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전남 광양 매화마을

▲ 매화 향기는 섬진강 줄기 따라 굽이쳐 흐르고...
ⓒ 이우영
멀리 바다 건너 남쪽 섬 제주에서 유채꽃이다 뭐다 해서 꽃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하면 뭍의 사람들은 하나 둘 몸살을 앓기 시작한다. 기나 긴 겨울을 잘 견뎌내고 이제나저제나 하며 반가운 봄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터라 조바심이 이는 까닭이다.

남쪽 섬 제주보다야 한 박자 늦지만 그런 뭍 사람들의 마음을 그나마 달래주는 것이 봄의 전령이라 일컬어지는 섬진강 자락의 매화. 모진 추위를 견디며 잔설(殘雪) 속에 꽃을 피워낸다 하여 옛 사람들이 사군자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꼽았던 바로 그 꽃이다.

우리 가족이 매년 봄이면 연례행사처럼 전남 광양의 매화마을을 찾는 이유도 그와 같다. 조금이라도 빨리 봄을 맞고 싶은 것이다. 집 앞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쳐 나중엔 봄이 오지 않으면 우리가 봄을 찾아가고 만다는 심정으로 길을 나서곤 하는 것이다.

▲ 초가 지붕 돌담 주변은 대설주의보라도 내린듯 온통 흰색이다.
ⓒ 이우영
그렇게 봄을 찾아 나선 길, 매화마을을 불과 몇 킬로미터 남겨놓았다는 이정표를 뒤로하는 순간부터 길 양옆으로 눈부신 자태를 뽐내는 매화들이 하나 둘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좀 지나서부터는 산자락을 온통 하얗게 뒤덮은 매화 군(群)이 이내 눈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속세를 벗어난 듯한 아름다운 풍경을 복숭아 꽃밭에 빗대 도원경이라 한다더니만 하얀 매화로 뒤덮인 매화마을의 풍경 또한 조금도 그에 뒤지지 않는다.

본래의 마을 이름은 선진마을이었으나 워낙 매화로 널리 알려지다 보니 아예 매화마을이라 이름까지 바꿔 버렸다는 이곳은 매년 3월 매화축제를 열어 상춘객들의 발길을 잡아끌고 있다. 축제 때면 이곳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수많은 상춘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루는데, 우리 가족이 매화마을을 찾은 것은 축제가 막 끝난 직후였다.

▲ 남녀노소 그 앞에 넋을 놓는다.
ⓒ 이우영
사실 그래서 더 좋았다. 따지고 보면 매화축제라는 행사는 다른 어떤 꽃축제보다 빨리 열어야만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 때문에 좀 이르게 열리는 감이 있다. 봄을 빨리 맞고 싶은 성질 급한 상춘객들에게 한시라도 빨리 봄을 안겨주기 위해서는 매화농원 산 언덕까지 꽃이 만개하기를 기다릴만한 시간이 없다고나 할까.

이에 따라 매화축제가 끝난 뒤 한 일주일쯤 있다 매화마을을 찾으면 오히려 더 멋진 매화경에 빠져들 수가 있다. 매화축제가 끝난 뒤에야 비로소 산 언덕까지 활짝 매화가 만개하기 때문이다. 더하여 이때쯤이면 축제라는 거품이 빠져 사람들 발길도 한결 잦아드는 까닭에 훨씬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매화를 즐길 수 있다.

▲ 청매실농원 언덕서 내려다 본 매화마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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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매화마을에 도착한 우리 가족은 사진가들이 즐겨 찾는 명승지 청매실농원 주차장 한 편에 차를 세워두고 본격적인 봄 사냥에 나섰다. 눈 천지를 방불케 하는 황홀경 속을 거닐며 봄기운을 깊이 들이 삼켜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가슴도 한번 활짝 펴보고, 남들 다 하는 대로 눈부신 매화를 배경 삼아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멋진 사진도 몇 장 남겼다. 그러고 나니 집 앞에선 미처 느끼지 못했던 봄이 살며시 가슴 속으로 젖어드는 듯했다.

이렇게 봄기운을 즐기며 이리저리 걷다 보니 우리 가족의 눈길을 사로잡는 게 하나 있었다. 족히 몇 천 개쯤은 돼 보이는 엄청난 숫자의 전통옹기들이 바로 그것이었다. 청매실농원 안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들 전통옹기는 다름 아닌 매실을 담는 데 쓰는 것들.

▲ 매화 향기에 취한 나그네는 앉은 자리에서 쉽사리 엉덩이를 떼지 못하고
ⓒ 이우영
이곳 청매실농원의 창시자인 율산 김오천 선생이 1930년경 일본으로 돈을 벌러 갔다가 돌아와 한 그루 두 그루씩 매화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과 궤를 함께 해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한 이 전통옹기들은 며느리 홍쌍리씨 등을 거쳐 3대째 이어 내려오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매화나무는 3월 중순경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해 4월에 함박눈을 연상케 하는 꽃비를 한바탕 뿌린 뒤 꽃 핀 자리마다 하나씩 열매를 맺게 되는데, 그 열매인 매실은 약이나 매실주 등의 재료로 각광을 받고 있는 건강식품. 이 지역 특산품이자 이곳 농가들의 주수입원 가운데 하나인 이것은 특히 어린이와 임산부 등 칼슘이 많이 필요한 사람에게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만큼 이곳에서 꽃을 자유롭게 구경하는 것은 좋지만 매화를 딴다거나 나뭇가지를 꺾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농사를 망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 봄을 파는 아낙들 머리 위로도 매화 향기는 춤을 추고 있다.
ⓒ 이우영
가는 길은 호남고속도로 전주나들목으로 나와 남원 방향으로 향한 뒤 춘향터널을 지나자마자 구례 방향 우회도로로, 밤재터널을 지나 구례 화엄사 이정표 방향으로 빠져나와 하동 쪽으로 길을 잡은 뒤 하동 쌍계사를 지나자마자 보이는 강을 가로지른 다리로 우회전, 다리 건너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조금만 더 가면 매화마을 이정표가 나온다.

구례에서부터는 굽이굽이 펼쳐진 맑고 푸른 섬진강과 함께 할 수 있기에 드라이브 삼아 경치를 감상하며 천천히 달리다 보면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 틈도 없이 이내 매화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

▲ 매화, 그 모습조차 향기로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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