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치문화예술촌에서 중년을 보내는 강순진·정수연 부부

녹음이 짙은 여름이다.
공기 좋고 풀벌레 소리가 그저 좋다.
소쩍새 울음이 가슴 아린 광교산 자락
도마치문화예술촌 안에서
함께 그림을 그리며 중년을 보내는 부부.
여기 온지도 벌써 4년이 지났다.
두 사람 이름의 중간 글자를 딴 아트센터 순수는
그들의 보금자리며 사람과 만나는 공간이다.
자연과 벗 삼아 자유롭게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이 곳에서
부부는 한 편의 그림동화를 지어낸다.

빼곡이 들어선 아파트를 뚫고 작게 내걸린 도마치예술촌 간판을 보며 우거진 숲길을 따라가면 콘테이너 박스 여러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잘 정돈된 정원에서 사람 향기가 솔솔 피어오른다. 활짝 열린 문은 발길을 잡는다.

길을 오르는 등산객들도 호기심에 들어와 뜻하지 않은 차 대접을 받고 웃으며 돌아간다.

여기는 강순진(49)·정수연(51)부부가 운영하는 도마치문화예술촌 안 아트센터 순수.

벽에 걸린 그림들과 재활용을 활용한 설치 작품들은 오가는 이들의 눈길을 끈다. 처음으로 듀엣 전시회를 연 이들은 사람들에게 뜻밖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었다.

제각각인 커피 잔도 작품과 조화

“어서오세요.”
자연도 좋지만 사람은 더 좋다. 부인 강순진씨와 남편 정수연씨는 작업을 하다 사람 만나는 것이 자연스럽다.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이라도 괜찮다. 이런저런 얘기하며 잘 그려진 그림도 보고 그리다 만 그림도 보고 모든 게 편하게 열려 있다. 때로는 인근 아파트 반상회도 열리고 동호회들도 이 곳을 찾는다.

어수선함이 조합을 이룬 갤러리는 이름처럼 순수했다. 소파, 커피 잔, 쟁반, 의자…. 이렇게 저렇게 주워와 짝을 이룬 물건들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수지 쪽은 새로 이사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아파트 마다 버려진 물건이 많아요. 아침 일찍 20분 정도 돌면 좋은 물건을 가져 올 수 있어요.”
정씨 말처럼 이 곳에 온 물건은 대부분 재활용 한 것이다. 미술 작품에 쓰인 재료 중에서 주워온 소품을 쓸 정도니까. 정씨는 이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미리 말해두고 버려진 물건을 찾아 나서고 있다. 이러한 물건은 새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쓰던 것 중에 좋은 것이 많아요. 버린 것에 혼을 집어넣어 작품으로 재탄생 한다는데 의미가 있죠.”
그래서 부부는 가을이 되면 재활용품을 소재로 한 ‘패자부활전’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강씨는 “미국에서 5년 동안 살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한국은 남이 쓰던 물건을 터부시하고 쉽게 버리는 것 같다”며 “전시 기획에 맞춰 작은 벼룩시장을 여기서 열고 싶다”고 말했다.

재활용품에 혼 불어 넣어

캐나다에서 열리는 가라지세일이 그 모델이다. 갤러리에서 쓰던 물건을 서로 사고팔거나 물물 교환하는 시장을 정기적으로 마련하는 것이다.

“새로 이사 오는 수지에 특히 필요한 것 같아요. 좋은 물건을 많이 버리거든요. 이런 시장을 열면 자원에 대해 감사할 줄 알고 자녀들은 재미있게 경제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남편 정씨는 소소한 아이디어에 색을 입혀 행동으로 옮긴다.

엘지전자 무역 관련 부서에서 22년간 근무한 정씨는 2년 전부터 혁신교육과 경영컨설팅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부인 강씨 입을 빌리면 정씨는 ‘창조자’에 가깝다. 풍부한 경험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그래서 주변에선 회화를 전공하고 그림을 꾸준히 그린 부인에게 ‘남편을 키우라는 말까지 듣는다’며 강씨는 웃었다.

지금은 함께 그림을 그리지만 정씨는 경영학도였다. 혼자 미술 공부를 했던 그는 외국의 갤러리, 박물관에서 본 거장들의 작품을 보며 화가들을 동경했다.

스케치 없이 바로 붓칠 작업으로 들어간다. “미대를 졸업하지 않아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다”며 “10년 동안 2000점을 그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기 부여는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그 변화는 생활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꼭 하고 싶다면 바쁘더라도 2~3배 더 뛰어서 생활의 일부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것이 바로 혁신이라고 했다. “혁신은 삶의 지혜를 주고 정년이라는 박스 안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내 삶을 직무유기 하는 것입니다.”
정씨는 이러한 생각을 담은 책도 조만간 펴낼 계획이다.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한 부부생활

그 배경은 다시 그림으로 돌아간다. 작가의 생각과 표현이 무한한 공간이 그림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대기업 출신이면 돈을 많이 벌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거든요. 저희 부부는 이 곳에서 사람들과 지식, 감성을 나누고 싶어요. 그래야 비전이 있지 않나요.”

중년에 접어들며 제2의 인생에 접어들었다는 이들 부부는 재능을 나누며 살수 있는 이 공간이 생애 큰 기쁨이다.

“엘지 전자 다닐 때 독수공방 신세였는데 2년 동안 오붓하게 보낼 수 있어 학창시절로 돌아가 연애하는 기분이거든요. 지금이 가장 행복해요. 이러한 즐거움은 많은 사람에게 돌려주고 싶습니다.” 산자락 아래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 곧 그림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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