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는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난 뒤 일본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근거지 구마모토에 성을 쌓았다. 울산성에서 고립돼 식량과 식수가 부족했던 경험을 살려 곳곳에 식용이 가능한 조롱박이나 은행나무, 소나무, 토란을 심었다. 식수를 위해 우물을 120개나 만들었다. 성문이 29개나 있고, 망루가 49개, 높은 누각을 가진 천수각이 3개나 있었다.가토 기요마사가 심혈을 기울여 축성한 구마모토성은 난공불락의 요새였지만 천재지변 앞에 무력했다. 수많은 지진속에 곳곳이 무너지고 다시 수리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러던 중 1
봄에는 뭐니 뭐니 해도 벚꽃이 가장 화려하다. 큰 나무에 잎이 나기 전 연핑크의 봉오리가 맺히고 흐드러지게 필 땐 눈처럼 하얗다. 바람에 떨어질 때도 눈처럼 흩날리며 꽃잎이 한 장씩 떨어지고 바닥에 쌓이면 그것대로 참 예쁘다. 봄이면 떠오르는 노란 개나리도 얼마나 화려하고 따뜻한가!보라색 제비꽃도 여러 해를 지내며 커진 꽃무더기는 너무도 소담스럽다. 이렇게 우리 주변에서 자기를 마음껏 뽐내는 꽃이 있는가 하면 찾아보지 않으면 시기를 놓쳐 꽃이 피었는지조차 모르는 식물이 있다.필자는 4월이 되면 항상 무덤가를 기웃거린다. 올해도 ‘꽃
엄청 저렴하게 전세로 나온 시골집을 가족과 상의 없이 충동적으로 계약하곤 남편에게 흥분된 목소리로 전화했던 일을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처음 시골로 이사와 살던 곳은 비포장 길을 한참 들어가야만 도착할 수 있는 산자락 밑에 있는 오래된 집이었다. 몇 가구뿐인 아주 조용한 마을에서 매일매일 자연이 주는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며 매우 만족하며 살았다. 하지만 가장 큰 스트레스를 주는 건 각종 벌레도 비염을 자극하는 꽃가루도 아닌 뱀이었다.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집 현관 앞에서 햇볕을 쬐다가 필자를 보고 스르륵 사라지는 모습을 본 이후
먹을 갈아서 화선지에 붓글씨를 쓰면 물의 농도에 따라 조금씩 번져나갔다. 미세한 번짐을 이용한 효과는 붓글씨의 매력이기도 하다. 잔잔하게 흰 공간에 퍼져나가는 먹물의 번짐은 물의 기운이 다하면 멈춘다.흰 종이에 검정색 먹으로 글씨를 쓰는 것과 같이 천에 색깔을 입혀 아름답게 꾸미는 것은 의복이 개발된 이후 지속적으로 발전했다. 선명한 붉은색 빛깔은 고귀함을 상징하기도 했다. 색깔을 내는 염료를 얻는 방법은 색깔이 있는 식물 등에서 추출하는 고된 작업이었기에 비싼 가격이었고 서민들이 사용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18세기 서구에서 철강을
‘너무 늦은 거 아닐까? 소위 말하는 뒷북치는 셈인데….’한참을 주저하며 망설여도 도저히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이 소재가 주는 여운이 너무 강해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이러다가 원고 마감 시한을 지키지 못하겠다는 조바심도 났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이 얘기를 꺼내야겠다.작년 11~12월 사람들 사이에 많은 인기가 있었던 사극 드라마가 있었다. ‘옷소매 붉은 끝동’ 이라는 조선시대 궁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였다. 물론 남자 주인공은 정조 이산이었지만 정조가 사랑했던 궁녀 성가 덕임과 그 주변 궁
비가 오고 난 후에 숲을 가니 바닥이 푹신푹신하고 기분이 좋다. 봄을 빨리 느끼려면 숲으로 가자. 쌓인 낙엽 사이로 푸릇푸릇한 풀들이 올라오고 있다. 쓰러진 나무들이 부슬부슬한 흙으로 변하고 있다. 새들의 노랫소리가 아름답게 들린다. 생강나무의 노랗고 작은 꽃들도 선명하게 보인다.말 그대로 살아 숨 쉬는 숲을 만날 수 있다. 동네 주민들이 숲을 공원삼아 산책을 많이 한다. 마스크를 쓰고 하는 산책이지만 숲에 들어간다는 자체가 뭔가를 얻는 느낌이다.그런데 며칠 전까지만 해도 동해안에 ‘2000년 동해안 산불’에 버금가는 대형산불이 발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위협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한창인 2월 16일에는 러시아군의 공격 개시일까지 예고했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지만 날짜는 지나갔고 전쟁이 설마 일어날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다.그러나 일주일 뒤인 2월 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초강대국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력은 너무 큰 차이가 나기에 며칠 내로 우크라이나가 항복할 것으로 예상하고, 미국과 유럽은 일찌감치 군사적 개입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였다.젤렌스키 우크라
올해 3월은 유난히 추운 듯하다. 아직 겨울옷을 그대로 입고 생활한다. 봄이 조금 늦게 우리 곁에 오는 듯하다. 숲도 그런가 보다. 여느 때 같았으면 산개구리 울음소리가 한참 전에 들렸는데, 올해에는 아직 소식이 없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수업 장소에 갔다.진짜다! 매년 도롱뇽과 산개구리들이 알을 낳으러 들르는 웅덩이는 내리지 않는 비로 말라 있었다. 다른 곳을 또 부리나케 찾아가 봤다. 아직 얼음이 얼어 있었다. ‘이를 어쩌지’ 하며 물이 흐르던 계곡을 올려 다 보았다. 계곡도 말랐고, 좀 더 위의 계곡은 얼어 있었다.산불이
얼마 전 유명 개그맨과 배우가 낚시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 적이 있다. 그 예능프로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낚시 인구가 부쩍 많이 늘었음을 집 근처 호수나 저수지만 가도 느낄 수 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여력이 없어 지금은 좀 뜸해졌지만, 한때 필자의 취미는 낚시였다.자발적이 아닌 타의에 의한, 그러니까 남편과 연애가 한창이던 시절, 불쑥 가격이 제법 나가는 낚싯대와 릴을 선물로 받고 낚시를 같이 다니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전국으로 낚시를 할 수 있는 저수지를 찾아다니는 게 일상이었다. 잘 잡히는 날도 있었
나이가 들면 뼈가 약해져서 키가 작아지거나 허리가 구부러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흰머리가 나는 것과 같이 당연한 노화 현상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일상생활을 해야 하는 당사자에게는 고통스럽고 힘든 상황이다.특히 출산을 경험한 여성의 경우 뼈 건강이 더 안 좋아질 수밖에 없다. 유럽 오스트리아에서 기원전 2000년경의 50대 여성 유골이 발견되었다. 4000년 전에 활동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의 뼈 밀도를 측정해 본 결과, 어르신처럼 약해진 것으로 확인되었다.뼈가 약해지면 작은 충격에도 쉽게 부서질 수 있다. 특히 몸을 지탱하고 있는
눈에 보이는 전경을 가만히 바라보다 “옛날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이 도로가 뚫리기 전에 이곳은 어땠을까? 저 건물들이 들어서기 전에 저 땅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만약 지금처럼 도시가 발달되지 않았을 때, 냇가 물이 깨끗한 물로 흐르고 있었을 때, 산업 발달로 인한 오염원들이 자연의 산과 들에 뿌려지지 않았을 때 그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궁극적인 궁금함은 ‘생물학적 다양성이 얼마나 있었을까’이다. 요즘 멸종위기 식물, 희귀식물이라 일컫는 식물들이 흔하게 들판에 살고 있었을까? 궁금한 것이다.지금은 식물원이나 국립공원
2월은 겨울과 봄이 함께 있다. 겨울이 온 힘을 모아 마지막 위용을 떨치려 하나, 자연의 질서를 어쩌지는 못한다는 듯이 봄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지난 2주간의 날씨가 그러했다.입춘이 무색할 만큼의 추위가 있더니 입춘이다 싶을 만큼의 따뜻함이 그리고 며칠째 추위가 이어진다. 두껍게 얼었던 얼음 표면이 이제는 녹아 물기가 가득하고, 버들강아지는 아린을 벗어 뽀송뽀송한 속살을 드러낸다. 봄이 오고 있다.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이번 달은 친구들과 겨울나무에 대해 수업을 했다. 우리는 겨울나무의 모든 것을 파헤쳐
지난 1년간 얘기 해왔던 커피란 주제가 글을 통해 여러분에게 전해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닫는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많이 부족한 필자들에게 응원을 보내주셨던 독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때로는 질타와 함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 주는 분들도 계셨지만, 돌이켜 보면 필자들에게 관심 갖고 봐주었던 거라 생각하니, 그 분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드리고 싶다.필자들이 처음 연재를 시작했을 때, 용인시민신문 독자들에게 ‘커피란 무엇인가?’ 라는 주제로 물음을 던진 적이 있었다. 커피는 개인마다 생각과 관점의 차이로 인해 다른 답을 내
사람이 사는 사회는 이런저런 문제가 많이 생긴다. 규칙을 지키지 않아서 큰 사고가 나거나 말 한마디로 결과를 뒤집기도 하고 오해로 관계가 어그러지기도 한다. 이런 일들이 자연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너무도 미미하다. 그래서 언제 생기고 사라져도 전혀 자연에 문제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작은 문제로 사람이 사는 사회는 크게 불안정해지고 파괴되기도 한다.왜 자연은 문제없이 항상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이는 걸까? 아름답지 않은 자연은 없는 걸까? 우리나라와 같이 땅이 작고, 인구가 많은 나라에서 산불은 굉장히 위험하다. 하지만 땅이 넓은
2015년부터 기상 관측 이후 지구가 가장 더웠다는 해가 해마다 기록 갱신을 하며 바뀌고 있다. 즉 2015년 이후 지구 온도가 올라가고만 있지 내려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기후위기 비상사태에 돌입한 것이다. 지구를 온실처럼 뒤덮은 탄소를 당장 저감하지 않으면 공멸의 길을 걷게 될 것으로 이제 전 지구인 앞에 닥친 실체적 위협이 됐다.정부는 탄소중립이라는 목표 달성의 해를 2050년으로 잡았지만, 달궈진 지구를 구하기 위해 우리가 뭐라도 할 수 있는 시간은 실질적으로 십년 남짓이라고 한다. 몹시 공포스럽고 우
“혹시 케냐 AA 커피가 있나요? 다른 곳에서 마셨을 때 그 커피가 입맛에 맞던데요.”간혹 손님들 중에 본인의 취향을 말하며 원하는 커피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본인 취향에 맞춰서 마시는 것은 좋지만 커피 업종에 있는 사람들은 이럴 경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당혹해 할 때도 있을 것이다.필자들도 예전에는 쉽게 답해줄 수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가장 어려운 상황 중 한 가지가 되어버렸다. 왜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일까? 그 이유를 들자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커피농업과 산업의 발전이다.예전에는 커피를
필자는 고등학생, 중학생 아들 둘이 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키가 부쩍 크더니 이제는 엄마 키를 따라 잡은 지 한참이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을 자주 못 만나다 보니 어쩌다 마주치는 아이들 모습에 다들 깜짝 놀라곤 한다.다행히 키가 큰 아빠의 유전자를 닮아 쑥쑥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며 키 작고 통통한 필자는 안도의 한숨(?)을 쉬곤 한다. 한집에 사는 몇 안 되는 필자의 가족도 키 크고 날씬한 사람, 키 작고 통통한 사람 등 여러 체형이 섞여 있다.코로나19를 핑계로 장거리 나들이를 주저했더랬다. 이러다 친정엄마 얼굴도 잊겠다 싶어
아이들이 다니던 초등학교는 처인구의 시골 작은 학교로, 학부모로서 여러 가지 일이 많았다. 아이들이 농사체험을 하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학부모들과 담당 선생님이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해왔는데, 가을걷이를 마치고 마지막 정리를 하기 위해 모인 날이었다. 그 자리에서 새로운 모임에 대한 제안이 나왔다.필자가 하는 일이 생태강사, 생태활동가이다 보니 처음엔 자기 아이들을 맡길 테니 교육을 시켜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제안을 했다. 우리 아이들도 함께할 테니 부모와 아이들 가족 구성원이 모두 참여하는 모임을 만들자고. 우리가 살고 있는
얼마 전 용인시민방송(YSB)을 통해 방영된 필자들의 인터뷰와 드립 영상을 보신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다. 당시 질문 중에 “전문가들의 드립 영상을 보며 따라하는데도 커피 결과물이 안 좋은데 왜 그런 거죠?”라는 질문이 있었다. 필자들이 커피를 해오며 받았던 질문 중 비중이 가장 많은 질문이다.누구나 커피를 좋아하고 홈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면, 한번쯤 유명 바리스타의 강좌를 듣거나, 영상을 보며 똑같이 따라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똑같이 해도 항상 향미가 좋지 않고, 추출된 결과물이 일정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월 중순이다. 시간이 참 빨리 흐른다. 1월 숲은 겨울이 한창이다. 춥고 또 춥다. 하지만 숲 체험은 겨울이 더 재미있다. 풀과 나무가 우거지고 동물들이 움직이는 계절의 숲은 조심해야 한다. 지금은 그때 들어가 볼 수 없었던 숲의 다른 부분들을 찾아 볼 수 있다.그래서 1월의 숲은 흔적을 찾는 것으로 시작한다. 동물의 흔적을 찾고, 식물의 스트레스 흔적도 찾고, 사람이 숲에 남긴 흔적을 찾아 스티커를 붙였다. 우리가 숲에 한 좋은 일들도 하나하나 행동에 옮기며 스티커를 붙였다. 나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