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맛내는 손으로 수묵담채화 그리는 권기옥씨

▲ 장 맛내는 손으로 수묵담채화 그리는 권기옥씨
된장, 청국장의 명품으로 꼽히는 (주)상촌식품 권기옥 대표(74·백암면 박곡리)가 인사동 갤러리 상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열고 있다.

이미 그가 운영하는 상촌식품은 많이 알려져 유명 백화점은 물론 전 세계에서 인기가 높다. 물론 관내 대표 기업으로 이름이 나있다.

하지만 전통 장맛을 내는 권 대표는 서울에서는 동양화가로 더 유명하다. 그가 말을 꺼내지 않으면 모두가 장 담근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한가롭게 회사를 맡겨 놓은 채 붓질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인사동서 두번째 개인전

권 대표는 회사 얘기만 꺼내면 바빠진다. 아침 일찍부터 퇴근할 때까지 회사 일에서 손을 떼지 않는다. 목장이 있던 백암면 박곡리, 윗말과 인연이 깊었던 그는 가난한 마을에 마을 주민들과 전통장 공장을 세웠다. 그 때가 1985년. 그 때 당시만 해도 장을 사먹는 사람을 드물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장 담그는 일이었으니.

“증조할아버지가 대원군과 친구여서 집에 차집(요리사)이 직접 와 궁중음식을 선보였죠. 아버지가 수라상처럼 받는 모습을 보고 자란 덕에 그 맛을 그대로 재현해서 전통장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어육장’은 생선과 고기가 다 들어가고 서민은 즙장이라고 해서 야채장을 먹었죠.”

그는 그렇게 전통 장을 만들었다. 방식도 옛 것 그대로다. 메주를 띄워 항아리에 담가 지금까지 판매하고 있다. 콩 가격이 변해도 맛은 변하지 않는다. 전통된장, 청국장은 그래서 인기가 좋다.

“된장을 만들면 2년이 걸려요. 수익성이 없으니까 다들 안하죠. 사명감 없이는 못해요.”

국제식품 박람회서도 극찬을 받는다. 콩, 물, 소금 밖에 안 들어가는 간장 맛에도 감탄한다. ‘이런 맛이 날 수 있을까. 당신도 훌륭하지만 나라도 훌륭하다.’

권 대표는 이러한 말을 들을 때 마다 전통을 보존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깨닫는다. 이렇게 상촌식품이 자리를 잡기 까지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문닫아야 할 고비도 여러 번 있었지만 쉽게 넘어지지 않았다. 꿋꿋하게 한 길 만을 고집하는 권씨에게 시련은 곧 기회였기 때문이다.

“10년이 지나니까 이제 안정적인 것 같아요. 요즈음은 웰빙 바람 때문에 전통 장도 많이 찾고요.”

회사 일에 일일이 신경을 쓰면서도 매일 밤이 되면 회사 한켠에 마련된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인사동 화실에서 작업을 멈추지 않는다.

그는 장맛이든 그림이든 손끝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 철의 여인 동양화가

남들보다 열심히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권 대표는 쉴 틈이 없다.

운보 김기창 선생 제자인 그는 서울 사범대를 졸업하고 마흔이 다 돼서 잠시 뒤로 미뤄놨던 그림을 다시 시작했다. 인사동 골목을 누비고 다닌 지도 어느덧 40년여 년. 소은회를 통해 제자 양성도 꾸준히 하고 있다. 김은호 선생 제자들이 모인 후소회에도 20년 넘게 몸담았다.

그리고 용인미술인회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용인미협 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경기미협 초대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1997년 용인시 문화상을 수상하면서 동양화가로서 입지를 굳힌다.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머리는 식혀야죠. 쉬는 과정은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이니까요.”

그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다. 붓 터치에 힘이 넘치고 열정이 살아 있는 것도 그의 에너지가 배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권 대표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철의 여인’이라고 부른다.

“가만히 보면 여자 같은데 속을 들여다보면 남자 10명은 들어 있어요. 일흔이 넘었어도 얼굴에 주름하나 없고 화장기조차 없잖아요. 사업도 혼자 뛰어 다니고 욕심 없이 양보하는 그 마음이 수묵담채화에 그대로 옮겨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작품에 기운이 샘솟는 것 같아요.”소운회 김정국씨는 권 대표를 아낌없이 칭찬한다.

이제까지 월급 한번 받아본 적 없다는 그는 3남매 역시 훌륭하게 키웠다. 큰 아들은 카이스트 교수고, 둘째 아들은 벤처기업 대표, 딸은 영남대 피아노과 교수다. 그는 자손들이 열심히 살아서 일가를 이룬 것에 고마울 뿐이다.

그를 옆에서 지켜주는 며느리도 시어머니 활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한다. 말보다 실천이 앞서는 시어머니 모습을 존경해서다.

80살이 되든, 90살이 되는 건강하면 그림 작업 계속 하겠다는 권 대표는 “이 다음에라도 엄마가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바람을 전하면서 “가끔 너무 극성을 부리지 않나”하며 쑥스러운 말을 건넨다.

후계자를 키우고 더 열심히 살겠다는 그의 인생 여정은 끝이 없어 보인다.

전통장에 깃든 은근과 끈기가 화선지에 깊게 스며 오래도록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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