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정의 꽃 돌매화 전설

▲ 한라산 백록담을 지키는 바위틈에 돌매화가 피었다.
ⓒ 오희삼
남극 노인성을 굽어본다는 하늘 못에 신선의 정원을 지키는 수직의 검은 바위 서 있네. 그곳은 한여름에도 사나운 회오리바람이 안개와 함께 몰아치고 겨울에는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눈보라가 사정없이 불어대는 곳이었어. 그렇게 거센 바람 불어대던 아주 오래된 어느 날 밤의 일이었을 거야.

▲ 돌매화나무는 바위의 이슬을 먹고 자란다.
ⓒ 오희삼
은하수를 따라 흐르던 별무리들 빙하에 뒤덮인 초록별의 지구를 지나던 밤, 신의 정원 하늘 못에 지친 별들이 찾아들었어. 거센 비바람에 지친 별들이 연못을 지키는 바위그늘로 피신했던 거지.

"바위야… 내가 너무 지쳐서 너에게 좀 의지할 수 없겠니… 비바람이 잦아들 때까지 만이라도 좀 쉬어갈 수 있겠니…."

수 만년의 세월, 홀로 연못을 지켜오던 바위는 얼마나 설렜을까… 바위는 제 몸을 슬며시 열어 별을 꼬옥 끌어안았어.

▲ 돌매화나무의 꽃은 여름이 오면 순백색의 꽃을 피운다.
ⓒ 오희삼
사나운 회오리바람이 몰아칠 때마다 별들은 안간힘을 쓰며 바위의 틈새로 파고들어갔어. 사나운 바람에 익숙했던 바위는 비바람에 지친 별들을 위해 제 가슴을 조금씩조금씩 열어주었던 거야.

"바위야… 나 때문에 많이 힘들지 않니. 미안해. 많이 힘들게 해서. 나 때문에 네 가슴으로 차가운 바람이 많이 스며들 텐데…."

별은 바위 틈새로 바람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온몸으로 바위를 덮어주었지. 그렇지만 바람을 모두 막아낼 순 없었던 거야…. 바람이 바위가슴을 후벼댈 때마다 바위는 조용히 속울음을 삼켜야 했지.

▲ 돌매화나무의 꽃은 꽃잎이 매화를 닮아서, 돌 위에 피는 매화라는 뜻이다.
ⓒ 오희삼
온 세상이 하얀 얼음으로 뒤덮인 땅에서 수 만년의 외로움을 견디며 살아온 바위였기에 얼마나 그리움이 컸겠어. 그런 바위에게 다가와 고독을 달래주었던 별이었기에 가슴에 푸른 멍울이 생기면서도 바위는 별을 버릴 순 없었던 거야.

폭풍이 지나가고 연못에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는 어느 날이었지. 지구별을 덮었던 긴 빙하의 세월이 끝나자 지구별에도 초록의 생명들이 싹트기 시작했지. 바위가슴에 안겼던 별무리가 속삭였어.

"바위야… 우리 이제 떠나야 할까봐. 그 동안 너무 고마웠어. 네 단단한 가슴 덕분에 비바람을 피할 수 있었어. 지친 몸 추스르고 이제 우리 먼 여행을 떠날 수 있을 만큼 기운을 차렸어. 정말 고마웠어."

▲ 세상에서 가장 키가 작은 돌매화나무는 우리나라에서 한라산 정상의 암벽에서만 자란다.
ⓒ 오희삼
바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 가지 말라고 여기서 함께 지내자고 조르고 싶었을 거야. 별이 떠난 뒤 또 다시 견뎌내야 할 외로움이 두려워서 붙잡고도 싶었을 거야. 그렇지만 바위는 말없이 별을 보내야 했어. 사나운 바람이 몰아치는 절벽에 살아달라고 애원할 순 없었던 거지. 그렇게 별을 보내야 했어. 별 떠난 뒤 바위에 초록의 잎들이 돋아났어. 오랜 세월 별들이 머물던 자리였지. 바위의 벌어진 틈새로 바람이 스며들 수 없게 별들이 뿌려놓았던 거 같아.

지친 몸을 의지했던 바위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그랬던 거 같아. 그랬을 거야…. 떠나면서 바위가 아프지 않게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마음의 선물인 것만 같아.

▲ 돌매화나무는 지구가 빙하기를 거치면서 고지대를 피신하며 현재까지 살아남은 살아있는 화석이라 할 수 있다.
ⓒ 오희삼
별들이 떠났던 어느 여름 초록의 잎 위로 꽃들이 피어났어. 별 모양을 닮은, 너무나도 청초한 순백의 꽃이었지. 붙잡고 싶었지만 고이 보내야만 했던 바위의 영혼인 것처럼 고운 꽃이었지. 너무나 투명하고 너무나 하예서 떠나간 별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다 바위가 흘린 눈물인 것 만 같아.
한라산 정상 수직의 암벽에서 자라는 돌매화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키작은 나무다. 다 자란 키는 2cm. 사나운 바람과 안개 속에서 겨울을 지새고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는 6월, 돌매화는 순백색의 꽃을 피워낸다. 청초하게 피어난 꽃잎이 마치 매화와 닮아서 돌매화란 이름을 얻었다. 지구상에서 이 돌매화나무과에는 오직 이 돌매화만이 존재한다. 한라산 정상의 오래된 바위틈에서 새벽마다 맺히는 차가운 이슬을 머금고 자라는 돌매화나무는 이곳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암벽의 돌매화가 남획되어 지금은 개체수가 많이 줄어들었으며,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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