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소리꾼 김일랑씨

# 타고난 목청

“해당화 피고 지는 섬 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 온 총각 선생님, 열아홉살 섬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 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에버랜드 조경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반주 한잔 걸친 김일남(64·포곡면 전대리)씨가 걸죽하니 노래 한자락 뽑는다.
“동네 사람 뭔 일인가 다 구경나오겄네.”

“다 아는데 어때? 서울엘~ 랑 가지를 마오.”

가로등 빛을 따라 마을 어귀까지 울려퍼진다.

전대리, 포곡면에서는 김씨의 노래 실력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이 곳에서 태어나 선소리꾼으로만 산 지도 수십년 째. 마을 돌멩이까지 다 안다는 김씨를 모를 사람도 없다.

요령을 흔들고 구슬픈 소리를 메기는 선소리꾼 하면 김씨를 떠올리니 그 유명세야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타고난 목청이 좋아 소리를 시작했다는 김씨는 총각시절 서울에 올라가 ‘배뱅잇굿’의 달인 이은관씨한테 3개월 정도 소리를 배운 일이 있다.

“‘소리는 나보다 더 좋아’이은관씨가 칭찬 할 정도로 청이 좋았지. 묵계월…지금 내로라 하는 사람이랑 같이 배웠으니까. 근데 학벌이 안되서 오래 못 있었어.”

소위 일류급들만 남고 학벌 짧은 사람들은 그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이다. 그는 젊었을 때 장소팔을 쫓아다니며 쇼단에서 활동할 정도로 목청도 좋았고 소리를 즐겼다.

“초등학교도 뒤로 갔다 앞으로 나오고 그랬는데, 배운게 있어야지.”

김씨 말에 소리 인생을 제대로 가지 못한 응어리가 가슴 속 깊이 맺혀있었다. “말도 못하죠…” 하지만 그 한이 소리에 실려 망자가 가는 길을 극락으로 안내한다.

# 한(恨) 소리로 풀어

그는 아버지가 일본 탄광서 돌아가신 후 시영부모 밑에서 자랐다. 부모 없이 외롭게 살아온 인생 탓인지 그 한 역시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 보였다.

그나마 소리가 안식처인 듯 소리를 배우러 여기저기 다니다 1964년 혼인해 아들 하나에 딸 둘을 낳아 고향에 뿌리를 내리고 지금은 소리꾼으로 불려다닌다.

“소리하고 싶으면 동네 큰일 있을 때 마다 가서 노래불렀지. 남이 듣기 좋다니까 하는 거지.”

김씨는 옛 일을 떠올리며 용인의 명물 욕쟁이 할아버지 고 고성덕씨를 기억했다.

“선소리 잘 하는 사람은 곰보(고성덕씨 별칭)밖에 없었어. 용인시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지. 그 사람 없으니까 용인에서 선소리 제대로 하는 사람이 몇 안돼…거의 없지.”

“장사나 나야 메기는 소리 듣지 요즈음은 듣기 어려워. (선소리꾼)없어서 녹음한 소리 틀어 놓고 하기도 해.”

“곰보가 없어지는 바람에 소리도 없어지고 나도 죽으면 이 마저 없어지는 거지.”

시대가 변한 탓일까. 그의 소리도 점점 세월 속에 묻혀져 간다. 소리한 번 하고 나면 이틀 동안 목이 쉬어 고생한다는 김씨지만 그래도 상이 나면 주저없이 요령을 들고 나선다.

“상주들을 울고 웃기는 건 선소리꾼에 달렸어.”

1년에 많게는 12번 정도 장례식에 가서 소리를 메긴다는 그는 “지금도 내 소리는 좋지”하며 “부모님이 안계시니까 울어서 소리가 좋아졌나봐”라며 농담까지 던진다.

# 내소리 들어야 극락간다나

/인제가면 언제오나
한번가면 그만이지
다시 못올건 꿈이로구나
극락 세계가 멀다해도
대문밖이 극락일세
인생 일장춘몽인데 한번가면 다시 못올
황천길이 어디메뇨./

“그냥 하려니까 맛이 안난다. 밍숭밍숭하네.”여전히 젊은이 못지 않은 소리를 과시한다.

김씨는 마을 장례가 줄면서 경기도, 강원도, 경상도, 충청도 등 4개 도를 다니며 선소리를 한다. 게다가 일하러 다니느라 시간도 없고 교회를 다니는 식구들이 반대해 소리할 기회도 많이 줄었다.

“누구는 소리 해주고 누구는 안해주면 감정 상하잖아. 죽기 전에 열심히 하는 거야. 소리가 아깝고 하니까.”

젊을 때부터 동네 장례를 다 치뤘다는 김씨는 “내가 노래불러야 극락 간다고 사람들이 그런라며 소리가 아직 좋다고 얘기한다.

아들 김선동(39)씨 역시 “못배우시고 장손이라는 부담 때문에 한 풀이를 소리로 하시지만 재미있게 사시고 주위에서 소리 듣는 것을 좋아한다”며 아버지 말에 공감했다.

# 정작 내가 죽으면…

그래도 소리꾼으로 불려다니며 살아온지 수십년이지만 여태컷 목청을 이어받을 제자가 없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정작 내가 죽었을 때 선소리할 사람이 없지. 후계자가 있어야 하는데.…”

후계자를 키우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살아서 움직이려면 돈도 벌어야 하고 현실은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돈주고도 못 배우는 게 목청이고 소리에는 구수한 맛이 실려야 하는데.” 그는 타고난 소리꾼을 애타게 기다리는 듯했다.

“소리꾼은 상여 매고 가는 사람 안 힘들게 중얼중얼 거리며 힘을 주는 좋은 소리를 해야 돼. 사설을 잘 해야지. 이런 건 배우면 되고.”

무엇보다 망자가 좋은 길로 가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선소리꾼이라고 말하는 그는 자신의 소리를 전수할 방법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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