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학교를 비운 사이 연꽃을 심었습니다

물과 육지에 나는 꽃 가운데 사랑할 만한 것이 매우 많다.
진(晋)나라 도연명은 유독 국화를 사랑했고
당(唐)나라 이래로 세상 사람들은 매우 모란을 사랑했다.
나는 유독 진흙에서 나왔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아니하며,
맑고 출렁이는 물에 씻기어도 요염하지 않고, 속은 비었고, 밖은 곧으며
넝쿨은 뻗지 않고 가지는 치지 아니하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꼿꼿하고 깨끗하게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나,
함부로 가지고 놀 수 없는 연꽃을 사랑한다.
내가 말하건대, 국화는 꽃 중에 속세를 피해 사는 자요,
모란은 꽃 중에 부귀한 자요, 연꽃은 꽃 중에 군자다운 자라고 할 수 있다.
아, 국화를 사랑하는 이는 도연명 이후로 들어본 일이 드물고,
연꽃을 사랑하는 이는 나와 함께 할 자가 몇 사람인가?
모란을 사랑하는 이는 마땅히 많을 것이다. - 주돈이의 <애련설>


▲ 연분홍 수련. 정갈한 아름다움이 있다.
ⓒ2005 정일관
중국 송나라 때, 태극도설을 지은 철학자 주돈이는 위와 같이 연꽃의 아름다움과 품격을 찬양하는 애련설(愛蓮說)을 지었습니다.

진흙으로 비유되는 속세 속에서도 물들지 아니하는 수도인을 연꽃으로 상징했던 불가(佛家)는 말할 것도 없이, 유가(儒家)에서 주역을 바탕으로 중국 이학을 집대성하고 유교를 다시 체계화했던 주돈이도 연꽃을 매우 사랑한 것을 보면, 연꽃은 매우 종교적인 향기를 풍기는 꽃이라 할 수 있겠지요.

경남 합천에서 아이들과 함께 부대끼며 대안교육을 일구어 가는 원경고등학교의 교화(校花)도 연꽃입니다. 학교의 나무, 교목(校木)을 목련으로 정하였으니 학교를 상징하는 꽃과 나무가 다 연꽃입니다. 수련(睡蓮)이냐, 목련(木蓮)이냐의 차이죠.

▲ 하얀 수련. 마음이 절로 맑아진다.
ⓒ2005 정일관
그런데 학교에는 매우 오래된 큰 목련 나무가 있어 봄이 되면 그 고아한 자태를 한껏 뽐내어, 학교의 자랑거리인데, 수련은 없어서 늘 아쉬웠습니다. 게다가 학교를 소개하는 학교 현판에는 교화로 연꽃을 소개해 놓고는, "진흙 속에 피어도 진흙에 물들지 않는 아름다움은 경계 속에서도 경계에 물들지 않는 공부인 표상"이라는 설명까지 덧붙여 놓았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연꽃을 심기로 하였습니다. 늘,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를 올리고 학교를 정돈하시는 교장 선생님, 원경고등학교의 아름다움은 교장 선생님 손에서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학교 조경을 위해 애쓰시는 교장 선생님께서 가까운 적중 초등학교 연못에 연꽃이 심어져 있는 것을 아시고는 적중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께 연꽃을 분양해 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 줄무늬 화분 안에서 피어난 수련 두 송이.
ⓒ2005 정일관
연못은 팔 수 없어 도로 조경용으로 쓰이는 타원형 줄무늬 화분을 두 개 구입하여 학교 현관 앞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연꽃을 옮겨 심는 날짜를 학생들이 체험학습을 떠나는 날로 잡았습니다. 6월 7일부터 9일까지 1학년 학생들은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서, 뮤지컬 '지하철 1호선' 관람과 청와대, MBC 방송국 방문, 경희대학교와 교육혁신박람회장을 견학하는 문화체험활동을 하기 위해 학교를 떠났고, 2학년 학생들은 7일부터 11일까지 5일간 소록도에서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학교를 떠났습니다. 3학년만 학교에 남아서 수업을 했죠.

학교 주변 저수지에서 퍼온 진흙 뻘에다가 적중 초등학교에서 자라던 수련을 조심스레 옮겨 심었습니다. 햇빛이 잘 들지 않는다고 교장 선생님은 걱정하셨고, 아직 작은 꽃봉오리인 수련이 제대로 꽃을 피울지도 잘 몰랐습니다.

▲ 수련 두 송이. 아름다움에 마음을 열어야 할 때다.
ⓒ2005 정일관
1학년 학생들이 문화체험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9일 밤부터 단비가 내렸습니다. 다음날 아침, 비에 흠뻑 젖은 학교로 출근하여 교무실 자리에 막 앉았을 때입니다. 한 여 선생님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빨리 나와 보세요. 연꽃이 피었어요. 너무 너무 예뻐요."
"예? 연꽃이 피었다고요?"

저는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현관으로 뛰어나갔습니다. 교무실에 있던 선생님들도 모두 달리다시피 해서 나갔습니다. 입을 꼭 다문 꽃봉오리가 옮겨 심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열리다니!

▲ 연꽃을 굽어보고 있는 여 선생님
ⓒ2005 정일관
저는 아름다운 연꽃을 보자 그만 몸이 떨렸습니다. 학교를 대표하는 교화로 모셔온 연꽃이 마침내 그 첫 꽃을 피웠다는 의미도 가상했지만, 그 아름다운 자태야말로 깎아놓은 듯, 조각한 듯, 조화를 만들어 꽂아놓은 것 같이 정교하였기에 이런 진흙 뻘 속에서 어떻게 이런 청초한 꽃을 피울 수 있었을까? 믿어지지가 않아, 열린 꽃을 보고 제 입은 함께 벌어졌지만, 다물 줄을 몰랐습니다.

저는 연꽃에다가 깊숙이 합장하였습니다. 전날 전주 덕진 공원에서 보았던 연꽃은 화려하였지만 너무 멀어서 손을 내밀 수 없었지만, 학교에 핀 이 조촐한 연꽃은 손을 내밀어 그 꽃잎을 어루만질 수도 있어 더욱 정감이 어렸습니다.

감탄만 하고 있는 제게 또 한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뭐 하세요. 연꽃사진 하나 찍으셔야죠!"

▲ 비 오는 운동장 가에서
ⓒ2005 정일관
저는 그 말이 곧 사진을 찍어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올리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그래서 산골 내륙의 한 작은 마을, 작은 대안학교 교정에 피어난 꽃송이지만, 크게 보면 이 지구 위에, 이 우주 속에 피어난 한 송이 연꽃을 널리 보이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그래서 먼지 나는 세상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떨어버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세상이 연꽃처럼 정갈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진에 담았습니다.

하루 종일 비가 촉촉이 내렸고 저는 기분이 마냥 좋아, 아이들을 데려다가 연꽃을 보여주며 그 아름다움을 찬탄하였고, 때때로 쉬는 시간이 되면 연꽃에게 다가가 굽어보며 주돈이의 <애련설>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이 연꽃이기를, 경계 속에서 더욱 빛나기를, 우리 아이들도 연꽃처럼 피어나기를 빌었습니다. 또한 우리 학교 전체가 연꽃이기를, 더 나아가 전국의 대안학교 모두가 한 송이 연꽃이기를, 아니, 이미 한 송이 연꽃임을 자각하기를 간절히 기원하였습니다.

▲ 연분홍 수련. 경계 속에 처하여도 경계에 물들지 않는 공부인의 표상이다.
ⓒ2005 정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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