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1급 안기수씨 웃음꽃이 활짝 피다

▲ 눈을 보면 마음이 보인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마음으로 보면 사랑하게 됩니다.
여기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녀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자신을 사랑합니다.
그 사랑은 고스란히 자식, 손녀딸, 장애우, 이웃…
모두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사랑을 이어주는 ‘눈’입니다.
31살, 어린 남매만 남겨놓고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앞날이 캄캄했다. 자식들 보면서 ‘살아야지, 살아야지…”이를 악물었지만 시련은 다시 찾아왔다.

35살 때부터 글씨가 희미해지기 시작하면서 정말, 앞이 캄캄해졌다. 병원에서는 이미 치료가 어렵다고 말하지만 주저앉아 마냥 눈물만 흘릴 수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금쪽같은 내 새끼’가 나만 쳐다보는데.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큰 소리로 웃었다.

“노력, 성실, 인내를 마음에 새기며 살아왔어요. 몸 성하면 잘 살 수 있으니까 힘내자고 다짐했어요.”

시각장애인 1급 안기수(58·기흥읍 공세리)씨의 삶은 그렇게 용기를 주고 있다.

#30대 때부터 안해 본일 없어

안기수씨가 31살 되던 해,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슬픔도 잠시…4년 후부터는 시력을 잃게 됐다. 그래서 그는 어린 남매와 함께 부모 곁으로, 기흥읍 공세리 고향의 품으로 돌아왔다. 덜 힘들 것 같아서다.

“병원 가서 진찰을 해 봤더니 신경을 너무 많이 써서 이식도 불가능한 상태고 시신경이 망가져 수술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절망적이었지만 드러내놓고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자식들이랑 먹고 살아야 하잖아요. 조금이라도 보이니까 용인시장에서 떡도 팔고 돈 되는 것은 다 팔았어요.”

보리수제비, 시래기 죽 먹으며 월세방에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티던 시절 얘기다.

“안 해 본 일 없어요. 화분도 팔고 파출부도 나가고. 오직 우리 애들 후레자식 소리 안 듣게 열심히 일 했으니까.”

주변에서 들어오는 혼사 자리도 귀에 안 들어올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안씨에게도 절망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40대 쯤 인갉죽고 싶은 생각 많이 했어요.” 그는 고개를 살며시 숙였다.

“휴, 새벽에 일 나가면 안 보이니까 차에 치어 죽을 뻔한 적도 수십 번이요, 온몸이 멍들고 성한 데가 없으니. 이루 말 할 수 없죠.” 어느새 안씨는 목이 막혀 말을 잊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딸이 옆에서 엄마 기분 풀어 준다고 목걸이도 사주고, 옷도 사주고…”설움이 북받치듯 안씨 뺨에 눈물이 흘렀다.

▲ 오랜만에 어릴 적 떠올리며 그네를 탔습니다.
다리를 살짝 굽혀 힘껏 앞뒤로 왔다갔다…
파란 하늘에 닿을 듯합니다.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지금도,여전히 하늘은 변함이 없네요.
또 하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내 안에 살아 숨쉬는 희망입니다….
하지만 안씨는 이제 기뻐하며 눈물을 거둘 수 있다. 안씨 보다 어려운 사람들 생각하며 고통과 싸워 이겨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딸, 사위, 손녀딸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면서 즐거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안씨는 손녀딸 자랑부터 시작했다. “우리는 3대가 기흥초등학교 다니고 있어요. (하하) 나, 우리 아들, 딸, 손녀 딸 까지. 너무 좋아요.”

어린 손녀딸들 역시 할머니를 먼저 챙긴다. 할머니 손 꼭 잡고 버스 정류장에 바라다 주고 전화도 대신 걸어준다. 무엇보다 할머니 옆에서 두 손녀딸이 교대로 잠을 잔다.

그래서 안씨는 외롭지 않다.

#장구 가르치는 즐거운 인생

최근에 안씨는 신갈라이온스로부터 수술 제의를 받아 병원에서 재검을 받았지만 여전히 불가능한 상태라는 진단을 받았다. 한 가닥 기대를 걸었지만 아쉬움 속에 슬픔을 묻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괜찮다. 더 즐겁게 살아가는 맛을 낼 수 있어서다.

“그 옛날, 기흥초등학교 동창회 나가서 사교춤을 알게 됐어요. 그 당시에는 사교춤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거든요.”

그는 그렇게 ‘쉬쉬’하면서 사교춤을 배우고 신갈농협 주부대학 다니며 장구를 배웠다.

“문화원에서는 민요, 무용을 열심히 배웠어요. 눈은 나빠도 기억력이 좋아서 남들보다 순서는 잘 기억했거든요. 무용대회 나가서 상도 받고 문예회관 무대도 맨 앞에 서고.”

취미 생활을 즐기며 이것저것 배운 덕에 지금은 장애인협회에서 장구, 소리를 가르치고 있는 안씨다. “앞으로 배운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동네 노인들한테도 가르쳐 주고 싶어요.”

그가 비장애인들보다 더 즐겁고 용기 있는 삶을 살아가는데 취미 생활은 큰 버팀목이 됐다.

안씨 역시 계단이 가장 무섭고 버스를 잘 놓친다. 또 인도를 다녀도 여기저기 부딪히고 집안에 혼자 있으면 눈물 흘리며 신세 한탄도 한다.

그러나 그는 슬픈 표정은 짓지 않는다. 목소리는 밝게, 웃음소리는 크게 자신을 밝게 만든다. 안씨는 한 해가 다르게 눈이 나빠져도 웃는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며 행복해 한다.

희망을 숨쉬면서 마음으로 세상을 보며 언제나 활짝 웃는 그를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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