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환경이나 생태를 다루는 신문에선 특종이 터졌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선정해 멸종위기종으로 보호되고 있는 구상나무가 소백산에서 100여 그루 자생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전세계에서 우리나라, 그것도 제한된 지역에만 살고 있는, 더구나 지구온난화로 기온 상승이 이어지면서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는 구상나무로선 살 수 있는 지역이 더 확장됐다는 소식이 정말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그런데 의아한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어? 우리 아파트 화단에 구상나무 있던데”, “우리 학교 정원에도 있어요.” 맞다. 아름
“올해는 크리스마스트리 바꾸는 거지? 집에 있는 건 너무 오래 됐어.”아들은 이제 자기 키보다 작아진 플라스틱 크리스마스트리가 싫증 났는지 졸라댄다. 예전에 외국 영화에서 크리스마스라 해서 아빠가 숲에 들어가 그럴듯한 나무를 잘라와 형형색색 구슬을 달며 장식을 하고는 행복한 웃음을 짓는 가족이야기를 보며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만약 정말 그게 현실이 돼 뒷동산에 올라 나무를 잘라 온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보름 남짓 장식용으로 쓰고 버려지기엔 나무 생명의 가치가 존엄하다. 그래서 올해도 아들을 달래본다. 그냥 있
지난해 겨울 아침, 어디선가 나를 깨우는 소리에 창문 너머 뒷산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그곳에 멋진 설경이 펼쳐져 있었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눈이 내려와 한 폭의 진경산수화를 그려놓은 것이다. 고요하던 숲속의 나무들이 눈꽃을 피워내느라 한바탕 분주하게 소란을 떨면서 나의 아침을 일으켜 세웠고, 그때에 바라본 숲의 정경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두 팔을 가득 벌리고 눈 세례를 받고 서 있는 잣나무였다.눈앞에 펼쳐진 잣나무 숲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백석 시인의 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북방의 눈 내리는
얼마 전 첫눈이 내렸다. 첫눈의 설렘보다 걱정이 앞서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벌써 12월이다. 일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돌아보기도 해야 하고 앞으로의 계획도 세워야 하는데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이럴 때 따뜻한 호빵에 커피 한잔이 더 간절하다.길을 가다 우연히 사철나무의 열매를 봤다. 연둣빛 꽃이 피는 사철나무는 꽃피는 유월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다. 잎이 푸르고 윤이 나지만 시기상 유월은 모든 식물들이 한창 자기만의 푸르름을 과시할 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낙엽이 지고 쓸쓸해진 거리에 잎을 달고 있는 사철나무는 특별하다. 침엽수이면서
처음 팥배나무를 본 것은 숲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찾은 서울의 북한산 자락에서다. 익숙한 ‘팥’과 ‘배’가 모여 이룬 팥배나무란 이름에 웃음이 나왔지만 처음 본 나뭇잎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달걀과 크기와 모양이 비슷한 잎이었는데 사실 그 정도 크기와 모양을 가진 나뭇잎은 냇가에서 둥근 돌을 찾는 것처럼 흔하고 흔하다.그런데 잎자루에서 뻗어나간 잎맥이 어찌나 선명하게 새겨있는지 한번만 봐도 잊히지 않을 만큼 강하게 각인됐다. 더구나 ‘이중거치’ 또는 ‘겹톱니’라 해서 나뭇잎 가장자리가 볼록볼록 뾰족뾰족 산세 마냥 솟아있는데,
“지난밤에 첫눈이 왔어”강원도에 사는 친구로부터 온 문자였다. ‘우와, 정말?’ 하고 나는 감탄하는 문자를 바로 보내주었다. 눈이라는 말만 들어도 설렌다. 맨 먼저 떠오르는 풍경이 설원의 자작나무였다. 가을이 깊어갈 무렵 그곳에서 봤던 노란 잎을 매달고 있던 자작나무도 그 잎을 모두 내려놓고 뿌리에 집중하는 시간으로 돌아가겠구나 싶었다. 영화 에서 라라, 음악, 눈 그리고 하얀 수피의 자작나무가 시베리아를 배경으로 펼쳐진 장면이 함께 떠올랐다.실제로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커다란 자작나무를 봤던 기억이 난다. 예전에
‘이게 뭐였더라, 구면인 것 같은데….’ 식물을 공부하다보면 내가 실제로 본 식물인지 책에서 본 식물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구기자가 그런 식물이었다. 고향집 골목길에서 개망초와 강아지풀 사이에서 삐죽이 튀어나와 있었다. 꽃도 있고 열매도 달려있어 웬만하면 기억이 나야 하는데 답답하게 금방 생각이 나지 않았다.얼마 뒤 가족과 한국민속촌에 갔다. 그곳에서 그 알 듯 말 듯했던 식물을 또 만났다. 전에는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자라서 덩굴 같았는데 이번엔 밑둥에서 가지가 많이 갈라지는 모양의 키 작은 나무였다. 밭 가장자
아이들이 뛰놀다 간 학교 앞 벤치 주위에 노란 은행잎이 소복이 깔려있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한줄기 바람에 낙엽이 구른다. 그 때 떠오르는 시가 있다. 김광균 님의 의 첫 구절인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와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프랑스의 번역시인 레미 드 구르몽의 의 한구절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이다. 그 구절이 자꾸만 입가에 맴도는데 오래 전 글인데도 지금까지 낭송되고 떠오르는 것을 보면 문학이 갖고 있는 힘이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오랜만에 안도현 님의 시집을 펼쳐봤다.
필자가 사람들에게 나무 이름을 알려줄 때 발음에 신경을 쓰게 되는 나무가 있다. 둥둥둥둥 치는 북도 아니고 영어로 책을 이야기하는 북(book)도 아니라는 우스개 소리를 하며 나무 이름을 각인시켜준다. 왠지 ‘부울’ 하고 발음하다가 끝에 ‘ㄱ’받침이 들어가게 혀를 긴장시키며 발음을 하려한다. 왠지 이 나무에겐 그래줘야 할 것 같다. 한글자이지만 쉬운 글자가 아닌 붉나무.이름 그대로 가을이 되면 잎에 단풍이 들어 붉어진다. 처음 가을이 시작돼 단풍이 들기 시작할 때는 노랑이나 밝은 주황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다 가을이 깊어감에 따라 붉은
아이들이 모여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른다.“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얘들아, 계수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아니?”“달나라에 사는 나무요.”그렇다. 우리나라엔 옛날부터 달나라에 계수나무가 살고 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렇듯 계수나무는 설화속의 나무인데, 윤극영이 만든 ‘반달’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동요 덕분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전 국민이 다 아는 나무이름이 됐다.그런데 달나라에 살고 있는 계수나무를 지구에서 찾았다며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인간의 집요한 추리력으로 그 상상
“저 나무가 도장나무란다”“어떻게 저 조그만 나무로 도장을 만들었어요?”“응, 비록 작아 보이지만 나무가 강하고 튼튼해서 도장을 만들기 좋기 때문이란다.”“그렇군요. 도장나무!”그렇게 알게 됐단다. 도로 양옆에 키 작은 나무로 줄을 세워 심은 회양목 옆을 지날 때에 지인이 한 말이다. 학창시절 작은아버지로부터 도장나무 이야기를 들은 이야기를 했다. 회양목 가까이에 다가가서 보니 손톱처럼 생긴 푸른 잎이 도톰하게 달려 있다. 여름부터 초록색에서 갈색으로 변해 익기 시작한 암술대가 부엉이 모양으로 달려 있는 것도 재미있다. 이른 봄에
추석이 지나니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차게 느껴진다. 하늘은 맑고 투명하다. 더위에 지친 산과 들이 잠시 숨고르기를 하듯 초록의 향연이 조금씩 빛을 가라앉힌다. 유난히 더워 가지 않을 것 같던 여름도 자연의 순리 앞에 무릎을 꿇는다. 가을이 왔다.초록빛을 내던 잎 속의 엽록소가 가버린 여름을 따라 떠나갈 채비를 하고, 조용히 기다리던 단풍의 색소들이 그 자리로 떠오르려 준비를 한다. 그 잎들 사이로 열매들이 익어간다. 잎이 만들어준 열매라 잎을 따라 초록을 띠다가 조금씩 자기만의 색깔을 찾아간다. 노랗게, 빨갛게, 갈색으로,
어릴 적, 뒷산 줄기를 타고 내려와 마을 앞을 흐르던 하천은 동심 가득한 그 시절의 우리에겐 좋은 놀이터였다. 그곳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마을에 사는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지금처럼 주변에 수영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마땅히 더위를 피해 갈 수 있는 곳이 따로 있지도 않았으니 여름철, 물에 들어가서 노는 것이 가장 신나고 재미있는 놀이였다.추운 겨울은 그 나름대로 즐거웠다. 살얼음 아래로 ‘졸졸졸’ 물이 흘렀고, 혹여 그 물에 빠질까봐 겁을 냈다. 어린 마음에 ‘신발이 물에 빠져서 젖으면 엄마한테 혼나지’ 하는 마음에 더 조심을 했던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가을이 왔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 덥고 비도 오지 않았다. 사람들도 더위에 지쳐 전기세 폭탄을 맞을까 걱정하면서도 에어컨을 틀 수밖에 없었다. 올 여름 비가 내리지 않아 농작물도 숲에 사는 식물들도 힘든 날을 보냈을 것이다.숲 가장자리에서 잎이 도로록 말리고 꽃이 핀둥 만둥한 싸리를 보았다. 물 한바가지 퍼주고 싶었다. 싸리는 여러 개의 꽃이 번갈아 피고 지는 식물이라 오랫동안 꽃을 볼 수 있다. 진한 분홍색 꽃이 무리지어 피면 참 볼 만하다. 하지만 크기가 작아서인가, 화려하지 못해서인가, 영 사람들의 관심
꽃집에 가면 유독 눈을 끄는 꽃이 있다. 화분에서 올라온 둥글게 짠 철사 틀에 기대어 자라는 덩굴식물인데 색깔도 흰색, 분홍색, 자주색, 보라색으로 손바닥만큼 크게 피는 꽃이 여간 화려하지 않다.꽃집에서는 클레마티스라고 알려준다. 그러나 클레마티스는 이러한 식물을 총칭하는 으아리속을 가리키는 속명이다. 클레마티스(Clematis)란 어리고 가냘픈 가지가 길게 뻗어가는 모양으로 연약한 줄기를 가진 덩굴식물들을 뜻하는 말이다. 으아리와 사위질빵이 이에 속한다. 으아리와 사위질빵은 자주 비교대상이 된다. 둘 다 미나리아재비과이며 하얀색
지구촌 축제인 브라질 리우올림픽 열기만큼 지구도 온난화의 영향으로 점점 그 심각성을 드러내고 있다. 올해는 1994년 이래, 한반도 전역을 뜨겁게 달구었다. 올림픽 개최지인 리우는 1992년 UN이 주재한 리우환경회의가 열린 곳이다.그 회의에서 세계 160여 개국의 지도자가 모여 지구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이념으로 ‘지속가능한 개발’, ‘개발과 환경보전의 조화’를 채택했고, 이를 위한 구체적 실천방안으로 의제21을 작성했다. 이후 세계 8000개 도시에서 작성 및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16개 광역시·도가 전부 작성을
숲에서 나무가 열매로 주목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잣나무, 밤나무, 도토리나무, 개암나무, 가래나무 정도가 생각날 듯하다. 먹는 열매부터 생각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모양이 예쁘고 단단해서 오랫동안 볼 수 있는 소나무의 솔방울도 대표적인 나무열매이다. 그리고 작은 솔방울 모양을 한 오리나무의 열매도 한번쯤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우리나라 저습지가 논밭이나 주거지로 개발되지 않았다면 그곳엔 오리나무가 많이 있었을 것이다. 오리나무의 이름은 ‘오리(2km)’마다 심어서 생긴 것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서식지가 습한 지역
어른들과 숲을 다니다 보면 꼭 질문을 받는다. “어디에 좋아요?”, “항암효과가 있다는데 정말인가요?” 전문 한의사나 약초를 전공한 학자가 아니기에 식물의 약효에 대한 이야기는 상당히 조심스럽다. 잘못된 정보나 확실하지 않은 정보를 전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기에 아예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그리고 숲의 생태 이야기는 저와 함께 나누어요’를 좋아한다. 그런 점에 있어 이번 나무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로 모든 경우에 적용할 수 없음을 밝히고자 한다.이런 무리수를 두
초등학교 시절 학교를 다닐 때에 향나무 연필이 있었다. 향나무 연필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렸지만, 돌이켜보니 향나무라는 나무는 알지 못했다. 많고 많은 연필 중에 하나인 연필 이름으로만 인지했던 것 같다. 또 어릴 적 큰집에서 제사를 지낼 때 집안 어르신들이 제사상을 놓고 그 앞에서 절을 하시며 향을 피울 때에도 그 향이 어디에서 나는지, 그 나무의 원료가 무엇이었는지 관심이 없었다.그 때만 해도 향나무는 내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가 아니었기 때문에 향나무라는 존재 자체를 몰랐던 것 같다. 그 이후 세월이 흘러서 고즈
장마가 지기 전 한창 숲이 싱그러울 때이다. 뻐꾸기 소리가 오전 내내 뒷산을 울린다. 참새, 까치, 까마귀, 박새 등 새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개미, 거미, 노린재, 여러 나비종류들도 우리주변에 가득하다. 뭔가 꽉 찬 느낌이 든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장이 섰다. 여러 과일들이 풍성하다. 장마 전이라 맛이 정말 좋다며 상인들이 손짓을 한다. 과일을 보고 있자니 “봄에 잎이 가장 늦는 나무는 감나무란다.” 엄마의 말씀이 생각난다.그런데 감나무만큼이나 늦게 잎이 나는 게 대추나무다. 다른 나무들은 벌써 잎이 다 피고 그늘을 만드는데 대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