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문화관광해설사 임미향

▲ 용인 문화관광해설사 임미향
“문화유적을 즐겨야지 공부하려고 하면 정말 재미없어요. 유적과 유물을 소개할 때 저는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내용을 주로 얘기합니다.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지식은 얼마든지 알 수 있거든요. 역사에 얽힌 그 유적지만의 독특한 풍광을 관람객들이 가슴으로 느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문화관광해설사로 용인의 문화유적을 알리고 있는 임미향(48)씨. 문화관광해설사란 직함이 말해주듯 유적지나 관광지를 찾는 사람들에게 지역의 문화유적·유물을 소개하는 것이 그의 주 업무다. 초·중·고교를 방문하여 강연하는 일도 함께 한다.

그에게 용인에 있는 문화재가 얼마나 되느냐고 묻자 금방 답이 나온다.

“유·무형문화재와 향토자료를 합해서 144점이 있어요. 그중에서 국보급문화재는 거의 에버랜드 단지 내에 있는 호암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구요, 용인시 자체 내 국보급 문화재는 신봉동에 있는 현오국사탑비가 유일하지요. 근데 참 아쉬워요. 고려시대 3층 석탑의 유물이 남아 있는 유서 깊은 이곳을 왜 복원하지 않고 방치해 두는지 몰라요.”

문화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임미향씨의 말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용인에 거주한지 이제 3년 됐지만 용인지역 구석구석 안 가본 곳이 없단다. 사진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카메라를 둘러메고 벌써 용인의 50여 곳을 돌아보았다. 대부분의 토박이들도 가보지 못한 곳까지 거의 들여다본 셈.

직업군인인 남편을 따라 이사만 27번 했다는 그는 전국을 다니다 보니 그 지역의 문화유적에 자연히 관심을 갖게 됐다. 용인에서 먼저 그의 눈을 사로잡은 곳은 세중옛돌박물관. 역사가 담긴 돌의 신비에 반해 부산에 있는 동생까지 불러 구경시켜 주었다.

그런데 막상 자세한 내용을 알려고 하자 그것을 전해줄 해설사가 없더라는 것. 그러고 보니 전국의 웬만한 문화유적지나 박물관에서 보았던 문화유적해설사들이 용인에는 없다는 것이 의아해졌다.

“내가 나서서 용인의 문화유적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사진작업을 하면서 단순히 사진을 찍는 것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고 공부하는 일도 함께 했었거든요. 저는 확실하게 알 때 까지 한번 갔던 곳이라도 몇 번이고 되풀이해 찾아가야 직성이 풀려요. 그렇게 해서 축적된 지식이기 때문에 문화유적을 알리는 일이 제겐 정말 즐겁습니다.”

마침 지난해 용인시에서 모집한 1기 문화관광해설사에 응시, 발탁됐다. 누가 봐도 그에게 꼭 맞는 일임에 틀림없다.

▲ 임미향씨의 사진작품 신돈 드라마세트장. 관람객들을 안내하며 틈을 내 찍었다.
# 카메라 둘러메고 구석구석 누벼

임미향씨와 함께 일하고 있는 문화관광해설사는 동기 5명과 올해 선발된 2기 31명을 포함, 총 37명으로 늘어났다. 현장 안내나 학교 강연 등의 기회가 해설사 한 명당 월 10회로 제한돼 있지만 실전을 위해 해설사들이 공부하는 분량은 방대하다.

“신돈이 촬영되고 있는 백암 드라마세트장을 안내하기 위해 고려 궁궐에 대해 한참 공부했어요. 그게 어디 고려 궁궐만 공부해서 될 일인가요? 삼국시대의 역사 문화 건축까지 모조리 섭렵해야 궁궐을 말할 수 있어요. 학교 다닐 때도 이렇게까지 공부한 적은 없었는데 말예요.”

고대와 중세, 현대의 문화를 오가며 해설을 하다보니 한 가지 유적에서도 그에게는 시공을 초월하는 역사의 흐름이 읽혀진다.

그는 관람객들에게 1970년대 신축된 와우정사(해곡동 소재)를 소개할 때마다 신라시대 황룡사 9층목탑을 함께 얘기한다.

와우정사는 실향민인 창건주가 민족화합을 염원하며 세운 호국사찰로 선덕여왕이 삼국통일을 기원하며 쌓아올린 황룡사지9층탑과 같은 불심을 느끼게 한다는 것. 시공은 달라도 민족통일을 바라는 애틋한 마음이 유적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는 현오국사탑비가 세워진 고려 서봉사 절터 복원과 함께 801년 신라시대 조성돼 조선 무학대사의 일화를 남기며 면면히 터를 보존하고 있는 백련사(포곡면 가실리)의 역사적 의미를 살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들 고찰들과 현대 사찰인 와우정사를 아울러 불교문화를 고증하는 유적지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 문화재자료 42호 공세리 오층석탑. 고려시대의 유물로 한강 이남에 남아 있는 16개 석탑 중 하나. 쓸쓸하게 서 있는 모습이 임미향씨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 문화유적은 마음으로 느끼고 즐겨야

그는 또 송전 어비리의 동도사 3층석탑이 저수지 조성으로 매몰될 위기에 처하자 주민들이 마을로 이송, 보존하고 있는 사례를 들어 문화재 복원 관리에 대한 시민의식이 절실함을 역설했다.

이와는 반대로 그에게 ‘불쌍한 탑’이 있다. 기흥읍 공세리의 5층석탑이 그것. 고려 중기에 세워진 것으로 한강 이남에 남아 있는 16개 석탑중 하나다. 깊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주택가 담벼락 밑에 매달려 겨우 잔존하고 있는 것이 보기에 딱하다.

“문화 유적 관리에 관심이 많은 다른 지역에 가 보면 탑 하나, 비석 한 개만 남아 있을지라도 그 주변에 소나무를 심고 억새풀밭도 만드는 등 주변 경관을 얼마나 예쁘게 꾸며놓았는지 몰라요. 사진 찍고 싶은 마음도 들고 탑 하나 보러 갔다가 분위기에 취해 시가 절로 나올 정도예요.”

용인의 문화 유적이 비록 ‘썰렁’하게 남아 있지만 카메라 앵글을 들이대면 한결같이 감탄을 연발하게 하는 예술작품이라며 그는 시민들에게 그 진가를 알리는 것이 자신의 소임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주민자치센터나 부녀회에서 동네 어르신들에게 잔치를 베풀어 드리는 것도 좋지만 용인의 문화 유적지와 관광지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거 같아요. 단 한분이라도 원하신다면 우리 문화관광해설사들이 동행하며 자세히 안내해드려요.”

임미향씨가 용인의 탁월한 문화자원으로 꼽는 것 가운데 하나는 박물관. 크고 작은 박물관들이 적지 않아 그의 문화욕구를 충족하는데 한 몫 한다.

“사물을 보는 눈을 키우면 문화와 역사가 재미있어요. 마음으로 느끼고 학문으로 들어가야지 문화유적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어요. 알면 알수록 부족함을 깨닫게 되고 그래서 더 파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 역사문화에 대한 지식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에게는 길가의 돌멩이 한 개도 예사롭지 않다. 카메라 포커스를 맞추고 깊이 들여다보면 한 사물에 고스란히 배어 있는 역사와 문화가 보인다.

세상은 끊임없이 그에게 호기심을 자극한다.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문화들까지 기꺼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도무지 궁금증을 참을 수 없는 문화해설사 임미향. 그는 오늘도 아날로그와 디지털사진기, 캠코더까지 들고 고대와 현대를 누비며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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