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문제 연구 외길 40년 - 노인의 날 만든 이돈희씨
이번 삶의 주인공은 노인의 날을 만든 이돈희씨다. 이씨는 노인의 날과 그 뜻이 사회 전반에 전화되도록 노력해온 ‘노인문제’ 전령사다. 이씨의 삶을 통해 노인의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자.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러니까 내가 선린상고를 다닐 적인데, 그 때가 63년도에요. 내가 노인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때입니다”
이돈희씨(58·성복동)의 첫마디에 집중력이 높아진다. 노인문제에 관심을 갖기에는 너무 어린나이라는 선입견 때문이다.
아버지날과 노인의 날을 만든 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이씨. 이씨는 많은 방송과 인터뷰탓에 익숙한 듯 인생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노인복지 전반을 삶의 이야기 속에 담아 풀어냈다. 잠시 삶과 노인문제에 대한 이씨의 이야기에 귀기울여보자.
이씨는 삶에서 작은 실천이 곧 사회운동의 좋은 방법임을 보여준 사람이다. 이씨는 무명인이 어떻게 사회 여론을 환기시켜나가는지를 잘 보여줬다. 예를 들어 ‘노인의 날을 만듭시다’라는 내용을 신문의 작은 귀퉁이에 광고로 실으면 그것이 몇십년이 걸리더라도 국가가 인정하는 국가기념일 ‘노인의 날’로 성사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물론 그 안에 측량할 수 없는 노력이 녹아 있음은 잘 감안해야 한다.
이씨는 선린상고를 졸업하고 동국대 상학과와 건국대 행정대학원 부동산학과에서 학위를 받았다. 이후 토지공사에 입사해 20년간 재직했고, 현재는 감정평가사로 일하고 있다. 이씨는 한국노인문제연구소와 한국노인학회를 설립하는 등 노인문제를 연구하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 고 2때부터 아버지날·노인의날 제정 주창
“고 2때 마포아파트에 살았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노인정이란 게 없어요. 하루는 아파트 노인들이 모였는데 아파트 1층의 햇빛도 잘 들지 않는 지하공간에 모여들어 휴식을 취하는 것을 봤어요. 그것을 보고 심각한 문제라는 생각을 했어요”
언뜻 이해가 안 된다.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에서 이씨는 30여년 뒤 한국 사회가 심각한 고민과 함께 직면하게 된 ‘노인문제’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 비범한 예지력은 단순히 뛰어난 주의집중력의 성과만이 아니라 때로는 돈키호테와도 같았던 이씨 자신의 여러 삶의 모습과 그를 뒷받침했던 가치관에서 비롯됐다.
1970년 11월 29일 주간조선에 다음과 같은 캠페인 광고가 실렸다.
「얼마 후면 12월, 이해도 저물어 갑니다. 노인도 인생의 종장. 노인 공경심과 보호심을 고조시키고자 제가 해저무는 12월을 <경로의 달>(노인의 달)로 정했습니다. 각 가정과 양로원에 계신 노인들을 위해 힘써주십시오. 청년 이돈희」
이돈희라는 청년이 제정한 <노인의 달>. 당돌한 일처럼 보이는 이런 일화는 40년을 노인공경과 효 사상 회복을 위해 노력했던 그의 행보 전부와 일맥상통한다. 이듬해인 71년 이씨는 4월8일을 노인의 날로 정하고 마포에서 제1회 노인의 날 기념식을 열었다. 26년 뒤 문민정부가 10월 2일을 법정기념일인 노인의 날로 제정하는 단초가 된 행사다.
당시 이씨 나이는 24살.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학비 40만원을 행사비로 내놨다. 72년에는 한국노인문제연구소를 차리고 76년에는 한국노인학회를 설립해 노인문제 연구에 몰두했다. 모두 학업을 하면서, 감정평가사 자격증도 취득하고 토지공사에도 최고 성적으로 입사해서 정상적인 회사생활을 해가면서 한 일이다.
이씨는 노인의 날’을 제정하자며 신문 등 언론매체에 1500회 이상 ‘독자투고를 했고, 300회 이상 방송에 출연해 경로효친사상 부활을 주장하는 등 노인문제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환기시키는데 힘썼다. 대통령과 국회의원등 정치인들이 노인문제에 관심을 갖고 경로효친을 사회에 확산시키는 노력을 해달라며 지속적으로 편지를 썼다.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 이씨의 사회운동은 무엇으로부터 가능했을까.
이씨는 “젊은이도 언젠가는 노인이 됩니다. 노인은 절대로 젊은 당신과 무관하지 않고, 바로 당신이 훗날의 노인입니다.”라고 말했다. 또 “효친과 경로, 부모에 대한 효와 노인에 대한 존경심을 우리는 회복해야 합니다. 이웃 노인에 까지 극진하라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내 부모에게 만이라고 정성스럽게 대하고 모시면 한국 노인문제 반이 해결됩니다. 남은 반은 국가가 담당하는 것이죠”라고 말을 이었다.
유교 효사상과 노인공경사상이 비교적 일상화된 한국에서 이씨의 주장은 남다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바탕으로 한 이씨의 행동은 확연히 남다르다. 물론 이씨 진단에 따르면 “부모를 찾지 않는 자식들은 버려진 부모에게 국가의 지원도 받을 수 없는 장애물이 되는 실정”이라며 “가족의 영역에서 버림받는 노인들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만 놓고 봐도 이 나라에 효친경로는 맥이 끊긴 상태”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효친경로사상의 부활을 전파한다.
# 어머니날을 어버이날로
이씨는 아버지날도 만들었다. 고2때부터 1200명을 대상으로 ‘아버지날을 만들면 몇 월이 좋을지’를 주제로 설문조사도 하고 대학 때는 이대학보에 ‘이대에서 아버지날을 정해 행사를 하는 것이 어떤갗라는 취지의 광고를 싣기도 했다.
73년 기존에 어머니 날이 어머니와 아버지를 함께 지칭하는 어버이날로 바뀐 것은 그를 위해 많은 신문사에 투고하고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며 사회 전반의 의식변화를 유도한 이씨의 노력이 보태진 때문이다.
고교시절 이씨가 행한 설문에 대해 어떤 이는 “약자인 어린이와 여자를 위한 날은 인정할 수 있지만 강자인 남성을 위한 날이 필요하느냐”고 하며 회의적인 반응들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채 20년도 못돼서, 한국의 남성들은 가정과 회사로부터 끊임없이 퇴출위협을 느끼는 위태로운 존재가 됐다. 옛날 혜안을 가진 사람들이 만든 어버이날이 더 이상 강자가 아닌 남성을 위로한다.
오는 10월 2일은 제9회 ‘노인의 날’이다. 한국사회는 고령사회에 대한 우려를 쏟아내며 두려워하고 있다. 적절한 해법 역시 아직 찾지 못했다. 당장 내 집에 내 부모를 봉양하고 모시는 일에서 조차 어떠한 믿음과 행동양식이 필요한지 몰라 당황하고 있다.
어버이날과 노인의날을 만든 이돈희씨는 ‘효친경로를 부활시키자’고 제안한다. 이씨가 내놓는 해법이다. 효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내 부모를 모시는 일에 필요한 믿음이 되고 알맞은 행동양식을 제시해 줄 것이라고 일갈했다.
지금은 40년간 노인의 날 만들기와 노인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이씨의 남다른 길이 결실을 맺어 우리에게 의미있는 물음을 던진다.
곧 나의 문제가 될, 또 현재 우리의 문제인 노인들의 ‘행복한 삶’에 대해 다 함께 생각하고 합의하고 실천해 나가야 할 때다.
이씨는 “귀농형 실버타운”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이씨는 “한 평에 만원이라 생각하고 젊은 시절부터 아르바이트 하며 돈을 모았다”며 “그 자체가 즐겁고 보람있는 일이 됐고, 이제는 실버타운의 꿈이 구체화 되고 있다”고 말했다.
윤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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