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째 ‘푸른 신호등’역할 하는 김윤덕 할아버지

▲ 김윤덕 할아버지는 풍덕천1동사무소와 풍덕초등학교 사거리에서 매일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휙~후르르…휙’

군복 차림으로 호루라기를 불며 풍덕천1동사무소 인근 사거리에서 수신호를 하고 있는 김윤덕(75·풍덕천동) 할아버지. 매일 아침 그 자리에 가면 어김없이 할아버지 호루라기 소리가 경쾌하게 울린다.

그 곳을 지나는 시민들은 그가 낯설지 않다.

“안녕하세요.”

책가방을 메고 머리가 땅에 닿도록 ‘꾸벅’인사하는 꼬마. 파란불로 바뀌면 할아버지 호루라기 소리에 발걸음을 맞추고 수신호를 보며 박자를 조절한다.

“아가야∼다치지 않게 잘 건너라.” 어린 초등학생들에게 등굣길 푸른 신호등은 할아버지가 아니었을까.

아이들 뿐 만이 아니다. 출근길 운전자도 마찬가지. 통행량이 많은 사거리 ‘우회전을 할까? 말까?…’그 순간 길게 내 뱉는 호루라기 소리에 마음 놓고 핸들을 돌린다. 역시 가벼운 인사가 오간다.

20년 넘게 서울 서초구 신반포로 횡단보도에서 교통정리를 하다 3년 전 용인으로 이사 온 후부터 3년 째 교통정리를 하고 있는 그는 교통봉사를 하면서 할아버지, 할머니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그래서 이 일대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한 순간에 교통사고가 나잖아.”

그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횡단보도에서 차량과 보행자 교통질서를 일일이 챙기게 된 사연을 꺼낸다. “81년 인갉 우리 큰 아들놈이 횡단보도 앞에서 사고가 났어. 큰 수술을 6번이나 했지.”

▲ 김윤덕 할아버지가 27년간 교통봉사하면서 수상한 표창장.
뜻하지 않은 사고로 아들이 몸을 움직이지 못한 채 4년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고 이를 지켜보던 그와 가족들은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이 때 그는 결심했다. ‘횡단보도 앞에서 교통정리를 하겠다고’. 그렇게 27년이 지났다.

“내 자식이나 남의 자식이나 다 똑같지. 안전하게 길을 건너야 하니까.”

그의 의지를 아무도 꺾을 수는 없었다. 봉사를 하는 동안 교통사고가 나기도 했지만 김 씨는 눈이오나 비가 오나 아파도, 여전히 교통정리를 하러 나선다.

아내, 자식들 걱정에도 만류하고 새벽 4시면 일어나 운동을 마친 후, 7시 쯤 횡단보도에 나가 있는 김씨. 이제 가족들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는 그를 보면서 함께 즐거워 할 정도가 됐다.

사실, 그는 경찰 생활을 하다 6.25 전쟁 당시 해병대로 참전해 양 쪽 귀 고막이 심하게 손상 돼 청각장애를 앓고 있다.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을 정도지만 한 쪽 귀에 보청기를 끼고 늘 교통정리를 한다.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람이 삶을 살아야지. 난 교통질서가 좋아.”

그가 지금까지 받은 표창장만 20여 장이 넘는다. 이미 용인에서도 그의 봉사정신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가끔 아주머니들이 간식도 사다 주고, 용인 살기 좋아.”

숨이 끊어 질 때까지 하고 싶다는 교통정리. “아이들 안전 지켜주고 싶은 것이 내 바람이야.”

콩우유를 좋아하는 김윤덕 교통 할아버지. ‘교통질서 지키기 대장님’께 용인시민 모두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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