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봄이면 두릅을 따러 산에 오른다. 살고 있는 마을 앞산엔 마침 두릅이 지천이다. 한 바구니 따와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먹으면 그 향긋한 향과 아삭거리는 식감에 봄을 먹는 기분이 든다. 먹고 남으면 전을 부쳐 먹기도 하고, 라면에 넣어 먹기도 한다. 봄에 먹을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이다.이렇게 좋아하는 두릅은 두릅나무 새순으로 때를 잘 만나야 한다. 일찍 오르면 아직 너무 작은 두릅 순에 고민하게 된다. 딸까? 말까? 지금 안 따면 다른 사람이 따버려 다음에 와봤자 없을 텐데. 그것이 싫어 따게 되면 너무 작은 순을 모으게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얄라셩 얄라리 얄라…” 정확한 작자와 연대를 알 수 없지만 고려시대 것으로 알려진 가장 유명한 고려가요 ‘청산별곡’에 나오는 첫 구절이다. 삶의 비애와 고뇌를 주된 내용으로 하며 당시 최대 히트곡이라 할 수 있다. 보면 욕심 부리지 않고 가장 소박한 먹을거리로 멀위랑 다래를 이야기하는데 여기서 나오는 멀위가 바로 머루다. 머루는 포도와 비슷하고 다래는 키위와 비슷한데 머루와 다래는 우리나라에 원래부터 있었던 고유종이고, 포도와 키위는
이제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 때마다 툭, 툭 무거운 것이 떨어진다. 무슨 소리인가 두리번거리니 밑둥치가 한 아름 넘는 나무에서 열매가 떨어진다. ‘맞으면 꽤 아프겠다’ 생각하며 나무그늘에서 나와 선다. 이미 봉선이 3개로 벌어진 열매는 떨어지면서 조각이 갈라진다. 반짝반짝 밤보다 예쁜 칠엽수 열매다. ‘칠엽수’는 말 그대로 7장의 작은 잎이 하나의 큰 잎을 만든다는 뜻이다. 하나를 줍고 옆을 보니 또 하나가, 그 옆에 또 하나가, 열매 줍는 재미가 쏠쏠하다. 갈라진 열매를 손으로 벌려 씨앗을 꺼냈다. 열댓 개 까고 나
여름내 내리지 않던 비가 한꺼번에 내리고 있다. 비가 한번 올 때마다 기온이 조금씩 떨어지는데, 이번 비가 그치고 나면 얼마나 추워지려고 이렇게 많이 쏟아지는지 모르겠다. 요즘은 산책하면서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느낌이다. 연두색 열매들이 나무마다 주렁주렁 걸려있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다.나무를 보면서 기대하던 열매를 달고 있으면 기쁘고 반갑다. 그런데 열매가 없는 나무를 보면 왜 그런지 너무 궁금하다. 은행나무처럼 암수딴그루일 수도 있고, 벌써 열매를 많이 떨어트린 경우도 있고, 해걸이를 하는 나무일
우리는 말장난으로 “책으로 배웠어” 라는 말을 쓴다. 직접 경험하지 않고 인쇄된 활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배운 지식이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사용하곤 한다. ‘연애를 책으로 배웠어’, ‘육아를 책으로 배웠어’ 따위. 필자도 나무 공부를 하며 도감과 책을 통한 배움과 예전부터 내려오는 조상의 지혜와 관습으로 쌓인 식물지식이 다른 경우를 많이 본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게 바로 가죽나무와 참죽나무이다. 우리가 먹는 나물 중에 ‘가죽나물’이라고 있다. 두릅처럼 봄에 나오는 나무의 새순을 먹는데 맛과 향이 아주 진한 맛난 나물
7월부터 피기 시작한 무궁화가 이 무더위를 이겨가며 아직도 피고 있다. 73주년 광복절 전후로 무궁화축제, 무궁화탐험대, 무궁화도시계획, 무궁화전시회, 무궁화축구단 등 무궁화를 알리는 활동도 활발하고, 무궁화 마케팅도 인기이다. 무궁화는 키가 많이 크지 않고, 뿌리에서 많은 가지가 갈라지며 자라는 나무이다. 많은 가지마다 꽃이 피고, 한 그루에서 수백송이가 피고 지기 때문에 관상용, 가로수로 많이 사용했다.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지는 꽃이지만 여러 송이가 계속해서 피기 때문에 끊임없이 감상할 수 있다. 꽃 크기도 아이 손바닥만큼이나
처음 봤을 땐 눈에 익숙한 아까시나무인줄 알았다. 아까시나무 잎처럼 생긴 잎을 가진 나무여서 별로 눈여겨보지 않고 그러려니 넘어갔다. 두 번째 봤을 때 아까시나무 꽃 비슷한 꽃이 한 여름에 피어 이상하게 쳐다봤다. 더구나 꽃잎도 노란색이라 아까시나무가 아닌 것을 알았다. 세 번째 봤을 땐 열매의 모습을 보자마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세상에, 나무에 초록색 줄줄이 비엔나 소시지가 달리다니!’이렇게 필자에게 웃음을 주며 다가온 회화나무는 알고 보니 함부로 웃으면 안 되는 근엄한 나무였다. 중국이 원산지인 회화나무는 우리나라 숲에선
햇볕이 너무도 따갑고, 숨이 턱에 찬다. 옛 조상들은 이런 더위를 어떻게 견뎌냈을지 참으로 대단하다. 경기도국악당 입구 오르막길에서 진한 분홍색의 꽃을 본건 5월이었다. 5월은 장미의 달이다. 장미 무리에 속하는 많은 식물들이 5월에 꽃을 피운다. 하지만 이 꽃나무는 여기에 있으면 참 어색한 나무, 해당화이다. “해당화가 곱게 핀 바닷가에서~ 나 혼자 걷노라면 수평선 멀리~ 갈매기 한 두 쌍이 가물거리네~ 물결마저 잔잔한 바닷가에서~” 노랫말에서도, 필자의 고향에서도 해당화는 바닷가에서 자란다고 말하고 있는데, 너무 엉뚱한 곳에서의
용인농촌테마파크에 능소화가 피었다. 따가운 햇살의 뜨거운 여름날을 견디고 있던 차에 큼지막하게 피어난 능소화는 화끈한 시원스러움으로 다가온다. 능소화 나무는 갈색 줄기가 서 있고, 위에 초록 나뭇잎이 얹혀있는 기본 공식을 깨고, 온통 초록 잎으로 둘러싸여 초록기둥으로 보인다. 사방으로 뻗은 나뭇잎과 줄기가 공포영화 속 괴물을 떠올리듯 기괴해 보이지만 크고 아름다운 주황색 꽃에 이내 마음을 열고 다가서게끔 하는 매력적인 꽃나무이다. 능소화는 덩굴나무이다. 덩굴나무는 제 혼자서 서질 못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칡이나 등나무
덥고 습한 날씨로 사람들은 기운이 빠지고 몸이 축축 쳐진다. 하지만 숲은 더 바쁘고 울창해지는 중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숲은 너무 빽빽해서 브로콜리를 보는 것 같다. 우리가 사는 뒷산의 숲이 이렇게 푸르니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곳이 지금보다 좋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생각이 든다. 여름 숲은 울창함의 하이라이트이다. 걷기만 해도 생명의 기운이 온몸으로 스며드는 것 같다. 건조한 숲보다 계곡을 끼고 있는 숲은 더욱 그렇다. 숲에서 드물게 박쥐나무를 발견한다. 잎과 꽃 모양이 모두 특이해서 한 번 보면 알 수 있지만 아주 흔하지는 않다
그날은 무슨 맘을 먹었던 것일까? 쌩쌩 뚫린 터널로 통과하지 않고 박달재 옛길로 접어들어 굽이굽이 차를 타고 넘어오던 중이었다. 길가에 보라색 꽃이 눈에 띄어 잠시 차를 멈추고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딱히 보라색이라고 파란색이라고 규정짓지 못하는 오묘한 색깔이었다. 그 후로 그 꽃을 향한 짝사랑이 시작됐다.주로 큰 나무 그늘 밑에서 1미터밖에 자라지 못하는 키 작은 나무이지만 여름철 우리 숲 곳곳에서 아주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산수국’이다. 산에 사는 수국이라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국은 알아도 산수국은 이름을
“라일락 꽃향기 맡으며~ 잊을 수 없는 기억에~” 라일락을 보면 무조건반사로 입에서 튀어나오는 노래이다. 노랫말도 좋고, 가수 목소리도 정말 좋고, 거기에 라일락 향기까지 더해지는 듯하다. 라일락으로 너무도 익숙한 연보랏빛 꽃송이의 우리말은 ‘수수꽃다리’이다. 꽃송이가 수수의 열매 맺은 모습을 닮아서 그렇게 부른다. 어감에서 오는 느낌으로 수수꽁다리가 수수꽃다리로 바뀐 것이 아닌가 추측도 해본다. 수수꽃다리는 우리 주변에서 정원수로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 정원수로 많이 심는 나무들 중에 영산홍을 제외한 다른 나무들은 사람들의 관
그렇게 흔할 것 같지 않은 모양의 덩굴이 바닥에 깔려있다. 5개의 잎이 동그랗게 모여 나는 모양이 열대지방에 있음직하다. 꼭 홍콩야자라는 식물의 잎과 비슷하다. 덩굴은 자기가 감고 올라갈 것을 찾지 못하면 바닥을 기며 퍼져 자란다. 그래서 스쳐보면 ‘왠 풀밭?’ 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5월에 이미 꽃이 피고 지금은 열매가 맺어있을 ‘으름덩굴’이다. 으름덩굴은 우리나라에서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덩굴식물이다. 덩굴도 종류가 다양하다. 풀이면서 덩굴인 것이 있고, 나무이면서 덩굴인데, 나무처럼 보이지 않고 가늘고 키가 작은 것이 있
잘 익은 앵두는 빨간 색이 반짝반짝 빛나며 탱탱하다.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나무노래’를 보면 앵두나무를 이야기할 때 앵돌아진 앵두나무라고 했다. ‘앵돌아지다’라는 말은 ‘못마땅하여 마음이 토라지다’란 뜻이다. 아마 어린 아이들이 앵돌아져 입술을 삐쭉삐쭉 거릴 때의 작고 귀여운 입술이 앵두를 닮아서일까? 그래서 아름다운 여인의 입술도 앵두같은 입술이라 했나보다. 앵두나무는 앵도나무라고 처음 불렸다. 중국이 고향인 나무다 보니 이름도 한자로 같이 왔다. 중국에서는 꾀꼬리가 먹는다 해서 꾀꼬리 ‘앵(鶯)’자를 쓰고 복숭아를 닮았다
날이 좋은 어느 날, 수지구 신봉계곡을 따라 ‘서봉사지현오국탑비’까지 천천히 계곡을 즐기며 걸었다. 숲이 워낙 좋은 곳이라 이것저것 볼 것 없이 숲 자체를 즐기며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흐르는 물소리, 새소리가 가득하다. 계곡을 따라 봄에 꽃이 폈던 귀룽나무들이 초록색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때죽나무들도 예쁜 꽃들을 달고 있다. 웬만한 숲보다 나무들이 높다보니 큰 나무들보다 숲 가장자리의 키가 작은 나무들도 눈에 많이 들어온다. 하얀 좁쌀만 한 꽃이 길을 따라 가득하다. 흔하디흔한 국수나무다. 한 음식점 이름과 같아 익숙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온 첫 해 이맘때 쯤, 우리보다 먼저 마당에 자리 잡고 있던 나무에 하얀 꽃이 폈다. 처음 보는 나무의 꽃이 어찌나 우아하고 아름다운 지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는데 지나가던 옆집 할머니가 툭 던지시듯 내뱉고 가셨다.“거 오이순나물이여. 봄에 해 먹으면 아주 맛나. 고급이지. 고급 나물”오이순나물? 처음 듣는 나물 이름과 나무에 나물 이름이 붙은 것에 호기심이 발동해 열심히 검색했다. 그렇게 찾은 이름이 바로 고광나무다. 고광나무는 우리나라 숲 골짜기에서 자라는 나무로 물과 낙엽이 풍부한 기름진 땅을 좋아
며칠 전 아이들과 숲 근처 놀이터에 놀러갔다. 아이들은 색다르고 큰 놀이터 규모에 만족하며 정말 열심히 뛰어 놀았다. 어떤 기관의 기준으로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인 날이었다. 바람도 살랑살랑 불고, 주변에 나무가 둘러싸고 있어서 인지 미세먼지의 영향이 크지 않아 보였다. 재채기도 눈 따가움도 없었다. 아이들과 함께 놀다가 좋은 향기가 나 주변을 둘러보니 하얀 꽃이 주렁주렁 달린 쪽동백나무가 보였다. 쪽동백나무는 멀리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나무이다. 아이의 얼굴 크기만큼 크고 동그란 잎이 매우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어디
식물에 대해 공부하게 되면 참 난해할 때가 있다. 잎을 봐도 꽃을 봐도 만져 봐도 비슷비슷한데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 나무를 구분해야한다는 것이 참 어렵게 느껴진다. 비슷한 짝들이 있는데 많이 헷갈리는 것 중에 가막살나무와 덜꿩나무가 있다.가막살나무는 ‘까마귀가 먹는 쌀’이라는 뜻으로 가막살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됐고, 덜꿩나무는 ‘들꿩이 좋아한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한다. 참 신기하고 묘한 이름들이다. 공교롭게도 나무 이름에 똑같이 새 이름이 들어가는 것도 재미있다.가막살나무와 덜꿩나무는 모두 이맘때인 5월에 꽃이 핀
청딱따구리가 봄부터 울더니 아직도 짝을 찾지 못한 수컷의 울음소리가 아침부터 구슬프다. 숲으로 산책가기 정말 좋은 요즘이다. 아직도 춘곤증으로 비몽사몽하고 있다면 숲에 가서 에너지를 받아와야겠다. 숲 한 모퉁이에 반짝반짝 빛나는 나무가 꽃을 피웠다. 보리수나무다. 보리수나무는 꽃이 정말 많이 피지 않고서는 꽃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잎이 유난히 하얀 은빛을 내기 때문이다. 잎 사이로 나팔같이 생긴 작고 하얀 꽃이 주르륵 매달려 있다. 콩과식물들의 뿌리에는 질소를 고정하는 뿌리혹이 있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 척박한 땅에서도
담장나무라고도 하는 ‘송악’을 용인에서 처음 본 것은 농촌테마파크에 지어놓은 초가집 담장에 걸쳐 자라고 있는 모습이었다. 돌담과 너무도 잘 어울려 ‘테마파크 관계자가 정말 장식을 잘 해놓았구나’ 생각을 했다. 숲에서 큰 나무에 붙어 자라는 담쟁이와 닮아있지만 줄기가 더 굵고 잎도 두꺼워 보이는 것이 마치 서양의 아이비와 비슷해 보였다. 그런데 검은색 포도마냥 달린 열매가 너무나 귀엽고 예뻐 보여 관심이 갔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원래 그렇게 자라는 덩굴나무로 우리나라 남쪽지방 해안가나 숲속에서 자생하는 송악이란 덩굴나무였다.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