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유산 되짚어보기 13> 금모래밭 펼쳐진 '낙동강 본포나루터'

▲ 창원시 동읍 옛 본포나루터로 여겨지는 낙동강변
ⓒ2005 이종찬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시인 박목월(1916~1978)의 '나그네'를 읊으며, 사람들의 기억에서 오랫동안 잊혀져버린 옛 나루터를 찾아간다. 옛 나루터로 찾아가는 길 곳곳에는 민들레와 토끼풀꽃, 제비꽃 등이 예쁘게 피어나 있다. 저만치 아지랑이가 가물거리는 들녘 곳곳에는 밀과 보리가 쑤욱 쑥 패어나 가끔 불어오는 봄바람에 까칠한 수염을 흔들고 있다.

근데,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그때 그 사람들이 등짝 무너져라 봇짐을 지고 나루터를 향해 터벅터벅 걸었던 그 길일까. 그때 그 사람들도 나루터로 가면서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이 작은 들꽃들과 현기증 일도록 가물거리는 들녘에 초록물감을 한껏 풀고 있는 저 밀과 보리를 오래 오래 바라보았을까.

가다가 목이 타면 나처럼 주막에 퍼질고 앉아 에라 모르겠다, 막걸리를 꿀꺽꿀꺽 마셨을까. 고소한 손두부에 묵은 김치 올려 허기를 채우다가 나처럼 주막 황토마당에 곱게 피어난 복사꽃 몇 개 따서 허연 막걸리 잔 위에 띄웠을까. 그때 그 사람들도 나처럼 '주모! 얼굴이 이쁘장한 거 보니까 처녀 때 총각 꽤 울렸겠네'라는 농짓거리를 하며, 은근슬쩍 주모가 막걸리 한 잔 따라주기를 바랐을까.

▲ 본포나루터로 여겨지는 낙동강 금빛 모래밭 옆에는 복사꽃이 한창이다
ⓒ2005 이종찬

▲ 옆구리에 강버들을 끼고 끝없이 달려나가는 금빛 모래밭
ⓒ2005 이종찬

긴 세월의 흐름 속에 사라져가는 창원시 동읍 본포나루터를 찾아가는 길. 옛 본포나루터는 지금의 버스정류장과 화물정류장 같은 곳이었다. 그 당시 본포나루터는 낙동강을 사이에 끼고 살아가는 창원사람들과 창녕, 밀양사람들을 서로 만나게 해주는 정겨운 곳이기도 했고, 서로 다른 농작물을 바꿔가는 장터이기도 했다.

지난 15일 오후 4시, 초록빛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처럼 찾아간 본포나루터는 옛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본포나루터가 있었던 자리에는 '알 수 없는 세상'이라는 자그마한 찻집 하나가 이곳이 옛 본포나루터였다는 사실을 읊조리며, 정말 '알 수 없는 세상'처럼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글쎄, 이 아름다운 곳에 곧 시멘트 둑을 쌓는대요. 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홍수가 나기 때문이라나 어쨌다나. 근데, 제가 지금까지 7~8년을 넘게 이곳에 살았지만 한번도 둑이 무너진 적은 없었어요. 태풍 매미 때 강물이 불어나 이곳이 한 번 물에 잠긴 적은 있었지만. 하여튼 저희 집도 곧 밀려나게 될 것만 같아요. 저는 이곳이 옛 나루터였다는 사실을 이렇게 해서라도 꼭 지키고 싶었는……."

10여년 앞, 남편과 헤어진 뒤 이곳에 10여년째 뿌리를 내리고 있는 '알 수 없는 세상' 주인 장윤정(52) 시인. 장 시인이 허름한 곳간 하나뿐이었던 이곳에 처음 자리를 잡게 된 것은 꼭 두 가지 이유였단다. 첫째는 낙동강의 아름다운 경치에 그냥 포옥 빠져버렸고, 둘째는 이곳이 옛 본포나루터였다는 역사적 사실이 있었기 때문.

하지만 이곳이 옛 본포나루터였다는 정확한 자료를 찾아내는 것은 어려웠다고 한다. 마을사람들의 입소문도 있고, 바로 이웃에 예로부터 나루터를 운영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게다가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지금까지도 금빛 모래밭에 나룻배가 한 척 널브러져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모두는 어디까지나 입소문에 불과할 뿐.

▲ 이 아름다운 강변을 둘러싸고 있는 둑을 허물고 시멘트 벽을 놓는다고 한다
ⓒ2005 이종찬

▲ 본포 낙동강 모래밭에서 바라본 '알 수 없는 세상', 장 시인은 저 곳이 옛 본포나루터였다고 굳게 믿고 있다
ⓒ2005 이종찬

그때부터 몇 년 자료수집을 위해 애쓰던 장 시인은 끝내 자료 찾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그대로 눌러 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눌러 살다보면 언젠가 누군가가 이곳이 옛 본포나루터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리라는 기대를 품은 채. 근데, 기다리는 그 누군가 나타나기도 전에 낙동강 둑 공사 때문에 이곳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이게 된 것.

"멀쩡한 둑을 망가뜨리고, 왜 시멘트 둑을 쌓으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어요. 관계기관에서 이곳이 옛 본포나루터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찾아내 복원을 시키지는 못할망정. 여기에 시멘트 둑을 쌓다보면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만 사라지겠어요? 생태계 변화까지 일어나지 않겠어요? 제발 이곳을 지킬 수 있는 자료 좀 찾아주세요."

장 시인의 부탁을 받은 기자가 찾은 창원시 동읍 홈페이지 '마을지명 옛이야기'에는 이곳 본포에 대해 "옛 지명은 '본개'이고, 구점에서 옹기 만드는 사람들이 옮겨 와 살았다는 데에서 유래"했다고 적어놓고 있다. 이어 본포리에는 본개, 구점, 가라골, 자라등대, 까꾸락, 북개고개가 있었다고 쓰여 있다.

'구점'은 "옹기를 굽던 마을 또는 근처 마을 중 먼저 생겼다 하여 유래"되었으며, 뒤에 본포로 옮긴 것으로 되어 있다. '가라골'은 본개 사람들이었던 연안 김씨들이 본포가 시끄럽다 하여 가까운 골짜기에 모여 살았는데, "골이 아름답다고 하여 처음엔 '가라곡', 다른 이름으로 '가곡'"이라 불렀단다.

'자라등대'는 "본포 마을의 앞산 골짜기로 자라의 모양을 닮았다 하여 유래"되었으며, '까꾸락'은 "본토마을 앞 들판", '북개고개'는 "북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북개마을에 있다 하여"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그러니까 동읍 홈페이지 그 어디에도 이곳이 옛 나루터였다는 글은 보이지 않는다는 그 말이다.

▲ 해마다 겨울이 다가오면 이곳에는 수많은 철새들이 날아든다
ⓒ2005 이종찬

▲ 아름다운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본포대교
ⓒ2005 이종찬

하지만 신정일의 <낙동강역사문화탐사>에 따르면 "본포리는 창원시 동면(지금의 동읍) 지역으로 낙동강가이므로 본개 또는 본포라 불렀다"고 적혀 있다. 이어 "강가에 대산변전소가 보이고 본포에서 창령군 부곡면 학포리로 건너가는 나루터에 나룻배는 보이지 않는다"고 적어놓고 있다.

경남 창녕군 남지읍 홈페이지 '향토의 환경'에는 "예로부터 낙동강을 이용한 수로(水路)의 발달로 남지리의 웃개나루(上浦津)를 위시한 학계리의 도흥나루(道興津), 용산리의 거룬강나루, 아지리의 창아지나루" 등 크고 작은 나루가 많아 "낙동강 상, 하류에서 모여드는 각종 물화와 여기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집산과 유통이 이루어지는 장이 섰다"고 한다.

이어 "이 5일장은 2일과 7일에 섰는데 웃개장은 웃개나루와 함께 눈부시게 번창"하였으며, "남쪽인 창원, 마산 등지에서 웃개나루나 도흥나루"를 건너와 경남 중북부의 교통의 요충지였다고 적어놓고 있다. 또한 육로로 사람들이 우마나 도보로 다니던 시절에는 나루가 몹시 번창하였다고 한다.

남지읍 홈페이지에는 "진동과 남지를 오가던 나룻배는 장날이면 하류는 수산, 부곡, 본포, 북면, 멸포 등지에서, 상류는 고령, 합천, 의령, 유어와 우리 고장의 북부 등지의 장꾼을 가득 싣고 강 상, 하류에서 장배들이 모여들곤 하였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1930년대 마산-대구간 국도가 개통되면서 "많은 화물을 싣고 오고 가던 고배(큰 규모의 목선)는 그 자취를 감추었다"고 덧붙여 놓았다.

이처럼 남지읍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여러 가지 사실을 미루어보면 창원 본포에 제법 큰 나루터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나루터가 정확하게 창원 어디쯤에 있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지금 '알 수 없는 세상'이란 찻집 옆에 본포대교가 길게 놓여져 있는 것을 볼 때 이곳이 옛 본포나루터가 아니었나 어림짐작할 뿐이다.

▲ 물결무늬가 자잘하게 새겨진 금모래는 밀가루처럼 곱다
ⓒ2005 이종찬

▲ 본포 모래밭에 드러누운 주인 잃은 나룻배 한 척
ⓒ2005 이종찬

하긴, 옛 본포나루터가 정확하게 이 자리에 있었든, 조금 비껴 있었든 그게 그리 큰 문제는 아닌 듯하다. 정말 큰 문제는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정말 아름답기만한 이 낙동강변을 사람 편리주의로 무조건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무너뜨린 뒤 마치 하수구 같은 시멘트 둑을 이 아름다운 풍경 곁에 괴물처럼 쌓는다는 점이다.

안타깝다. 어찌하여 사람들은 대자연을 그대로 두고 보기를 좋아하지 않는가. 어찌하여 사람들은 대자연을 무조건 사람 편리 위주로 바꾸려고 하는가. 어찌하여 사람들은 제 주변에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제멋대로 망가뜨려놓고, 주말마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더 깊숙한 대자연의 품에 안기려 몸부림치는가.

아무리 오래 바라보아도 너무도 고운 낙동강 본포 강나루. 죽죽 늘어진 강버들을 옆구리에 끼고 끝도 없이 펼쳐진 금빛 모래사장. 따가운 봄햇살에 눈부신 윤슬을 톡톡 터뜨리고 있는 푸르른 강물. 그래. 누가 이렇게 아름다운 본포 강나루를 망치려 한단 말인가. 누가 이렇게 고운 대자연의 풍경 속에 시멘트를 칠하려 하단 말인가.

고운 물무늬가 아로새겨진 모래밭을 사그락 사그락 밟으며 한 마리 잉어처럼 강물을 천천히 거슬러 오르고 있을 때, 어디선가 '예끼! 이 정신 나간 사람들아'라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저만치 모래사장에 드러누운 주인 잃은 나룻배 한 척이 구슬 같은 윤슬을 톡톡 터뜨리며 몸을 뒤채고 있다.

▲ 해 질 무렵 본포 강변은 찬란하게 빛나는 윤슬로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2005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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