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현 강촌식당 박종기씨의 남다른 ‘노인공경’과 남다른 ‘가족사랑’

▲ 왼쪽부터 박정기씨, 박복수씨, 손자 박동민, 박현구씨, 강수진씨(며느리), 박성구씨
# 한달에 한번, 오전 동안 강촌식당(모현면 소재)은 노인들로 가득 찬다.

노인복지시설 예닮마을의 어르신들이 나들이 나와 박종기씨(모현면·58) 부부의 정성이 가득 담긴 점심 식사를 대접받는 날이다.

용인에 들어오기 전, 서울에서 유통업을 할 때도 지역에서 노인봉사를 했다는 박씨는 용인에 와서 자릴 잡은 후 어려운 노인들을 돕고 있다.

그가 노인들을 유독 좋아하고 봉사를 자처하는 데에는 그 나름의 개인적인 이유가 있다. 20세에 부모를 잃고 혼자 어렵게 동생들을 키우느라 치열하게 살아온 박씨는 어르신들만 보면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애틋해진다는 것. 친정에서 셋째였던 아내 박복수씨(53)에게는 오빠도 있었지만 그가 원해 장인·장모를 모셨었다.

>> 아내·자녀 한마음으로 어려움 극복

97년 서울에서 사업이 크게 부도나 그간 쌓은 모든 것을 잃고 쫓기듯 터전을 옮겼다.
계속되는 불면증과 상심으로 박씨는 죽을 생각을 하고 소주3박스와 오징어2마리를 챙겨 지하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평소 약하디 약한 여인으로만 알았던 아내가 박씨를 따라 들어와 “당신이 포기하면 아직 어린 우리 아이들은 어떻하냐”고 만류하며 “이 정도 고난으로 인생을 포기하지 말고, 내가 요리를 좀 할 줄 아니 쭈꾸미 철판 요리 장사를 해 보자”고 그에게 삶의 용기를 불어넣었다.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을 처음 실감했다.

십시일반이라고 친구들이 숨겨둔 비자금과 격려의 마음을 보내주어 가게를 마련하고 장사를 시작했다. 두 아들과 아내, 가족이 합심해 가게를 일궜고 그런 박씨 가족을 하늘이 도와 개업 초부터 문전성시를 이뤄 6개월 만에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어려움에 처하니까 진정 소중한 친구 5명이 가려지더라고요. 또 나만 알던 내가 내 주위의 다른 사람을 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었고…”

죽을 힘을 다해 어려움을 딛고 일어난 박씨는 이전에는 정신없이 앞만 보고 가느라 몰랐던 가족의 소중함과 사람에 대한 믿음, 넉넉한 마음을 얻었다.

기운을 좀 차린 후 다시 노인들을 돕고 싶어 모현면사무소 복지과에 문의했고 「예닮마을」을 알게 됐다. 남을 도우면서 더욱 힘을 얻었다.

‘기력도 좋지 않은 노인들도 삶을 위해 애쓰는데 내가 왜 그리 약한 생각을 했나’ 뉘우치기도 했다.

그도 넉넉하진 않았지만, 남에게 준만큼 내 몫이 비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 채워졌다.

용인에 오기 전, 술도 좋아하고 가족과 시간도 잘 맞지 않았던 박씨는 지금은 가족과 항상 모여 있어 즐겁다고 한다. 매일 가족들과 나누는 평범한 일상에서도 ‘이런 것이 바로 인생사는 거구나∼’하며 즐거움을 느낀다.

“며느리가 들어와 가족이 더 늘어 좋아요.”

2002년도에 첫째 아들인 현구씨(31)가 결혼하면서 박씨가족은 5식구가 됐고 지금은 손자 동민(2)이까지 6식구로 불어났다.

▲ 지난 6일 예닮마을 어르신들이 강촌식당에 초청돼 떡국과 만두를 드시고 있다.
나름대로 자신이 로맨티스트라는 박씨는 아들 내외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며느리 수진씨에게 깜짝 선물을 안겼다. 당시 인기 많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새로운 가족을 맞이한 기쁨과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자작시를 띄워 여행에서 돌아온 수진씨에게 들려주면서 꽃다발을 한 아름 안겨줬던 것. 이날 박씨의 새 아기 수진 씨는 감격의 눈물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요새는 복덩이 손자가 태어난 탓에 웃음꽃이 사라질 날이 없다. 17개월 된 손자 동민이는 아장아장 걸으며 한창 호기심어린 눈으로 물건들을 만지고 다니느라 할아버지 박씨는 한시도 눈을 땔 수가 없다. 박씨는 손자가 “커서 노동부장관이 돼 어려운 사람들 편에서 큰 힘이 돼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주어진 현실에 만족할수 있는 자세로

박씨의 든든한 두 아들 현구(31)씨와 성구씨(28)는 한번도 아버지를 거역하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아이들과 아내는 노인봉사를 같이 하자고 할 때도 당연스레 함께했고 내가 망해 쫓기듯 내려왔을 때도 아무 탓 하지 않고 도리어 나를 감싸줬다. 묵묵히 내편 되어 함께 해 준 자식들에게, 여태껏 말은 안했지만 큰 힘이 됐고 마음깊이 고마워하고 있다”고 말하는 박씨 자신에게 팔불출이라 해도 할 수 없다면서 두 아들 자식 자랑에 한동안 여념이 없었다.

가족과 함께라면 항상 즐거워 보이는 박씨에게 비결을 물었다.
“다른 것 없지, 가족끼리 서로를 믿어주고 부모를 거스르지 않는 것. 또…큰 욕심 부리지 않고 주어진 현실에 만족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

박종기씨가 말하는 단순하면서도 진리가 담긴 세상살이가 즐거워지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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