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원 석화촌의 테마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원한다. 그리고 그 행복의 조건으로 돈과 권력, 그리고 건강을 필수항목으로 꼽는다. 무형의 조건으로는 물론 마음가짐이다. 그런데 그런 여러 가지 조건 가운데서 요즘 크게 대두되는 것이 유머 감각이라고 한다.

▲ 우리 풍물패 조각상
ⓒ2005 이승철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의 결혼조건 가운데는 유머감각을 필수항목으로 내세우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갖고 있어도 재미없는 사람과 같이 사는 것은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의 삶을 요리에 비유한다면 유머는 아마 양념에 해당 되지 않을까. 유머가 없는 삶이 재미없는 삶인 것처럼, 아무리 좋은 생선이나 고기 등 좋은 재료를 요리하여도 양념이 제대로 첨가되지 않으면 결코 맛있는 음식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머를 우리말로 표현하면 해학(諧謔) 또는 익살이라는 말이 적당할 것 같다. 그리고 그 해학과 익살의 가장 많은 재료는 아무래도 에로티시즘일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기본욕구 중의 하나인 에로티시즘은 변함없는 관심과 호기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 멋있는 모양의 세열(공작)단풍나무
ⓒ2005 이승철
그런데 옛날 점잖 빼는 양반사회에서도 과연 그런 해학이 통할 수 있었을까? 한 마디로 그렇다고 한다. 요즘 시대상황과 맞물려 인기 있는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선조에게 이순신의 탄핵을 간하여 시청자들의 미움을 받고 있는 이항복과 그의 친구인 이덕형의 해학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가 많다.

어느 날 대궐에서 중신들끼리의 회의가 열렸다. 해당되는 벼슬아치들이 다 모였는데 뒤늦게 이항복이 나타난 것이다. 친구인 이덕형이 가만있을 리가 없었다. 당연히 왜 늦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항복이 말하기를 “내가 회의에 참가하려고 일찍 집을 나섰는데, 오다가 길에서 보니 사람들이 모여서 싸우고 있지 않겠나, 궁금하여 가까이 다가가보니 글쎄 큰길에서 대낮에 환관은 스님의 머리털을 잡고, 스님은 환관의 음경을 잡고 대판 싸우고 있지 뭔가, 그래서 잠깐 구경하고 오다보니 늦었네 그려” 하는 것이었다.

회의장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머리털 빡빡 깎은 스님의 머리털을 어떻게 잡으며 음경 없는 환관의 음경을 어떻게 잡고 싸운단 말인가. 그러나 이 해학에는 당시의 당쟁으로 서로 뜬소문을 만들어 내고 모함하며 싸우는 정치판을 비판 풍자하는 뜻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두 사람의 해학에는 꼭 점잖은 것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상당히 노골적인 에로티시즘으로 과연 그런 농담을 주고받았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 거릴만한 것들도 많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 왼쪽은 둥근 조팝나무, 오른쪽은 불두화
ⓒ2005 이승철
점잖고 도덕적인 양반들의 해학에서도 에로티시즘은 빠질 수 없는 재료였던 셈이다. 즉 해학 중에서도 에로티시즘이 가미되어야 그만큼 재미있고 사람들의 흥미와 관심을 끌 수 있었던 것은 시대를 초월하는 에로티시즘의 독특한 매력 때문일 것이다.

지난 토요일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사설 공원 석화촌에 다녀왔다. 나지막한 언덕 1만2천여평에 조성된 공원은 꽃과 나무, 그리고 400여개의 석재 조각품들이 어우러진 해학과 에로티시즘의 조화였다.

나무와 꽃들이 잘 가꾸어져 아름다운 숲길 곳곳마다 세워져 있는 석재 조각품들은 보는 사람들 마다 미소를 자아내게 하였다. 어른 키보다 훨씬 큰 남근상 앞에서 치성을 드리는 여인의 모습이 눈길을 끄는가 하면 바지 앞이 불룩한 상투 튼 선비상도 있었다.

치마를 올리고 용변 보는 여인을 훔쳐보는 옹기장수와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넌지시 바라보는 선비상은 해학의 극치였다. 관음증으로 불리는 인간의 본능은 옹기장수나 양반계급인 점잖은 선비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 용변보는 여인을 훔쳐보는 옹기장수와 선비상(왼쪽)과 남근상앞에서 치성드리는 여인상
ⓒ2005 이승철
한 곳에는 사립문 안뜰에서 실물보다 엄청 크게 만들어진 남근을 자랑하며 유혹하는 선비를 비스듬히 누워 감상하는 여인상과 담 너머로 이들을 훔쳐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에로티시즘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조각품이 추한 포르노처럼 보이지 않고 웃음을 짓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묘사된 남근이 실물크기가 아니라 엄청 크게 묘사되었기 때문이리라. 지나친 과장이 현실을 뛰어넘는 해학으로 이해되기 때문일 것이다.

같이 간 친구들도 누구 한사람 추하다거나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 없이 웃기만 하였다. 지나가던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부부도 웃으면서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조각상 앞에 서보란다.

마침 한 떼의 고등학생들이 우리 앞으로 몰려와 조각상들을 보는 느낌이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재미있는데요” 한다. 여학생들도 전혀 얼굴을 붉히거나 수줍은 표정이 없이 재미있다는 표정이다.

▲ 왼쪽은 도깨비상, 오른쪽은 바지 앞이 불룩한 선비상
ⓒ2005 이승철
조각상은 전설로 내려오는 '고려장' 하려고 지게에 노모를 지고 가는 사람의 모습도 있었다. 재래식 결혼 모습과 여인의 시중을 받으며 술을 마시는 모습, 풍물놀이패의 모습도 재현되어 있었다.

한 곳에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 버들잎을 띄워 선비에게 대접하는 여인상과 보리방아를 찧는 삶의 모습도 있었다. 그러나 공원의 주요 테마는 단연 해학과 에로티시즘이었다.

동지 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여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른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돌 벽에 새겨 있는 몇 편의 시조 가운데 기생시인 황진이의 시 한수가 유별나게 눈길을 붙잡는 것은 왜였을까? 이 시 또한 깊은 은유 속에 감추어져 있는 에로티시즘 때문이 아니었을까?

▲ 에로티시즘의 극치를 보여주는 조각상
ⓒ2005 이승철
급속도로 개방된 성 풍조와 인터넷을 통한 무절제한 포르노 문화 때문에 뜻있는 사람들이 우려하는 요즘이다. 그러나 은근하고 해학적인 에로티시즘은 사람들의 삶에 여유와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활력소의 역할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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