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통령 선거일인 9일 일반투표 마감시간을 1시간 남겨 놓은 오후 5시경 용인시 기흥구 동백1동 동백초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한 주민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 한편, 오후 7시 30분 잠정집계된 용인시 투표율(사전투표 포함)은 19대 대선보다 1.2%p 낮은 79.2%를 기록했다.
지난 호(1116호)에선 삼봉산에서 바라본 모습을 담았다. 이번엔 드론 촬영을 한 사진이다. 드론을 구입해 이용하기 시작한 즈음인 2016년 10월경이다.용인은 중산간지역으로 너른 들판이 많지 않다. 그나마 대표적인 곳이 백암들과 이동호수 밑으로 이동·남사읍에 걸친 들판이 있다. 하나를 더 꼽으라면 덕성리 들이다. 원덕성과 금현에 걸쳐 있는데 경지정리가 잘 돼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용인테크노밸리 일반산업단지(구 덕성산단)가 조성됐지만 농업진흥구역(일명 절대농지)은 제외해 덕성리 들녘 모습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만들어지면서 터전을
14년 전, 2008년이다. 고향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덕성리에 산업단지가 조성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찬반 입장을 떠나 먼저 든 생각은 기록이었다. 그 때부터 틈만 나면 동네 구석구석을 다니며 사진으로 담았다. 마을 전경은 쉽지 않았다. 결국 삼봉산(414m) 정상에 올랐다. 최대한 렌즈를 당겨 담았다. 드론이 없던 시절 얘기다.그 후 이동읍 금현마을은 용인테크노밸리 일반산업단지(구 덕성산단) 조성으로 마을 일부가 수용되었지만 대부분 주민들은 주변으로 집단이주를 택했다. 다행히 일부만 떠나고 주민들은 여전히 정을 나누며 살고 있다.
나라에 건국신화가 있다면 지역엔 향토설화가 있다. 제주도를 대표하는 선문대할망 설화가 있다면 용인엔 마고할미 설화가 있다. 용인 마고할미 설화의 배경이 할미산성이다. 선문대할망이 한라산을 베개 삼아 잠을 이뤘다는 것처럼 마고할미는 하룻밤 사이에 치마폭에 돌을 날라 성을 쌓았다고 전해진다. 둘 다 전형적인 거인(巨人)설화 또는 대모(大母)설화의 일례로 볼 수 있다.할미산성은 설화뿐만 아니라 성벽이 현존하는 관방유적으로도 용인을 대표한다. 위치는 처인구 포곡읍 마성리로 둘레가 651m, 면적 7만3504㎡(2만2274평)으로 비교적 낮
20대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공식 선거운동이 15일 시작됐다. 용인시 더불어민주당 지역위원회와 국민의힘 당원협의회 등 각 당은 선거운동 시작일인 15일 오전 출정식을 갖고, 본격적인 유세에 나섰다. 각 당 선거운동원들은 출·퇴근 시간대 주요 도로에서 인사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한편, 오는 3월 4일과 5일 이틀간 20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가 실시된다.
서울에는 흔하지만 용인엔 흔치 않은 것이 산동네다. 특징을 살펴보면 대개 무허가촌으로 구성돼 있다. 또 도로망이 가파르고 무질서하며 도시기반시설이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당연히 차량 접근도 어렵다. 하지만 도심과는 가깝다. 이 같은 특징은 도시 형성과정에서의 빛과 그늘이라 할 수 있다.즉 사람들은 일거리가 많고 생활터전을 제공해 주는 도시로 몰리게 되나 소득수준 등에 따라 거주지는 갈리게 된다. 소득이 일정하지 않거나 소득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 주로 불가피하게 도심 속 변두리에 자리를 잡게 된다. 과거 이들을 사회학적 용어로 ‘도시
1996년 즈음으로 기억된다. 용인향토사학자 고 박용익 선생과 한국민속촌 방향에서 기흥구 지곡동으로 산길에 다름없는 고개를 넘어간 적이 있다. 고갯마루에서 본 광경은 지금도 또렷하게 남아있다. 뜻 밖에도 산 아래 너른 마을이 펼쳐져 있었다. ‘피난골이란 이런 곳이구나!’ 싶었다. 당시 올라섰던 곳이 ‘사은정고개’였다.불과 몇 해 만인 2000년 들어서 마을은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되는데, 바로 지방도 제315호선 개통이다. 기흥구 서천동-상하동 노선으로 국도 42호선 효자고개 부근과 연결되는 도로다. 이로 인해 마치 울타리를 개방한
백군기 시장이 용인시 기흥구 마북·구성·동백·보정동 일대에서 추진하고 있는 경기용인 플랫폼시티 개발사업과 관련, 국민의힘 등 일각의 주장에 대해 정치적 이용이라고 반박하고, 거짓 정보에 대해서는 강력 대처하겠다고 밝혔다.백 시장은 27일 오후 용인시청 브리핑룸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플랫폼시티 사업이 진행되기까지의 과정과 이익금 배분 구조에 대해 설명하고, 용인 플랫폼시티를 대장동과 연결시키는데 대해 "의도적 흠집 내기"라고 비판했다.
도로망이 촘촘해지면서 터널도 늘고 있다. 용인에서 운치있는 고갯길을 가자면 처인구 곱등고개나 양지면 정수리와 한터를 연결하는 정수고개 정도다. 편리성과 안전성을 우선하는 요즘 사회에서 불가피한 측면도 있고 생태환경 관점에서 봐도 고갯길을 넓히는 것보단 낫다. 하지만 마음 한편의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문수산터널은 이동읍 묵리 굴암골과 원삼면 학일리 고초골을 연결하는 터널이다. 터널의 완성은 주변을 바꿔 놓았다. 전원주택지가 급격히 늘고 교통량도 많아졌다. ‘고초골’하면 용인에서 대표적인 오지(奧地)로 통했다. 고초골이 천주교 박해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24일 오전 수지구 죽전동 용인포은아트홀에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플러스 노선망 등 경기도 공약을 발표했다. 이 후보는 특히 “용인을 반도체 국가전략산업 특화단지로 조성하고, 반도체 배후도시로 조성 중인 용인 플랫폼 시티를 차질 없이 신속하게 추진하겠다”고 밝히는 등 용인 관련 공약도 밝혔다.
대학은 한 도시공동체의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 흔히 대학도시라고 한다. 용인에는 1980년을 전후로 여러 대학 캠퍼스가 자리 잡았다. 강남대학교도 그 중 하나다. 요즘은 ‘강남마을’로 더 익숙해졌다. 1990년대 말 기흥구 구갈동 일대가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됐을 때 이곳을 ‘구갈 3지구’로 불렀다. 경기도시공사(현 GH경기주택도시공사)가 개발주체였다. 예나 지금이나 지상의 모든 구조물을 남김없이 밀어내고 고층아파트를 짓는 개발 방식은 거의 대부분 원주민들과 갈등과 충돌을 동반한다.그러나 보니 개발사업자 측은 용역깡패를
13일 용인특례시의회가 공식 출범했다. 용인시의회는 용인특례시의회 출범을 기념해 이날 현판 제막식을 가졌다. 이날 제막식에는 김기준 의장을 비롯한 시의원 29명, 백군기 시장, 용인시의정회 임원 등이 참석해 새로 시작하는 용인특례시의회 출범을 자축했다. 의회 2층 출입문에 설치된 현판에는 ‘시민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용인특례시의회 새롭게 시작합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용인특례시의회 현판 제막식 참석자들이 기념 테이프 절단식을 갖고 있다.
부아산(402.9m)과 동쪽에 있는 함박산(349m) 사이에 학고개가 있다. 용인대학교와 처인구 이동읍 서리 사이를 넘나드는 고개다. 학의 날개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예전엔 ‘하고개’라 했는데 오늘날의 도로와는 다른 상상력으로 봐야 한다.무네미고개(천리 노루실-남동 경계)와 함께 용인 남-북을 연결하는 주요한 교통로로써 한양가는 지름길이기도 했다. 즉 멀리는 평택이나 오산 등지에서 남사를 거쳐 서리 하반, 중덕 상덕마을을 지나고 하고개를 넘어 삼가동 궁촌마을과 메주고개를 거쳐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목이었다.한
오는 13일 특례시 출범을 앞둔 용인시는 3일 오후 2시 용인시청에서 ‘용인특례시 출범식 및 반도체도시 선포식’을 갖고 친환경 경제자족도시로의 긴 여정에 첫발을 뗐다. 이날 출범식에는 백군기 용인시장과 김기준 용인시의회 의장을 비롯한 시의원, 김민기ㆍ정춘숙ㆍ이탄희 국회의원, 김순은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위원장, 류광열 경기도 경제실장, 정은승 삼성전자 DS부문 사장, 김동섭 SK하이닉스 사장 등이 참석했다.
위 사진은 2004년 1월 1일 아침 용인시청사와 의회 청사 모습이다. 당시 용인문화복지행정타운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준공을 거쳐 입주 시기는 2005년 6월 말경이다. 18년이 지나 다시 같은 구도로 담으려하니 주변 가로수가 숲을 이뤄 어려움이 있다.용인의 행정구역 체제는 몇 차례 변화가 있었다. 1895년 을미개혁 당시 지방관제 개편원칙에 따라 ‘용인현’에서 ‘용인군’으로 바뀌면서 군청은 당초 읍내면(현 구성동사무소)에서 수여면(현 처인구 4개동) 소학동으로 이전하게 된다. 현재 김량8구역 재개발 사업지 주변으로 정확한
2022년 호랑이 해가 밝았다. 코로나19는 여전히 국민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 건만 같았지만 감내가 더 필요해 보인다. 올해에는 호랑이 기운과 공동체성으로 코로나19를 극복하고, 경제 활력을 찾는 해가 되길 기원한다.
다사다난하지 않은 해가 없었다. 지난해 초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은 올해에도 소상공인을 비롯해 비정규직 노동자 등 국민들의 어깨를 짓눌렀다.다시 일상을 회복할 수 있으리란 기대도 잠시, 방역과 거리두기가 이제는 일상이 됐다. 고되고 힘들었던 2021년이 저물고 있다. 이동저수지 너머 서쪽 끝에 걸린 붉은 태양이 용인특례시에 ‘희망’의 빛이 되길 소망한다.
용인이씨는 용인지역의 관향 성씨로 원래 용구현(龍駒縣)의 토성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고려개국에 일조한 이길권을 시조로 하는데 당시 시조는 용인지역 토호(土豪)였다. 요즘 토호라는 개념엔 부정적 의미가 담겨있으나 당시엔 향촌에 토착화한 재지사족(在地士族)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위 사진은 1918년 음력 11월 27일 당시 용인군 포곡면 가실리 청백리공 산소 시향 모습이다. 청백리공은 이백지(1361~1419)로 중시조 구성부원군 이중인의 손자다. 이중인은 조선 건국에 참여하지 않고 은둔을 택한 ‘두문동 72현’ 중
마을숲은 비보풍수(裨補風水)의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 선조들은 마을 입구가 훤하게 열리면 바람 갈무리가 안 되고 나쁜 기운이 마을 안으로 들어오는 걸 막을 수 없다고 봤다. 따라서 마을입구에 숲을 조성하거나 장승 등을 세워 나쁜 기운을 막고 바람과 홍수도 막아주며 마을을 보호하고자 했는데 이를 수구맥(막)이라고 한다.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전대리 가마실은 마을숲이 잘 보존돼 있었다. 밖에서 보면 겨울에도 거의 동네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나무가 정렬돼 있었다. 필자는 기회 있을 때마다 가마실 마을숲의 대단한 가치를 자랑스럽게
용인사거리는 근·현대화 과정에서 용인 중심을 상징하는 장소다. 근대적 도로의 시작은 1908년 수원-용인-여주를 잇는 신작로라고 볼 수 있다. 이 도로 개통으로 그간 용인 중심 길 역할을 해왔던 영남대로는 축소되고, 대신 42번 국도가 교통상 중심축이 됐다. 더불어 용인의 치소(행정소재지)가 구성 언남동에서 김량장 소학동으로 옮기게 되는 발판이 되기도 했다.한편으론 횡축 도로가 용인사거리를 지난다. 45번 국도다. 평택-안성—용인사거리-광주-서울로 연결됐는데, 과거 1970년대 까지만 해도 서울로 가는 길은 주로 광주를 거쳐 천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