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의복을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세척 방법이 개발됐고, 동양에서는 나무나 볏짚 등을 태워 만든 재와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석감’이라는 이름의 세정제가 사용되기도 했다. 볏짚, 콩깍지, 들깨짚, 메밀짚 등 농경 활동을 한 뒤 남은 것들을 활용한 것이다. 잿물에 의복을 담가 빤 뒤 햇볕에 말리면 자외선에 의해 더 깨끗하게 됐다. 이런 전통적인 세탁 방식은 조선시대 후기까지 이어졌다.고대 동양 도교에서 불로불사의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 방법을 연구했는데 ‘연단술’이라고 한다. 당연하겠지만 모두 실패했다. 동양 도교에서 불사의 물질로
1883년 독일제국의 수상 비스마르크는 의료보험법을 제정했다. 강력한 무력을 바탕으로 독일은 통일됐지만 수많은 세력 간에 다툼이 벌어졌다. 특히 기존의 넓은 땅을 가진 귀족 계급과 산업화로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며 부를 축적한 신흥 세력들 간 갈등이 벌어진 것이다. 보수 귀족과 신흥 세력의 갈등 속에 많은 수를 차지했던 노동자들에게 사회주의 이념이 확산되면서 하나로 뭉치게 됐다. 귀족들을 이끌던 비스마르크는 신흥 세력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자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하나의 당근을 던졌다. 사회보험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1917년 2월, 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의 압도적인 해군력으로 해상 봉쇄를 당해 불리한 상황에 몰려 있던 독일은 유보트라는 잠수함을 동원해 군함과 상선을 공격했다. 당시 중립국이었던 미국의 상선도 공격했던 것이다. 참지 못한 미국은 1917년 4월 6일 참전을 결정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약 400만 명의 젊은이들이 미국을 떠나 유럽에서 싸웠다. 많은 젊은 청년에 대한 훈련과 이동, 군사 물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갔다. 미 정부는 전쟁비용으로 320억 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1915년 미국 연방정부의 총예산이 10억
서기 208년 11월, 중국 중부 지역인 양자강 일대에서 조조는 유비와 손권 연합군과 전투를 벌였다. 중국의 중심지역을 장악한 조조에겐 남쪽으로 달아난 유비와 양자강 일대에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손권을 격파하면 천하를 손아귀에 넣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손권은 주유를 대장으로 임명해 유비와 함께 조조를 막게 했다. 주유가 이끄는 연합군은 적벽에서 화공을 이용해 조조군을 크게 이기는 데 성공했다. 크게 패한 조조의 진영에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염병까지 유행했다. 추운 겨울 좋지 않은 위생상태에 집단생활을 하는 병사들은 하나둘씩 쓰
서기 192년 중국 후한 남부지역의 장사 태수 손견은 군사를 이끌고 형주의 유표와 충돌했다. 당시 중국은 ‘황건적의 난’ 이후 동탁의 국정농단으로 중앙정부가 혼란에 빠지면서 지방은 군사 집단에 의한 무단 점거와 다툼이 벌어지면서 군웅할거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손견은 유표를 공격해 승리하고 양양성을 포위했다. 유표는 곤경에 빠지게 됐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별동대를 내보내서 위기를 극복하려고 했다. 성에서 빠져나간 별동대를 추격하던 손견은 매복에 걸려 그만 전사하고 말았다. 손견이 전사한 곳은 양자강 근처였는데, 후에 무창과 한
보랏빛 달콤한 향기를 내는 라일락은 동양에서 정향(丁香)이라 불리었는데, 향을 내는 목적이나 위장 질환의 치료제로 사용됐다. 고대 중국에서는 황제를 만나기 전 입 냄새를 없애기 위해 미리 정향을 입에 물었는데, 요즘으로 말하면 구강청결제나 은단과 같이 사용된 것이다. 동의보감에 기록된 정향은 비나 위가 차서 기가 조화롭지 못할 때, 즉 소화가 잘 안 되는 경우 사용했다.서양에서도 라일락은 고대부터 오심, 구역감, 만성 피로, 위장 질환, 소변을 많이 보는 경우, 상처 치료 목적으로 사용됐다. 기원전 1500년경 이집트 파피루스에도
과실주의 하나인 포도주는 식수 사정이 좋지 않았던 고대 서구에서는 물을 소독하는 방법으로 사용될 정도로 일상적인 음료였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에 사용했던 것도 포도주다. 포도주는 중세 이후 많은 발전이 있었는데 특히, 프랑스의 서남부 해안가인 보르도 지방은 포도 재배에 최적의 토질과 인근에 위치한 항구를 통해 유럽 전체에 수출되면서 유명해졌다. 좋은 프랑스 와인을 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의 보르도 지방을 찾게 됐고 보르도 지방은 큰돈을 벌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보르도 지방에 풍요만 가져다준 것
원나라 말기인 1308년 중국 남부지역에 역병이 시작됐다. 2만7000명이 사망한 전염병은 중국 전역을 휩쓸면서 600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쿠빌라이의 손자 테무르는 후계자를 남기지 못하고 1307년 사망했는데, 치열한 왕권 다툼이 벌어지면서 10여 년 동안 7명의 황제가 바뀌는 혼란이 발생하고 있었다. 중앙정부의 혼란 속에 발생한 재난은 원나라를 송두리째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14세기 중국 인구가 1억200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사망한 것이다. 적은 수의 몽고족으로 많은 중국인들을 통치하기 어려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면서 콜록거리는 감기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 매년 겨울철 증가하는 감기는 리노 바이러스, 아데노 바이러스 등이 원인이다. 눈에 잘 안 보이고, 현미경에서도 잘 식별되지 않는 감기 바이러스들은 1950년대 전자현미경이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식별되기 시작했다. 찬 바람이 불면 시작되는 호흡기 증상을 영어로 ‘Cold’라는 춥다는 의미의 단어가 사용됐으니 질병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다. 찬바람이 병을 일으킨다는 개념은 고대의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동양에서도 감기가 바람의 나쁜 기운에 의해서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성서에서 타락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하게 됐는데 유일하게 의로운 사람이라 평가받던 롯의 가족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롯의 아내는 탈출하던 도중 뒤를 돌아보면서 소금기둥이 됐다는 전설이 있다. 실제 이스라엘 사해 근처에는 롯의 아내라는 바위기둥이 있는데 염분이 높은 사해의 영향으로 소금들이 붙어 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염분이 높은 사막 호수가 증발하면서 발생한 소금을 채취해 사용했다. 이집트 암몬사원 근처 오아시스의 소금이 유명했다. 암몬사원의 소금은 음식물이 상하게 하는 것을 방지할 뿐 아니라 붉은 고기
당뇨 환자들의 소변이 달콤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의사들이 환자의 소변을 먹어 봐야만 했다. 아무리 치료를 목적으로 한다고 하지만, 모든 환자의 소변을 맛볼 수 없는 일이다. 동양에서도 소갈증 환자의 소변이 달콤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얼마만큼의 당이 있는지 어떤 성분인지에 대한 연구는 더 진행되지 못했다. 동양의학이 철학적으로 발전해 실제적인 원인이나 분석에 부족한 측면이 많았고, 질병의 원인을 찾기보다 그때 그때 증상을 완화시키는 대증요법에 주력한 측면이 많았다. 서양에서도 중세시대까지 동양과 큰 차이가 없었다.
고등학생이 제1저자로 어려운 의학 논문을 작성한 것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사가 높다. 의학의 전문성을 제외하고 학습을 이수하기도 바쁜 고등학교 시절에 귀중한 시간을 쪼개어 실험에 참여하고 논문까지 작성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사적으로도 흔하지 않은 일이라 의혹의 눈초리가 높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의료계에서도 고등학생은 아니지만 의과대학 학생이 여러 가지 뛰어난 발견을 한 경우는 있었다. 1867년 독일 베를린의대의 젊은 학생 랑게르한스(Langerhans)는 피르호의 연구실에서 실습하고 있었다. 피르호는 ‘모든 병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동쪽의 인도까지 진출했을 때 달콤한 맛을 내는 하얀 가루를 발견했다. 알렉산더가 맛본 가루에 대한 관심은 동쪽에서도 있었다. 중국 당나라 태종은 인도에 사절단을 파견해 나무에서 하얀색 단맛이 나는 결정을 만드는 방법을 수입했다. 당나라의 달콤한 하얀 가루는 동아시아에 널리 퍼지게 됐고, 당나라 가루라는 이름으로 당(糖)으로 불리어졌다. 눈같이 하얀 가루는 설탕, 모래처럼 고운 가루는 사탕으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달콤한 소변을 많이 보는 질병이 바로 당뇨병이다. 음식을 먹어도 배가 고프고 입이
최근 중국 여행을 다녀온 한 분의 항의를 들었다. 중국 여행 중 급성 A형 간염에 걸려 거의 죽을 뻔했다는 이야기였다. 2016년에 혈액 검사를 하면서 실시한 A형 간염 항체가 없다는 것이 확인돼 예방접종을 권유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백신을 맞지 않고 지내던 중 이번에 큰일을 겪은 것이다. 항의 요점은 “죽을 수 있으니 꼭 맞으라”고 강력하게 권유해달라는 것이다. 올해 급성 A형 간염 환자가 급증해서 7월까지 1만 명을 넘어섰다. 2009년 대유행 당시 전국적으로 1만5231명의 환자가 집계된 이후 최고 수준이다. 이 수준으로 유
사물을 정확하게 그리기 위해 과학적인 관찰을 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인체 묘사를 위해 해부를 시행하기도 했다. 천재적 화가 손에 그려진 인체 해부도는 매우 사실적이고 정확해 오늘날의 기준으로 봐도 놀라울 정도였다. 그러나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놓친 장기가 있었는데, 그 장기가 바로 췌장이다.췌장은 우리 몸속 장기 중 가장 깊숙한 중심 부위에 위치하고 있고, 주변 지방 세포들과 함께 뭉쳐져 있어 구별하기 어려웠다. 실제 췌장을 처음 발견한 그리스의 헤로필로스나 루퍼스는 살덩어리라고 보고 이름도 살덩어리가 모인 것(pancreas)이라
주말 친구들과 점심 식사를 하면서 아이들의 학교 교육과 학원 등 육아 이야기를 나누던 엄마 모임에서 한 명이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담소를 나누던 중 생전 처음 느끼는 강한 통증이 머리를 덮쳤다. 같이 있던 친구 한 명이 두통약을 사러 약국에 갔고, 두통이 심해지면서 구역감을 느껴 화장실로 향했으나 곧바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응급실로 이송해 컴퓨터 단층촬영을 시행한 결과 뇌출혈이었다. 평소 고혈압이 있었으나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치료를 받지 않았다.1958년 영국 ICI 제약회사에
1791년 갈바니가 개구리 뒷다리를 전기로 움직인 사건은 의료계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 큰 영향을 주었다. 영국의 작가 메리 셀리는 프랑켄슈타인에서 죽은 생명을 다시 살리기 위해 번개의 전기를 사용했다. 신경이 구리선처럼 전기 신호를 흘려줘 근육이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했다. 현미경이 발전했지만 물렁하고 회백색 신경은 과학자들에게 큰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염색약을 이용해서 세포의 핵을 찾는 것은 성공했지만, 세포의 모양은 염색이 잘 되지 않아서 관찰이 어려웠기 때문이다.1873년 이탈리아의 골지는 세포벽에 질산은을 묻혀 굳게 했다. 하
드라마를 보면 흥분할 때 뒷목을 잡으면서 혈압이 올라간다는 이야기를 한다. 혈압의 경우 심리 상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평안해지면 혈압은 떨어지는 반면, 긴장할 경우 혈압이 올라간다. 혈압은 심리 상태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마음을 나타내는 한자 ‘心’은 심장을 나타낸다. 고대 의학자들은 심장은 영혼이 깃들어져 있고 우리 몸을 주관한다고 생각했다.고대 동양의서인 이나 에서도 심장이 마음을 다스리고 정신상태를 주관한다고 기록했다. 뇌는 물이 있어 심장에서 생기는 열기를 발산하는 장소로 평가됐다.
1894년 미국의 성형외과 의사 아베는 환자를 수술하던 중 잘린 손가락을 이어 붙이더라도 혈관이 모자라서 결국 회복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모자란 혈관을 연결할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정상적인 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혈관을 연결하는 방법을 찾았는데 바로 유리관을 활용한 것이다.동그란 형태의 작고 가는 관 모양으로 제작이 가능했던 유리관을 혈관 사이에 집어넣고 끈으로 묶어 버리는 것이었다. 굉장히 단순하고 간단한 방법이었다. 아베는 우선 개의 다리 혈관에 유리관을 연결해 봤다. 강아지 다리는 혈액이 잘 공급됐고 실험
서기 662년 겨울, 당나라 장군 소정방은 고구려 평양성을 포위하고 있었다. 백제를 멸망시킨 여세를 몰아 고구려를 공격해 수도인 평양까지 진격하는데 성공했으나, 연개소문의 강력한 저항에 막혀 수개월 동안 공방이 계속되면서 식량이 부족해지고 겨울이 되면서 매서운 추위와 마주쳐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당나라는 고구려 땅 깊숙한 평양까지 군수물자를 수송할 방법이 없었다.위기에 빠진 당은 신라에 지원을 요청했고 신라 문무왕은 김유신을 총사령관으로 하는 수송부대를 평양으로 보냈다. 2000대의 수레에 쌀 4000석, 벼 2만2000여 석,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