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화 용인가정상담센터 소장
지난달 10일 기흥구 상갈동에 문을 연 용인가정상담센터(031-282-1360/1369). 최연화(40) 소장은 청소년상담과 성폭력상담 자원봉사자로 일하다 최근 이 센터를 개소했다.
용인학생상담자원봉사자회 회장이기도 한 그는 가정불화로 고통을 겪는 청소년들을 접하면서부터 가정상담에 관심을 갖게 됐다.
“똑같은 교복을 입고 앉아 있지만 학생들의 표정은 다 달라요. 그리고 마음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날 만큼 아이들은 투명해요. 특히 무표정한 아이들의 얼굴에서 마음의 상처를 볼 때가 있어요. 처음엔 말도 잘 안 하지요. 그러다 차츰 말문이 열리면서 부모의 무관심과 가정불화, 아버지의 폭력을 털어놓는데 아이들이 감당하기에는 문제가 너무 심각해요.”
사생활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 가정문제이지만 그렇다고 외면하고 지나치기에는 고통 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
그는 고등학생 아들과 어렵게 삶을 일구어가고 있는 한 여성 내담자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이혼 후 가지고 있던 전 재산을 사기 당하고 아이와 함께 단칸방에서 살면서 삶의 의욕마저 상실해버린 여성에게 최 소장이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그의 말을 들어주는 것뿐이었다. TV도 없는 방에서 하루 종일 누워있는 어머니를 지켜보던 아들이 자신이 아끼던 게임기를 팔아 중고 텔레비전을 사온 어느 날 이 어머니는 죽음의 충동을 떨쳐버리고 자리에서 일어설 수 있었다.
“사실 상담을 통해 뭔가를 충고하고 지시할 수는 없어요. 다만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그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함께 찾아보는 게 중요해요. 가정상담은 주어진 시간에 당장 뚜렷한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좀 답답할 때도 있지요. 그러나 상담을 원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는 것이고 그게 중요한 거지요.”
# 청소년 고민 대부분 가정문제
상담요청 건수 가운데 60% 이상이 가정상담이고 그 가운데 폭력문제가 가장 많다는 것도 최 소장이 주목하고 있는 부분. 최근 들어 가정폭력 상담이 늘어나는 것은 이를 더 이상 숨기지 않고 문제로 표출하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되어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은밀하게 숨겨져 있던 가정폭력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를 예방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최 소장은 “폭력을 처벌하는 것으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왜 때렸는지 왜 맞았는지를 가려서 그 원인을 진단해야 한다”며 “폭행자를 법정으로 보내는 것이 결코 해결책은 아니다”고 강조한다.
특히 대화방법의 미숙이 폭력으로까지 발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 더욱이 이심전심을 요구하는 부부간일수록 대화훈련이 필요하다.
“무작정 화를 내지 말고 ‘당신이 그런 말을 하니까 내가 화가 나네’하고 한 박자 쉬면 상대방도 일단 생각할 겨를이 생기는 거지요. 같은 내용이라도 충고보다는 고마움을 표현하는 쪽으로 말을 바꿔보면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져요.”
그는 학교에서 돌아온 자녀에게 “오늘 즐거운 일 있었니?”라고 매일 질문할 것을 권한다. 엄마의 반복된 물음에 아이들은 대답할 거리를 찾아 즐거운 일을 만들더라는 것. 굳이 상담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의 대화를 통해 가정의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
# 장애아 수영지도 “제게 더 감동”
최연화 소장은 상담가로서 뿐만 아니라 일주일에 두 번은 장애아동과 함께 하는 시간도 갖고 있다.
수영강사자격증을 갖고 있는 그에게 꼭 하고 싶었던 일 한 가지가 바로 장애아동을 돌보는 일. 그는 작년 2월부터 용인시장애인부모회 회원들의 요청으로 장애아동과 부모 등 24명에게 수영을 지도하고 있다.
“몸이 불편한 장애아동을 지도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걱정스런(?) 물음에 그는 “물에 들어가면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똑같다”고 단순 명쾌하게 답했다.
“오히려 수영지도는 비장애인이 더 어려워요. 고집이 있거든요. 땅에서는 휠체어를 타야만 하는 몸이 불편한 아이들이 물 위에 떠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것을 보면 제가 더 감동을 받아요.”
최 소장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라며 “내게 없는 것을 상대방이 갖고 있고 그에게 없는 것을 내가 갖고 있을 뿐 세상에 그늘진 곳과 밝은 곳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과 상담활동을 통해 다만 그런 세상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최연화 소장은 작년 8월 중요한 일 한 가지를 해냈다. 여성 수영 동호인 33명이 참가한 ‘광복 30주년 울릉도~독도 수영종단’에 나선 것. 21시간 동안 총 87.4km를 한 사람이 2~3km씩 릴레이로 건너고 최종 1km 구간은 33명이 함께 헤엄쳐 독도에 닿았다. 1m 이상 파도가 이는 수심 3000m의 바다에 얇은 그물망만 보호막으로 쳐졌을 뿐 자기 자신과 싸우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장정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상담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이들의 힘겨운 삶의 짐을 독도 앞 바다에 버리겠다고 다짐했다. 모든 여성들의 아픔과 눌린 자들의 짐을 풀어버리고 오겠다는 각오로 힘든 훈련에 임했고 드디어 민족해방을 꿈꿨던 33인처럼 독도지킴이 33인의 한 사람으로 종착점에 도착했다.
“그런데 짐이 버려지지 않았어요. 다 벗어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거기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는데 어떤 분이 제게 그러셨어요. 짐을 버릴 수 있는 힘은 내 안에 있는 거지 바다에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삶으로 모든 것을 승화시켜야 한다고.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 후로 아주 홀가분해졌어요.”
상담은 이제 그에게 더 이상 다른 이들의 힘겨운 삶의 짐을 대신 지고 가는 작업이 아니다. 서로에게 지친 어깨를 그냥 대주는 일일 뿐이다. 최 소장 자신의 ‘어눌하고 부족한’ 어느 한 부분을 누군가 품어주듯이 그 또한 외롭고 지친 누군가에게 조용히 귀를 기울여주며 세상의 문을 함께 열어가고 싶은 것이다.
용인가정상담센터 소장이란 딱딱한 직함만으로는 그를 다 볼 수 없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세상을 향한 사랑, 그가 꽃보다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다.
이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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