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면 후두둑 낙엽이 떨어진다. 숲에 온양 발에 낙엽이 감긴다. 이제는 낙엽을 쓰는 일이 헛된 일처럼 보인다. 그래도 아파트 경비 아저씨들은 자루에 낙엽을 쓸어 담으신다. 그 낙엽들은 모두 다 어디로 가는 것인지…. 내년 봄엔 냄새나는 퇴비를 뿌리는 수고를 또 해야 할 텐데.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느낌이다. 얼마 전까지도 아파트 내에 아주 붉게 물든 담쟁이덩굴을 볼 수 있었다. 하얀 벽을 덮은 붉은 잎은 더 선명했다. 담쟁이덩굴은 잎자루가 잎 길이만큼 길다. 그래서인가 그 안에 많은 것을 숨겨
전해 내려오는 노래 중에 ‘나무노래’라는 노래가 있다. ‘가자가자 갓나무 오자오자 옻나무 너하구 나하구 살구나무 낮에 봐도 밤나무 불 밝혀라 등나무 그렇다고 치자나무 깔고 않아 구기자나무’ 나무 이야기가 계속된다. 정말로 나무의 모습과 특성에 그럴듯하게 가사를 지었다는 생각에 절로 무릎을 탁 치게 된다. 그중에 요즘 들어 유난히 생각하는 가사가 있다. ‘빠르구나 화살나무’다. 이제 11월 중순을 달리고 있고, 곧 달력은 한 장밖에 남지 않는다. 어느새 2017년도 이렇게 빠르게 지나갔구나. 화살같이. 식물을 구분할 때 우리는 ‘동정
어느새 10월도 지나고 곧 입동이다. 매 절기를 보내면서 우리 조상들의 지혜에 항상 감탄하고 감사한다. 자연이 때에 맞춰 변하는 것에도 신비함을 느낀다.지난주 잘 가지 못하는 전라도에 지인 결혼식차 다녀왔다. 익숙한 풍경이 아닌 곳으로 여행하는 것은 평소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즐겁다. 넓은 농지 가운데에 수확을 기다리는 과실나무들이 눈에 자주 띈다. 감은 먹이로 안성맞춤이다. 한 집 건너 한 집, 감나무에 감이 정말 실하다. 사과나무의 사과도 아직 따지 않고 감상중이다. 모과나무에도 초록색이던 열매가 어느새 노랗게 익어 주렁주
가을을 대표하는 나무에는 뭐가 있을까? 나무이야기를 쓰려고 책상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본다. 뭐니 뭐니 해도 가을은 단풍과 열매의 계절이다. 지난 호에 홍은정 씨가 단풍에 대해 글을 썼으니 이번엔 열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가을 열매를 이야기하라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도토리다. 도토리가 달리는 나무를 우리는 참나무라 불렀다. 참나무는 어느 한 종(種)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참나무과 참나무속에 속하는 여러 나무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도토리라는 열매가 얼마나 중요했기에 ‘진짜, 으뜸, 정말’이라는 뜻의 ‘참’자를 나무
봄에는 비가 한번 올 때마다 따뜻해지고, 가을엔 비가 한번 오고나면 무섭게 추워진다. 매일의 날씨는 날씨예보로 확인하지만, 주간날씨는 식물을 보면 알 수 있다. 아파트 경비 아저씨의 비질이 바빠졌다. 오전에 낙엽을 치우고 나면 점심때쯤 또 수북하게 떨어져있다. 저녁에도 치우시는 걸 봤는데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바닥이 붉게 물들어 있다.그 대신 나뭇가지에는 점점 황량한 찬바람이 분다. 벚나무의 하얀 꽃이 만발했던 때가 눈에 선하다. 여름에 아이들이 까만 버찌로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놀았었다. 그런데 여름 어느 날부터 잎이 하
명절과 국경일로 이뤄진 긴 가을방학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오니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쓰나미로 몰려온다. 하루살이처럼 동동거려도 하나하나 해결해나가는 자신이 대견스러워질 때쯤 동백의 법화산 한 자락에서 복자기를 만났다. 대부분의 나무 이름에는 끝에 ‘나무’라는 말이 들어가는데 복자기는 무슨 연유인지 그 말이 빠지고 그냥 복자기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게 나무 이름인지 짐작도 못하게 말이다.그러거나 말거나 어느새 붉게 물들어 바닥에 한가득 떨어져 있는 나뭇잎들이 가을이 무르익었음을 알려줬다. 파란 하늘을 우러르며 가을을 느끼고, 노란
골짜기 시골에 살았던 필자의 바깥사람은 가을만 되면, 어릴 적 밤나무 밑에서 형이 던진 돌멩이에 맞아 피를 많이 흘렸다는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눈썹엔 아직도 큼직한 흉터가 남아있다. 15m 정도의 높은 밤나무에 밤송이가 가득이다.꽃피고 열매 맺은 지 얼마나 됐다고 어른 주먹만 한 밤송이가 한가득 달려있다. 초록색 밤송이와 갈색으로 변해가는 것이 섞이고, 그 중 벌어진 것도 더러 보인다. 잠시 기다려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투두둑 밤이 떨어진다. 바닥에도 밤송이와 밤들이 뒤섞여 돌아다닌다. 밤송이의 갈라진 모양을 보니 하나같이 깔끔하게
뜨거운 여름 태양의 에너지를 듬뿍 받고 자란 포도는 거의 검은빛에 가깝다. 검은색 음식이 이렇게 먹음직스럽게 식욕을 자극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달콤하게 잘 익은 포도송이는 겉에 하얀 분이 베어 나온다. 발그레한 포도를 한 개 집어 손가락으로 잡고 입안에 넣는 순간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 이로 살짝 깨물며 껍질의 약한 부분을 톡 하고 터지게 해 말랑말랑한 과육과 새콤달콤한 과즙이 입안으로 돌진하게 해야만 한다. 껍질에 남은 한 방울의 과즙도 아까워하며 쓰읍 껍질을 빨아먹곤 빼내는 것이 우리가 포도를 아낌없이 즐기는 기술이다.
참으로 더웠던 여름이 또 지나갔다. 산과 들에 쑥부쟁이가 연보라색 꽃을 살랑살랑 흔들고 있다. 어렸을 땐, 흔하고 단순하게 생긴 들국화의 매력이 무엇인지 몰랐다. 지금은 하얀색의 구절초, 연보라색의 쑥부쟁이, 노란색의 산국 등 국화과 식물의 꽃들이 참 예쁘다. 국화차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진한 향기가 떠올라서인가. 국화과(Compositae)의 나무가 있다면 이쯤해서 한번 이야기를 늘어놓아도 좋을 텐데, 아쉽게도 나무 중에 국화과는 없다. 우리나라 식물도감에는 쌍떡잎식물 중 가장 진화했다고 보는 국화과에는 나무가 없고, 가장 원시
살아가면서 잊지 못할 경험을 하고 그것이 인생의 방향전환을 암시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한다. 지금처럼 생태활동가라는 직업으로 생태와 환경에 대한 관심을 갖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며 꽃을, 그리고 이렇게 나무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이 돼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고향을 떠나 용인에 살게 돼 처음으로 가게 된 광교산에서 나무에 피어있는 꽃을 봤다. 당연히 산에는 나무가 있고, 나무에 꽃이 필 수도 있는 자연스러움이 갑자기 “아름다운 꽃이다”로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봄이었다. 하얀 꽃이 가지를 타고 주렁주렁 달려 나와 머리위에서
여름이 막바지에 치달은 요즘 숲길을 지나다보면 갑자기 어디선가 야릇한 냄새가 풍겨올 때가 있다. 딱히 꽃향기처럼 향기로운 냄새는 아니나 그렇다고 역하거나 못 맡을만한 혐오스런 냄새도 아니다. 음식에 쓰이는 진한 향신료 같기도 하고, 무슨 약 냄새 같기도 하다. 그런 것이 한번 맡아버리면 쉽게 잊히지도 않는다. 어디서 나는 걸까? 누구일까? 궁금하다면 주변을 둘러보라. 키가 그리 크지 않은 나무이면서 깻잎처럼 생긴 손바닥만 한 잎들이 많이 달린 채 삐죽삐죽 튀어나온 게 많은 하얀색 꽃이 핀 나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꽃향기를 맡아
여름 휴가철 보통 어떤 피서지를 선택할까? ‘바다가 좋으냐, 산이 좋으냐?’ 묻는 사람들이 있다. 이건 필자에게 ‘엄마가 좋으냐, 아빠가 좋으냐’ 묻는 어른들의 애꿎은 질문과도 같다. 운 좋게도 이번 여름휴가는 바다와 산을 모두 다녀왔다. 바다에선 한여름 순비기나무의 보랏빛 꽃무리를 볼 수 있어 즐겁고, 산에선 숲이 뿜어내는 푸르고, 신선한 기운에 행복하다. 숲에서 지금 한창 꽃다발을 높이 들고 서 있는 나무가 있다. 바로 붉나무이다.이름은 붉은데 꽃은 안개꽃을 생각나게 하는 하얗고 신선한 아이보리색의 다발이다. 꽃은 크게 하나씩
옛날 옛날에 착한 효자 나무꾼이 살았다.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땅에 떨어진 열매를 발견하곤 가족들에게 줄 양으로 하나 둘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곤 일을 하다 보니 그만 밤이 오고 말았고 어쩔 수 없이 산 속에 있는 허름한 오두막에서 밤이슬을 피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들어간 집이 알고 보니 도깨비들이 살고 있는 소굴이었다. 그날 밤도 어김없이 도깨비는 찾아와 그들만의 금은보화 잔치를 벌였다. 숨어서 이를 다 지켜본 나무꾼은 밤이 깊어오자 배가 고파져 그만 낮에 주워온 열매를 생각하곤 딱딱한 껍질을 까기 위해 꽉 깨물고 만
초복, 중복이 지났다. 예전부터 삼복더위를 이겨내라고 몸보신하는 음식들이 따로 있었다. 이제는 항상 몸보신하는 음식들을 먹을 수 있으니 따로 먹을 필요가 있을까 싶은데, 그래도 먹지 않고 넘겼다가는 왠지 더위를 먹을 것 같은 느낌에, 올해도 삼계탕과 추어탕을 챙겨 먹었다. 개인적으로 삼계탕보다 추어탕이 더 몸에 맞는 필자는 얼마 전까지도 추어탕집에서 선뜻 산초가루에 손이 가지 않았다. 이게 웬 팥 없는 팥빵 먹는 소리인가 싶겠지만, 실제로 그랬다. 그런데 어느 날, 회식자리에서 옆자리 계신 분이 당연하다는 듯 산초가루를 한 숟가락
예전에 서울로 대표되는 도시 아이들이 얼마나 자연에 무지한가를 알려주는 말로 ‘쌀나무’라는 말이 있었다. 쌀이 달리는 나무, 즉 벼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얼마나 얼토당토한 말이냐 웃을 수 있겠지만 당시에는 정말로 그렇게 아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만큼 도시 아이들에게 자연이 멀어졌던 때가 있었다. 다행히도 이제는 벼에서 쌀이 나온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대학시절 서울 강남이 고향인 친구가 있었는데 이 친구는 정말로 어렸을 때 쌀나무를 철썩 같이 믿고 자랐다 한다. 그런 친구와 농사일을 돕고 농촌에 대해 고민해보는 농촌활동
얼마간 소나기같은 비가 계속 내렸다. 천둥과 번개도 자주 볼 수 있었다. 가뭄이 계속 된다 걱정했는데 비가 많이 온건 그나마 다행이다. 오랜만에 숲에 갔더니 많은 비로 이곳저곳 오솔길이 패여 바닥에 바위가 드러나 보였다. 집 잃은 개미들이 허둥대며 돌아다닌다. 비 오는 동안 숲에선 꽤나 많은 일이 있었나보다. 걷다가 팔에 느껴지는 거미줄의 느낌이 싫지 않다. 비가 온 뒤에는 유난히 덩굴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때다 하고 옆에 있는 나무에 줄기를 친친 감아 가장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다. 댕댕이덩굴도 참 흔한 덩굴나무이다. ‘항우도 댕댕
꽃이 예사롭지 않다. SF영화나 판타지영화에 나올 법하게, 아님 열대지방이나 다른 나라의 꽃처럼 낯설다. 가느다란 실이 길게 뻗어 여러 개가 모여 부채살 모양을 이룬다. 색도 예쁘게 분홍색과 흰색으로 요즘말로 ‘러블리 러블리’ 하다. 나무 위에 요정들이 부채를 흔들며 살랑살랑 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다. 여름이 되자 이 꽃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하늘하늘한 꽃의 이미지하고는 다르게 ‘자귀나무’란 이름을 가졌다. 더구나 여기서 자귀란 나무를 깎아 다듬을 때 사용하는 목공 도구의 하나로, 그것의 자루를 만들 때 사용했다는 이유로 자귀
여름에는 왠지 화려하고 정열적인 색의 꽃을 기대하게 된다. 그런 색의 꽃이 뜨거운 여름의 태양 아래에서 잘 살아남을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강한 색의 꽃들을 주변에 두고 봐와서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름에 눈에 띄게 빨강이나 주황색인 꽃은 많지 않다. 특히 나무는 희소하다. 능소화, 장미, 배롱나무 정도가 생각나지만 모두 숲에서는 볼 수 없는 식물들이다. 신기하게도 꽃가루를 옮기는 곤충들은 빨강색을 인식하지 못한다. 주황, 노랑, 초록색도 거의 구별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곤충들은 우리가 느끼는 가시광선보다 자외선에 더 민감한
“정말로 그런 나무가 우리나라에 있어요?”아이들에게 마법의 지팡이란 실로 엄청난 흥미를 끈다. 더구나 해리포터가 주인이며 마법의 지팡이 중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졌다는 지팡이 재료가 우리나라에도 있다는 사실에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워한다. 마치 나뭇가지를 꺾어서 당장이라도 만들겠다는 기세다. 해리처럼 마법을 부릴 수만 있다면야. 소설에서 죽음의 성물 중 하나인 마법 지팡이의 재료는 다름 아닌 딱총나무다.전국의 숲 속이나 개울가에서 자라는 낙엽이 지는 작은키나무로 여러 개의 줄기가 모여 나는데 높게 자라기보다 옆으로 휘어
절기가 망종을 지나 하지를 향하고 있다. 저녁 8시가 돼도 어두운줄 모르겠으니 벌써 한여름이다. 숲을 들어설 때 그 잎의 푸르름으로 더위가 수그러든다. 꽃 찾으러 숲에 갔는데, 여름꽃 대신 봄에 폈던 꽃들이 열매를 맺고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여름꽃 만큼이나 화려한 붉은색의 열매들이다. 그중에 제일은 산딸기다. 아직 꽃받침으로 싸여 있는 영글지 않은 산딸기부터 벌써 터질 듯 새빨간 열매까지, 너무도 탐스러워 군침이 돈다. 숲길 가장자리에 난 산딸기는 보는 사람이 임자다. 이미 꽃받침만 덩그러니 흔적으로 남은 것들도 몇 보인다.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