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게 지내는 언니와 함께 동네에 있는 나지막한 동산에 올랐다. 작은 정자가 하나 있어서 거기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온 세상이 슬픔에 빠져 마치 모든 게 멈추어버린 것 같은 한 주였는데 무심한 숲속은 여전히 분주했다. 꼬물거리며 다니는 애벌레, 찌익찌익 새소리, 한들한들 부는 바람, 발자국 소리……. 초록 잎 사이로 언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다. 모내기철이 된 거다. 조팝꽃 필 때가 볍씨 뿌릴 때였다면 찔레꽃 필 무렵은 모내기철. 예전엔 이렇게 꽃이 피고 지는 것에 따라서도 농사일을 짚어갔다고 한다. 꽃이 피고 지는 일이 기온과 상관이 있으니 철을 아는데 오죽 유용했으랴. 그런데 조팝꽃이 지고 찔레꽃이 한창이기 전까지 볼 수 있는 귀한 꽃이 또 하나 있다. 벼를 추수하고 나
“원액을 거의 다 썼는데 찌꺼기도 아까워서 안 버리고 물에 타서 세수하고 잤거든. 그런데 밤새 눈에서 미생물이 번식했나봐. 일어났더니 눈에 뭐가 잔뜩 끼고 눈꺼풀이 서로 들러붙어 눈을 뜰 수도 없지 뭐야.” 실감나게 전하는 그의 입담이 한몫했겠지만 밤탱이가 되었을 그의 눈이 상상되어 쿡쿡 웃음이 나왔다. 지인의 이 경험담은, 그때까지
지난 5월 5일, 나는 조금 특별한 체험을 했다. 놀이동산을 비롯하여 온 천지가 어린이세상이 되어주는 하루, 아이들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세상에 함께 있었던 것이다. “어린이날 시간 되시면 오시겠어요? 그날 우리 아이들 모두 모여 ‘원주민 마을 만들기’ 할 건데 같이 하시면 좋을 것 같아서요…….&rd
고향을 떠나 있은 지 이십년이 넘었어도 고쳐지지 않는 사투리가 몇 있다. 그중에서도 ‘어’와 ‘으’는 쓰면서도 구분이 안 되어 난감할 때가 많은 발음이다. 말할 때 깊이 의식치 않으면 무심코 섞여 나오기 일쑤다. ‘으름’이 ‘어름’으로 발음된다거나 ‘서어나무&r
필자는 직업의 특성상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된다. 그분들은 음악에 관해 궁금한 내용을 물어온다. 이번호의 글은 여러분들이 질문해 온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했다. 너무도 무감각하게, 그저 그렇게 배웠으니 부르게 된 계명(계이름)에 대한 질문이었다. 계이름을 안 접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가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는 알 것이다
지금은 방과후교실의 선생님을 하고 있는, 오래 전 나와 함께 생태활동을 했던 친구가 있다. 얼마 전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방과후교실 아이들에게 도롱뇽 알을 보여주기 위해 산속 습지에 다녀왔다고. 해마다 이맘때면 도롱뇽 알을 볼 수 있어서 나도 여러 번 갔던 곳이다. (워낙 파헤쳐지는 곳이 많은 까닭에) 작은 습지가 올해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걸 고마
“와~ 무궁화다!” “아냐, 철쭉이야!!!” 뭉텅뭉텅 피어있는 진분홍색 꽃을 보자마자 소리를 내지르는 아이들. 산에 올라가야 볼 수 있는 진달래보다는 학교 가는 길에 흔히 보는 무궁화나 산철쭉이 그들에겐 더 익숙한 이름인가 보다. 어릴 때 우리들은 ‘진달래’란 이름보다는 어른들 말을 따라 &l
지금 살고 있는 동네가 나는 무척 마음에 든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집 앞에 하천이 있다는 것이다. 하천은 맑은 날에는 맑은 이야기를, 흐린 날엔 흐린 이야기를, 비오는 날이면 젖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가만 흐르기만 하면서도 말을 거는 듯 내 머릿속 생각들을 끊임없이 끄집어내준다. 하천 옆 빈 터의 색깔이 날마다 달라지는 걸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넌 무슨 꽃을 좋아해?” “쑥 꽃.” 〉 ‘꽃에 대한 취향이 참 독특한 친구’라고 생각했다. 많고 많은 꽃 중에서 하필이면 꽃 같지도 않은 쑥 꽃을 좋아한다니. 잠깐 동안 나를 의아하게 했던 풀, 그 쑥이 요즘 한창 올라오고 있다. 이름처럼 쑥쑥, 아직은 어리지만 금방이라도 땅을 덮을 것 같
지난 호에 낭만주의 시대의 표제음악에 관하여 다른 음악 이름인, 프로그램음악에 대하여 글을 올렸다. 이번 호 엔 낭만주의 음악에 대비되는 고전음악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고전주의 음악은 1740년부터 1810년 사이의 음악을 고전주의 음악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고전주의란 무엇인가? 흔히들 클래식을 말할 때 클래식을 가리키는 시대의 음악을 고전주의
날마다 비로 쓸고 걸레질을 하고 있지만 한 달에 두 번씩 큰 청소를 한다. 전엔 일주일마다 했었는데 손목이 아프기 시작한 이태 전부터 물도 아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보름 사이를 둔 것이다. 세탁기의 먼지거름망을 떼어내 엉겨 붙은 찌꺼기를 없애고, 한동안 신고 다닌 구두와 운동화의 흙먼지를 털고 구두약을 바르는 손질을 한다. 신발장 바닥에는 신문지를 깔아서
길을 가다가 화들짝 놀라 멈춰 섰다. 바위 틈새로 언뜻 보인 풀꽃 몇 개가 눈길을 확 끌어잡는 바람에. 그대로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가던 발걸음마저 붙들어 맨 그것은 올 들어 내가 처음 만난 풀꽃, ‘큰개불알풀’이었다. 여전히 신비롭기 그지없는 푸른 하늘빛 꽃잎! 반가워라, 큰개불알풀! 부끄러운 듯 연분
“와~ 다코야키 나무다!” “어디, 어디? 진짜네, 진짜 다코야키 같아.” “난 종이나무 같은데…….” 아이들이 나무 하나를 가운데 두고 빙 둘러서서는 떠오르는 대로 한마디씩 던지며 저희들끼리 깔깔댄다. 생태활동을 하면서 나무 별명을 지어볼 때가 가끔 있다. 본디 이름
양치질 끝에 아랫니에 이상한 느낌이 왔다. 손끝으로 건드렸더니 귀퉁이가 쌀눈만큼 바스러져 나온다. 바수어진 자리가 껄끄러워 한참을 이에 골몰하고 있다 보니 얼마 전 태현이와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태현이는 내가 생태활동 봉사를 가는 복지단체에서 만나는 아이이다. 그날도 자연학교를 열기 위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태현이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먼저 다가왔다.
문화란 무엇인가? 그리고 이러한 문화를 만들어 가는데 어떻게 하여야 한단 말인가?보다 실질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이 필요할 것 같다.문화란 일부의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것이어야 하며 1차적 취미자로서가 아닌 보다 적극적 참여를 통해 우리가 참여하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축구경기를 구경하는 것으로는 운동이 되지 못 할 것이다. 운동을 하기 위해서
왕눈이가 또 잠을 잔다. 요즘 들어 눈 맞추는 일이 어려워졌다. 녀석이 하루 종일 잠들어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잘 먹지도 않는다. 가끔 깨어나 물속을 엉금거리고 다닐 때 혹시 먹을라나 싶어 들이밀어 보면 그마저도 귀찮은 듯 고갤 돌려버리기 일쑤다. 왕눈이는 거북이다. 그보다 먼저 온 녀석은 웅이였다. ‘웅이’와 ‘왕눈이&rs
설이 되기 며칠 전, 자연학교에서 친구나무 만들기를 했다. 산에 올 때마다 달라지는 모습을 살피기도 하고, 또 친구처럼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나무 한 그루씩을 숲에서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꼭대기에 커다란 까치둥지가 있는 아까시나무를 먼저 찜한 지민이는 그 나무에 ‘까치설날’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만져도 보고 그려도 본 다음 지민이
2009년 첫 글을 통해 잠시 언급한 것을 생각하며 예술의 정책 제안에 관한 체계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연주자가 있고 예술행정가와 예술경영자가 있어야하며 예술인 정치가가 필요하다고 본다.예술계통을 자세히 살피면 예술이란 단어로 묶어 통칭하여 표현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러나 음악을 예로 든다면 우선은 연주자들이 있을 것이다. 연주
설 연휴 다음날 초저녁,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우연히 서쪽하늘을 보게 되었다. 눈길 끝에는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여윈 초승달이 누워있었고, 한 뼘쯤 떨어진 곳에는 유난히 반짝이는 별도 하나 있었다. ‘저 별이 개밥바라기로구나.’ “개밥바라기별”은 얼마 전에 읽은 소설제목이다. ‘작가의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