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여성상담소 양해경 소장

▲ ‘한부모 가정’ 처음 제안한 양성평등 전문강사 용인여성상담소 양해경 소장
“너는 결손 가정 아이야.”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사람들 입에서는 ‘결손 가정’이라는 말이 쉽게 흘러나왔다. 어머니, 아버지 없이 사는 게 뭐 그리 불완전하다고? 열심히 살아가는 그들에게 이 말은 사회가 무심코 던진 돌이였다. 하지만 2005년, 지금 그런 말을 쓰면 오히려 ‘무식하다’는 핀잔을 듣는다. 대신 우리는 ‘한부모 가족(정)’을 사용한다.

정말 중요한 변화지만 이 말을 처음 사용한 한 여성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또한 2000년 11월 용인에서 발생한 청소년성매매 사건과 관련된 관내 주요 인사 11명이 경찰 수사를 받고 구속되기까지, 청소년성매매사범 신상을 세상에 공개하기까지 한 여성의 피나는 노력이 숨어있다.

용인여성상담소 양해경 소장(52·상현동)이 그다.

#스스로 택한 용인 여성운동, 행복하다

2000년 1월부터 수지에 산지 벌써 7년째다. 여성 인권을 보호해 줄 만한 여성 단체조차 없었던 용인 땅에서 양 소장은 상담 활동을 하며 여성운동에 나섰다.

1987년 한국여성민우회 창립 멤버인 그는 95년부터 2002년까지 여성민우회 가족과성상담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 당시 서울에서 함께 여성 운동을 하던 이경숙, 이미경, 홍미영, 한명숙 국회의원, 지은희 전 여성가족부장관 등 선배, 동료, 후배들은 정.관계 등에서 활약하고 있다.

중앙정부를 파트너로 삼아 일하다가 거꾸로 기초 지자체에서 활동하는 것이 흔하지 않은데 양 소장은 특이하게 2002년 개별 상담부터 시작해 2003년도 용인여성상담소 문을 열고 지역에서 양성평등을 위한 교육을 실시했다.

“처음 용인에 왔을 때 답답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일일이 대응할 수 없는 현실도 답답했죠.”

그렇다고 지역에만 얽매여 있지 않았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성인권 위원, 교육부 성교육자문위원, 국무총리실 청소년보호위원회 정책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99년 여성복지유공자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2004년 국무총리 청소년보호위원회 성문화분과 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지난 1월 청소년보호 유공자 대통령 표창장을 받았다.

어린이를 위한 여성학 그림책‘나, 열세살 여자’(2003), 청소년 성교육 지침서 ‘두근두근상담실’(1998), 시민정치교육시리즈 중 ‘양성평등 가족관계’등 책도 여러 권 썼다.

서울, 용인을 오가며 여성운동을 펼쳐온 그는 97년도에 ‘한부모 가족(정)’이라는 말을 처음 제안했고 청소년매매사범 신상 공개를 담은 청소년성보호법 제정운동에도 적극 동참했다.

양 소장은 2000년 11월에 일어난 ‘미성년자 성매매’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관내 주요 인사 11명이 성매매로 적발돼 화성경찰서에서 수사를 받은 사건이다. “그 당시 용인에 이 사건의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단체가 거의 없었어요. 서울시청 앞에서 피케팅을 벌이며 운동을 했죠.” 그 후 유야무야될듯 했던 사건 관련자들은 처벌을 받았다. 양 소장은 “청소년 성폭행, 성매매는 ‘소리 없는 살인’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강력히 주장한다. 강도·강간 사건이 빈번히 발생하는 용인지역에서 청소년 성보호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지역에서 여성 운동을 한 후, 여성인권에 대한 인식이나 제도 마련 등 용인에 많은 변화가 있다고 평가한다.

용인여성상담소 역시 의미가 크다. “상담을 받고 행복해진 여성은 많지만 드러낼 수 없는 실정이다. 저를 만난 후 달라진 삶을 사는 여성들이 용인에는 많지만 이들의 특성상 드러낼 수 없어서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행복해진 여성들이 많다.”

상담소에는 상근직 직원 3명과 자원봉사 20여 명이 상담 봉사를 하고 경기도비, 용인시비로 상근자 급여를 충당하고 그 외에 지인들의 후원금으로 여성폭력인권피해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지만 한계점도 드러나 내년에는 홈페이지를 제작하고 법인화를 준비 중이다.

#욕심 없이 능력만큼 일한다

양 소장도 한 때 ‘가사노동 근로자(전업주부)’였다. 지금은 서울에서 따로 살며 직장인이 된 두 딸을 키우며 남편을 뒷바라지 하며 평범하게 살았다.

그의 남편은 민청학련 관련자로 15년형을 받는 등 민주화과정을 거치면서 정치에 몸담았으며 현재 민주평통용인시협의 회장이자 교육부 산하 한국사학진흥재단 이사장인 김학민씨다. 남편의 본적이 기흥읍 하갈리 181번지 이어서 결혼 후 본인의 본적도 용인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양소장은 양성평등을 주장하며 여성운동을 하면서도 남편 때문에 손해 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정치적으로는 왜 남편 뒷바라지만 하고 있느냐는 질문도 숱하게 받았다. ‘남편 뒷바라지로 당신은 양성불평등하게 내조만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양 소장은 “내가 여성이고 아내라서가 아니라 내 남편이지만 개인적으로 도와줄만한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에 돕는 것"이란다. 남편은 누구보다 자기 관리를 잘하고 공익적 가치관이 확실해서 사회적인 역할을 맡겨주면 정말 개인적 욕심 없이 일 할 거라고 믿는다”며 확고한 지지의 신념을 보였다.

그가 살면서 힘들었던 적도 남편이 하고자 하는 일이 잘 안됐을 때였다고 털어 놓았다.

“저보고 정치하라는 얘기도 하는데, 결국은 ‘권력을 잡기 위해' 시민운동을 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고 게다가 부부가 나선다고 할까봐 안 해요.”

하지만 그는 지역 여성들이 정치 활동을 할 수 있게 여성네트워크는 준비할 계획이다.

이 일마저 정치활동으로 보는 시선이 있지만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정치활동이 아니고 정치를 하기 위한 단체도 아니라고. 여성의 정치진출을 도와주는 일이지요. 내년 시의원 선거시 지역구 대표가 대부분 남성들이 될테니, 그럼 비례대표 1번은 반드시 여성이 되어야 하지 않나요?”

양 소장은 할 수 있는 능력만큼만 일을 벌이는 스타일이다. 남들이 보기엔 깍쟁이 같고 별로 추진력도 없어 보일 것 같지만 소박하고 추진력이 있어서 지금껏, 그리고 앞으로도 여성 관련 일을 당당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앞으로 지역내 공식행사시 검은 양복 입은 남성들은 앞 단상위에 앉고 여성들은 뒤에서 안내나 하고 있는 모습을 변화시켜야 하지 않겠느냐고 힘주어 말한다. 심지어 여성이 주최하는 행사장에서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이 행태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즉 여성들이 단상위에 많이 올라갈 수 있는 용인시가 되도록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적극 지원하는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얼마전 용인시에서 지역사회복지협의체를 구성하면서 사회복지학 석사이면서 현장경험이 누구보다 풍부한 자신을 '여성복지분야'에서 배재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용인이 정말로 많이 변화되어야 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지역이 제대로 변화하기 위해서 지역신문도 모니터되어야 함을 절실하게 느껴서 지역언론 모니터운동도 해야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여성 운동이 ‘이혼’이나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제안한 정책들이 국가시스템으로 받아들여지고 여성 의식에 눈뜨며 행복해 지는 여성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 즐거우니까 이 일 하는 것 아닌가.”

양성평등의 길을 여는 두려움 없는 여성, 우리는 양 소장을 적어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용인여성상담소 281-1366)

양해경 소장은...

한국여성민우회 창립 멤버,

최초로 ‘한부모 가족(정)’을 사용한 여성운동가.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며 중앙 시민운동권에서 여성운동을 펼쳐온 양해경 소장은 선배, 동료, 후배들이 국회의원, 장관으로 활동하고 있을 때 험난한 가시밭길을 스스로 택했다.

여성운동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용인에서 상담을 시작했고 3년 전 용인여성상담소 문을 열었다.

정치하는 남편 때문에 따가운 시선도 받았고 지역 토박이들의 외면도 받았다.

가슴이 답답했다.

하지만 그의 열정은 용인시에 양성평등의 길을 열었고
여성을 웃게 만들었다.

가족을 사랑하는 여성, 여성과 남성을 동시에 사랑하는 여성
지금도 그 사랑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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