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부에서 국민훈장을 준다고 하기에 처음엔 사람 잘못 찾았다고 사양했어요. 그랬는데 장하진 장관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이 훈장에 상당한 상징성이 있더라구요. 해마다 가정의 달에 효자 효부를 포상했대요. 개인의 희생과 인내를 중시하는 가부장적 덕목에서 이제는 사회와 지역에 몫을 다하는 이들에게 상이 돌아가야 한다고 그러시면서 처음으로 마을공동체에 상징적 의미를 두신 거였어요."

 

▲ 박영숙 느티나무도서관장
지난 16일 국민훈장을 받은 박영숙(40) 느티나무도서관장은 개인의 공로를 인정받은 것보다 국가가 이제는 마을공동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에 마음이 흡족하다.
7년 전 난개발로 어수선한 수지지구 풍덕천리(현 풍덕천2동)에 '느티나무'라는 간판을 걸고 사재를 털어'작은 도서관'을 열 때까지만 해도 꿈으로만 간직했던 아파트지역공동체의 모습이 이제는 하나씩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이 도서관을 만드는 전례 없는 일을 시작했을 때 누구나 의아해했다. 국립 또는 시립도서관에 길들여진 상식으로는 이웃이 모여 지식과 정보와 문화를 나누는 사랑방과 같은 사설동네도서관은 개념조차 없었다.
"아기를 업고 며칠동안 용인시청을 드나들었어요. 제가 도서관을 만들겠다고 하니까 다들 이해를 못하는 거예요. 그때는 담당부서조차 없어 공무원들도 난감해했어요. 사실 저 자신도 도서관이 어떻게 만들어질 것인지 잘 몰랐구요."

쉽지 않은 절차를 거친 끝에 느티나무도서관은 3천권의 책을 구비하고 한 아파트상가 지하에 문을 열었다. 낯선 신도시에 입주해 이웃이 어색하기만한 주민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하나 둘 모여들었다. 도서관을 통해 친구가 된 주민들에게 이곳은 어느덧 공동체문화를 열어가는 장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박영숙 관장에게는 당시 아파트 유입주민 외에 눈에 들어오는 또 다른 이웃이 있었다. 지역개발에 떠밀려 보상도 변변히 받지 못한 채 비닐하우스로 쫓겨난 철거민촌의 아이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IMF 직후 실업자에 술주정뱅이가 된 아버지와 가정불화 끝에 가출한 어머니, 그 가운데서 끼니조차 제때 챙기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이 방치되고 있었다.

박 관장은 그들을 도서관으로 불러들였다. 그는 아이들을 먹이고 돌보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제때 건강을 챙겨주지 못해 병을 앓는 아이들과 학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습지진아들이 적지 않았다. 박 관장은 이들에게 '고운 아이들' 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청소년기에 접어든 아이들은 가출에다 싸우는 일이 다반사였고 늦은 밤 도서관 유리를 깨놓기도 했다. 낮에는 아픈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을 전전하고 밤에는 경찰서를 드나드는 일이 빈번했다.

# 사설도서관 설립 추진'전례 없는 일'

그러나 박영숙 관장에게 ';고운 아이들'과의 만남은 그리 낯선 것이 아니었다. 서울대 86학번으로 대학시절부터 빈민운동을 해온 그는 서울 산동네에서 야학과 공부방을 열었었다. 88올림픽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할 무렵 그가 가르쳤던 상계동 제자들은 지하철역에서 구걸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아이들이었다. 가족나들이객이 많은 어린이날이 벌이가 잘되는 대목이라고 좋아하던 그들, 소위 '정화·대상으로 몰려 영문도 모른 채 닭장차에 실려 가던 그들에게 박 관장은 배움을 통해 세상을 알 권리를 누리게 해주고 싶었다. 가난의 대물림을 막아주고 싶었던 것이다.

경찰인 아버지에게 쫓겨나면서까지 그는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으로 아이들을 챙겼다. 그리고 아동학과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누구나 차별 없이 정보와 지식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도서관의 정신은 빈민운동과 맥을 같이하고 있어요. 도서관은 가르치는 곳도 아니고 자선을 베푸는 곳도 아니에요. 더불어 누리고 나누는 곳이에요."

그는 느티나무도서관에서 사서도우미로 일하는 자원활동가들에게 늘 당부한다. "아이들에게 책을 건네줄 때는 '이 책으로 인해 이 아이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생각으로 한 권의 책이라도 정중하게 주십시오."
'고운아이들' 가운데는 장학생으로 올해 대학에 들어간 아이들도 있다. 이제는 성인이 다 된 그들은 집보다 도서관에 먼저 들르는 일이 자연스럽다.
지금도 느티나무도서관에는 여전히 가난하고 아프고 다친 아이들이 모여든다.

이들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도 처음과 달리 따뜻해졌다. 내 자식을 문제아들이 섞인 곳에 보낼 수 없다며 고운아이들의 추방을 종용하던 주민들이 오히려 어려운 아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누고 배려하는 자세로 변해가는 자녀들을 보면서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지금은 가정이 가족이기주의와 가족해체의 양 극단으로 나눠진 거 같아요. 어느 쪽이든 그 속에서 가장 상처받는 것은 아이들이에요. 언제부턴가 도서관의 어른들이 이 아이들을 품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도서관에서 아이들은 정서적인 안정을 얻는 거지요."

# 야학 빈민운동 정신 담은 도서관

느티나무도서관에는 현재 50여명의 자원활동가들과 인근 지역 주민으로만 구성된 후원자가 100여명 있다. 이들은 이제 작은 도서관의 정신에 함께 동참하는 동지들이다. 도서관에는 그동안 여러 개의 동아리들도 생겨났다. 어머니독서회, 자녀와 부모가 함께하는 모임, 청소년 모임 등이 자생적으로 조직됐다.

처음에 아이들 때문에 도서관을 찾았던 엄마들이 책읽기를 통해 자기정체성을 발견하고 지식의 폭을 넓혀가면서 동아리활동을 비롯한 모든 행사의 주체가 되어갔다.

"남편과 아이들에게만 매여 살던 주부들이 책을 읽으면서 사교육과 공교육을 보는 눈이 열리고 사회문제와 역사인식을 공유하게 됐어요. 지역문화가 달라졌지요. 먼저 자신들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껴요. 배우고자하는 욕구가 커질수록 도서관도 유기체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박 관장은 이들을 위해 내용과 질을 살펴 꼼꼼하게 직접 책을 고르고 있다. 현재 비치된 1만5천권의 장서는 이런 과정을 통해 뽑힌 책들이다. 도서관에서 자원활동가로 일해 온 주부들은 어느새 각 방면의 전문가로 성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강사로 나서고 있다.

느티나무도서관은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더욱이 2003년 재단법인으로 거듭나면서 어린이도서관과 지역공동체 문화사업을 펼치는 작은 도서관의 모델이 되고 있다.

"개인이 도서관을 운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나라에서 곳곳마다 작은 도서관을 세우고 사회적서비스의 몫을 담당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곳에 마을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도서관간의 유기적인 네트워크가 이뤄져야 돼요. 도서관이란 멍석이 펼쳐지면 지역의 문화와 삶은 반드시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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