기어간다. 주변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다양한 바다생물들이 수없이 많이 살고 있다.
게는 경계심이 아주 강하다. 구멍 속에서 나오다말고 눈자루를 높이 세우고 주변을 살피다 조그마한 인기척에도 이내 구멍으로 사라지곤 한다. 게는 집과 멀리 떨어져있다가도 인기척이 나면 재빠르게 각자 집을 찾아간다. 어떻게 찾아가는지 그 모습이 참 신기하기만 하다. "묘하더라고. 색깔이 변한 것도 있드라고" 김대용(66세)씨는 집게발이 하얀 게도 있고, 빨간 게도 있다고 말한다. 또한 집게발이 오른쪽에 있는 것은 수컷이고, 집게발이 왼쪽에 있는 것은 암컷이라고 알려준다. 장척갯마을 김씨의 바다사랑과 눈물겨운 삶
마을 젊은 사람들은 시내의 식당이나 찻집에서 일을 하고 바다 일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나이 드신 어르신이다. 함께 일하는 김대용(66세)씨는 장척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라고 한다. 7대째 이 마을에서 사는 김씨는 농사일보다는 갯일을 주로 한다. 바지락과 고막양식을 한다. "요즘은 소득이 얼마 안 돼. 판로가 없어서 제값도 못 받고…" 김씨는 양식업의 발달로 생산량은 많아지는데 어패류를 사가는 사람이 별로 없다며 안타까워한다. 한참 잘 나갈 때는 장척마을 호당 고막과 바지락으로 5백만 원의 소득을 올렸는데 지금은 2백만 원 남짓도 어렵단다. "그런께로 힘들제. 일 있을 때는 공사판의 노가다도 다니고 그란디. 일이 없어 노는 때가 더 많아. 이 일도 길어야 한 달. 이제 며칠 안 남았어."고막 종패그물 작업은 외지인의 부탁으로 하루 5만원의 노임을 받고 일하고 있다. 여자는 하루 일당이 4만5천이다. 작업장에서 일하던 할머니가 갑자기 소리 높여 노래를 한다. "돈 갖고도 못갑니다. 하늘에~" "왜, 못 간다요?" 곁에 있는 아주머니가 묻자 "아이고! 그게 아니여"라며 할머니는 "빈주먹 쥐고 나와서 빈주먹으로 가는 게 인생"이라고 말한다. "백발이 돼 불고~" 할머니의 노래는 또다시 이어진다. 김씨는 매년 연말이면 여행객들이 장척마을을 아주 많이 찾는다고 한다. "지는 해 볼라고 얼마나 많이 오는지. 그때 오면 참 멋있어" 해지는 모습이 그야말로 장관이라며 자랑을 늘어놓는다. 장척마을 이장을 5년간 역임했으며 현재는 반장을 맡아 동네 궂은일까지 다 챙기는 김씨에게 바다와 함께 더불어 살아온 이야기를 해 달라 부탁을 하자 "세상 살아온 이야길 할라치면 참말로 기가 막히제. 몸이 아파서 11년간이나 고생고생 했어" 김씨는 슬하에 2남 3녀인 5남매를 뒀다. "다 객지 나가 불고 두 내외만 살고 있어. 농사는 묵고 살라고 쪼끔 짓고 갯일을 주로 해." 지난 1975년. 김씨는 서른여섯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에 걸려 11년간이나 투병생활을 했다. "아 그때는 정말 죽게 돼 부렀어" 각혈을 하고 병세가 위중해 결핵병원에서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그런 그가 이렇게 오늘날까지 살아 있는 것은 순전히 아내의 유별난 지극정성과 바다 덕분이 아니겠느냐고 한다. "나도 모르제 무었으로 나았는지. 그때는 폐가 하얗게 구멍이 숭숭 뚫리고 숨쉬기도 곤란해 부렀어. 병원에서 더 이상 살기 힘들다고 투약도 중지하고 치료를 안 해줘 싸우기도 많이 했어"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약을 먹으며 최선을 다했단다. 그의 그런 노력으로 드디어 11년 만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김씨는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날(1986년 8월 20일)의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간 늙은 시부모 모시고 5남매를 키우면서 살림을 도맡아온 아내의 눈물겨운 세월을 보상해줄 길이 없어 한스럽기만 하다고 한다. 본인도 울고, 아내도 울고… 그때를 회상하던 김씨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힌다. "근께! 묵고 살고 병원비 대느라 논밭 다 팔아 불고… 오죽하면 죽을라고도 했것소." 여행객은 노을이 되고 바다가 되고...아름다움에 탄성이 절로
바다는 물이 찰랑찰랑 차 복개도 가는 길이 사라졌다. 배 위에서 어부가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외사촌 동생과 함께 일하는 최병선(70세)씨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정말 아름답다. 어부에게 고기가 많이 잡히느냐고 물었다. "옛날 같잖아. 고기를 잡아도 돈도 안 되고, 이녁 반찬이나 할라고 맘 쓰이면 한번 가보고 아니면 안가고 그러죠" 배를 가리키며 "쪼깐한 요걸 갖고 뭘 할꺼요? 낚시꾼들이 배를 팔라고 그래도 안 팔아요. 팔아봤자 돈 몇 푼 온데간데없이 없어져부요." 외지인들이 낚시 배로 이용하려고 자꾸만 배를 팔라고 보챈단다.
장척마을은 해가 지고 땅거미 질 무렵의 바다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나도 모르게 탄성이 절로 나온다. 아름다운 해변 장척마을에 어둠이 깃들면 여행객은 노을이 되고 바다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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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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