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단풍철이 막바지다. 봄에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도 볼거리이지만 바람에 눈처럼 날리는 낙엽을 보는 것과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는 것도 너무 좋다. ‘주변에 단풍 구경하기 좋은 곳이 어디더라’ 이쯤 되면 다시 찾게 된다.사람 습관이 만들어지는 데 3개월 걸린다고 했다. 그런데 무려 3년 동안 마스크를 쓰고 있었으니 이제 마스크가 몸의 일부로 느껴진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답답한 줄 모른다.야외에서 산책을 하면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다. ‘아차!’ 하며 마스크를 내리자 가을이 몸으로 스며든다. 마스크가 없었다면 소중하게 느끼지 못했을
1883년 6월 16일 토요일 저녁 영국 북동부 선덜랜드의 빅토리아 홀에서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 활동을 많이 하던 목회자 에드워드 백하우스의 기금으로 설립된 빅토리아 홀은 사회, 정치, 종교 행사에 활용되었다. 특히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한 공연이 벌어지곤 했다. 6월 16일에도 어린이들을 위한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페이 남매로 알려진 마술 공연팀은 이미 몇개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꼭두각시 인형극 등 마술 쇼를 보여주면서 아이들을 열광시켰다. 빅토리아 홀은 무대를 중심으로 3개층에 층마다 1000여명이
지난해 발표한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수년간 전체 암 발생자 수 1위를 차지해왔던 위암은 2019년 갑상선암(12.0%)과 폐암(11.8%)에 이어 11.6%로 3위를 차지했다. 점차 줄어드는 추세지만 매년 약 3만 명이 위암으로 진단될 정도로 여전히 많이 발생하는 대표적인 암이라고 할 수 있다.위암의 치료 방법은 내시경 절제, 수술, 항암화학요법, 표적 치료, 방사선치료 등이 있다. 수술로 광범위하게 위를 절제하는 것이 위암 치료의 근간이지만, 조기 위암의 경우 무조건 수술로 절제하지 않는다.암이 깊지 않아 점막에 국한되고, 조직
10월, 벼는 익어가고 주차장 은행나무에서 은행이 툭툭 떨어져 특유의 향이 진동했다. 밟으면 종일 고생일 터였다.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그네를 타고, 다른 무리는 패드로 뭔가를 신나게 촬영하고 있었다. 비눗방울 놀이를 하는 유치원생들도 보였다. 한 발 떨어진 학교는 참 평화로웠다.5학년 친구들과 숲 체험이 있었다. 일찍 와서 수업에 쓸 준비물을 확인하고 수업할 숲을 한 바퀴 둘러봤다. 학교 뒤 풀밭에는 메뚜기들이 풀쩍풀쩍 뛰어 깜짝 놀랐다. 놀란 가슴을 안고 가면 묘지에 잠자리 떼가 유유히 하늘을 날아다니고, 밤송이는 떨어져 알밤을
섬나라였던 호주는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자 곧 모든 선박에 대해서 해상 검역을 실시했다. 1918년 실시한 해상검역에서 323척의 선박 진입을 중지시켰고, 그중 174척에서 1000여명의 독감 환자가 발견되었다.확진자가 발견된 배는 전원 마스크를 착용하게하고 2주간 격리시켰다. 호주는 지리적인 장점을 잘 살려 1918년 전 세계적으로 수 천만 명의 희생자를 발생시킨 스페인 독감의 유입을 막았다. 극심했던 스페인 독감은 1918년 말경 감소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유럽, 아시아에 큰 피해를 준 독감이 감소했다.제1차 세계대전 승리 기념식
1년 365일 중에 몇 번 없는 쾌청한 날이었다. 상쾌한 공기가 콧속을 파고들었다. 하늘에 뭉게구름이 피어올랐다. 적당히 서늘한 바람과 쪽빛 같은 하늘빛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집에만 있기엔 날씨가 너무 아름다웠다.서둘러 산책 채비를 했다. 집을 나서며 콩과 팥이 잘 자라고 있는지 살펴봤다.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무성해진 고구마를 캐야 하는데 언제 캐야 하나 고민하던 중 옆집 마당에 있는 대추나무에 눈길이 갔다.지금이 아니면 먹기 힘든 사과대추가 눈앞에 보이니 고민은 잠시 제쳐두었다. 손이 닿는 부분은 사람들이 오며 가며 따먹
따뜻하게 챙겨입고 숲으로 간다. 쌀쌀한 기운에 손이 시리듯 차갑다. 비가 시원하게 오고 난 후 하루가 다르게 추워진다. 이슬이 차가워지는 한로(寒露) 즈음이라 그런가 보다. 매일 기온이 조금씩 떨어지는 것을 언제부터 피부로 느꼈을까? 생각해보니,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부터인 것 같다.자연을 공부하는 사람이었지만 계절에 민감해진 것은 자연과 가까이에서 공부하던 때가 아니었다. 그보다 한참 지나 자연을 그리워하면서부터인 것 같다.이렇게 세월이 지나고 나니 계절은 너무도 빠르게 지나감을 느낀다. 요즘은 계절을 탈 시간도 없다. 아이들
중국 춘추전국시대 북부에서 말 한 마리가 사라졌다. 귀중한 재산인 말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이웃 사람들이 위로했다. 정작 말을 잃어버린 당사자는 “이 일이 도리어 복이 될지 누가 압니까?” 하면서 태연했다.정말 얼마 뒤 사라졌던 말은 다른 말들과 함께 돌아왔다. 좋은 말을 공짜로 얻은 셈이니 주변 사람들이 와서 축하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반대로 “이것이 오히려 나쁜 일이 될지도 모르겠지요.” 하면서 덤덤했다.새로운 말을 시험 삼아 타보던 아들이 낙마하면서 큰 부상을 입었다. 아들은 다리를 절게 되었고 마을 사람들은 아들의 부상을 위로
미국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유럽으로 연수를 가는 경우도 있었으나 모든 의사들이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급증하는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의과대학교가 신설되었는데, 1800년 4곳에 불과했던 미국 의과대학은 1860년 47곳, 1900년에 160곳까지 늘었다.교육은 부실했고 졸업한 의사들은 자기 실력을 믿을 수 없어 진료를 시작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의사는 많아졌지만 역설적으로 국민은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1892년 오슬러는 미국의 존스홉킨스병원이 개원하면서 의과대학 교육을 새롭게 구상했다. 의과대학생들도 함께 임상 현장에 참
오전에 어린이집 아이들과 숲체험 나들이를 갔다. 숲체험이면 숲체험이지 굳이 나들이라고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숲으로 가는 체험이 아니라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화단에서 하는 생태체험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이들에겐 건물 안에 있다가 밖으로 나가는 것만으로도 신나는 나들이였다.화단을 따라가며 아이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무엇을 함께 볼까?’ 유심히 보았다. 그러다 눈에 띈 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스트로브잣나무 열매였다.“이게 뭘까?” “솔방울이요”“누구한테서 떨어진 걸까?” “소나무요”아이들이 소나무와 잣
1889년 프랑스 탐험가이자 학자인 샤를 바라가 조선 제물포에 도착했다.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한 조선은 급격한 변화의 연속이었다. 1882년 임오군란, 1884년 갑신정변으로 혼란한 정국이 이어지고 있었다.샤를 바라는 해안 도시를 중심으로 방문하는 서구인들과 달리 조선의 수도인 한성에서 부산까지 내륙을 횡단하기로 했다. 불안한 치안 상황과 전염병으로 위험하다고 말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조선의 진짜 모습을 보기로 한 샤를 바라는 과감하게 일정을 진행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을 따라 강을 건너고 도시를 지나갔다.샤를 바라
도대체 여름은 언제 가나 싶게 무덥던 날씨가 갑자기 돌변해 가을옷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추위를 맞이하고 있다. 추위에 민감한 남편은 부랴부랴 긴 소매 옷에 가디건까지 걸치고 출근한다. 날이 추워졌으니 바로 자동차로 직행할법한데 현관을 나서자마자 마당 한쪽 텃밭으로 발걸음을 향했다.초여름에 씨앗을 직접 심어 지금은 한참 열매를 맺고 있는 팥을 둘러보며 행여 추운 날씨로 잘 자라지 못할까 걱정스러운 눈빛이었다. 생전 처음 심어본 농작물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팥을 워낙 좋아하는 탓에 올겨울엔 직접 심은 팥으로 만든 팥칼국수, 시루떡,
9월의 수업 주제는 마디풀과 식물들이다. 여뀌, 개여뀌, 고마리, 소리쟁이, 마디풀…. 사진을 인쇄하고 풀에 대해 공부하고 숲으로 갔다. 그 흔하디흔한 개여뀌는 그날따라 왜 그리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대신 파란 꽃잎이 항상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닭의장풀이 지천이었다.닭의장풀은 닭의장풀과의 한해살이풀이다. 길가나 풀밭, 냇가 습지에서 흔히 자란다. 줄기 밑 부분은 옆으로 비스듬히 자라고, 땅을 기고 마디에서 뿌리를 내리며 많은 가지로 갈라진다.줄기 하나를 잘라내면 잘라낸 줄기에서 다시 뿌리가 나올 정도로 번식력이 강하다. 꽃은 7
산에 있는 여러 풀 중 질병에 도움이 되는 약초를 찾아 채취한 뒤 말리는 작업을 해서 보관하는 과정은 많은 힘이 들었다. 특히 최근에도 건강기능식품에 백수오와 비슷한 이엽피우소가 혼입돼 문제가 발생한 경우가 있을 정도로 약초와 독초의 감별은 쉽지 않았다.에는 실록 숙종 37년 8월 3일자에 영동·영남에서 진상하는 인삼을 붙여서 만든 것도 있고, 서북의 인삼은 푹 삶아 쪼개서 도라지 등을 넣어 엄히 처벌하자는 내용이 보인다.약초를 찾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질병의 원인을 밝히는 것이었다. 상처나 골절과 같은 직관적으로
9월, 가을에 접어들었다. 공기냄새가 달라졌다. 낙엽 냄새가 섞인 시원한 향기가 났다. 구름은 높고 하늘은 더 높다. 에어컨은 이제 커버를 씌우고 리모컨도 잘 치워두었다. 가을을 알리는 무당거미와 버섯을 여기저기에서 자주 본다.벌초하러 다녀온 시골 화단엔 맨드라미가 한창이었다. 하지만 그 옆 텃밭에 고추 일부는 탄저병에 걸려서 시들해 고춧대만 남아 있었다. 8월 비가 자주 내린 것이 원인이었다.시골에 다녀오니 필자의 어릴 때가 생각난다. 유아기 때 찍은 어느 사진에선 마당에 멍석을 깔아 빨간 고추를 말리고, 화단에는 맨드라미와 채송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잠깐 틈이 생길 때, 무엇을 할까 하다가 노트북을 열고 내 파일상자를 뒤진다. 평소엔 수많은 사진과 파일들을 딴 곳에 흘리지 않고 이 상자 속에 쌓아두고 모아 놓는 것에 만족하다가 이렇게 틈틈이 시간이 날 때면 다시 하나하나 해당 폴더로 분리하는 작업을 한다.며칠 전 사진 정리를 하다가 동영상 하나가 나왔다. 10초 정도 되는 아주 짧은 영상이었는데, 예전에 처인구 이동읍 천리에 있는 신원저수지 둘레길에 갔다가 찍은 왕지네 사진이었다.지네 영상을 보고, 내친김에 자막도 깔고 편집도 해서 유튜브 채널에 올
1637년 1월 30일 남한산성에 있던 조선의 인조는 성을 나와 삼전도로 향했다. 삼전도에는 높은 단 위에는 청나라 태종이 앉아 있었고, 조선의 왕이었던 인조는 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조아리는 치욕적인 항복 의식이 이어졌다.1636년 12월 8일 압록강을 넘은 청나라는 단 4일 만에 개성에 도달하는 빠른 진격으로 조선의 허를 찔렀다. 임경업 등 수많은 조선의 장군들은 산성에 있었으나, 청나라는 이를 무시하고 바로 조선의 수도로 진격한 것이다. 인조는 허둥지둥 남한산성으로 피신해서 47일간 농성했으나, 결국 추위와
어딘가에서 씨가 날아왔는지 작년엔 보이지 않던 구릿대가 지난봄부터 마당 끝자락에서 자라고 있었다. 키가 2m 가까이 자라는 잡초(필자 기준엔)인지라 더 자라기 전에 뽑을까 말까 고민을 엄청 했더랬다.그러다 문득 몇 년 전 아이들과 수업하던 중 구릿대에서 발견한 산호랑나비 애벌레 생각이 나서 일단 뽑지 않고 살려두었다. 거기에다 구릿대에겐 운 좋게도, 필자에게는 우울하게도, 봄 끝자락에 다리를 다쳐 근 두 달 동안 마당 근처는 얼씬도 하지 못했다.소파에 누워 풀이 쑥쑥 자라는 마당을 한없이 쳐다보기만 하는 게 올 여름 필자의 일상이었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는 올 여름 계곡은 정말 깨끗하고 멋지다. 시원스레 흐르는 물소리와 함께 수량이 풍부해 아이들은 그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다이빙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신나는 놀이터로 변신했다.그렇게 재밌게 아이들과 계곡에서 만날 생각으로 숲에 도착했다. 근데 차를 주차하려는 순간 오래된 밤나무 줄기에 앉아있는 익숙한 듯 낯선 새의 모습에 눈을 뗄 수 없었다.6월 어느 때부터 걷다 보면 어린 새들과 자주 마주친다. 털은 조금 덜 자란 듯하고 덩치도 작고, 걷고 뛰는 모습들, 먹이를 찾는 모습들, 주변을 살피는 모습들도 아직 미
에 신라 헌강왕 때 동해 용왕의 아들 처용 이야기가 등장한다. 처용은 신라에서 관직을 얻어 봉사했으며 역신을 춤을 춰서 물리쳤다는 고사가 에 나온다. 처용에 대해서 여러 설이 존재하나 전해 내려오는 특이한 외모는 외부에서 이주해 온 사람일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특히 중동 지역 출신일 것이라는 학설이 제기되기도 했다.당시 아라비아 상인들이 신라까지 찾아왔다는 기록도 있다. 876년 중국 남부 지역에서 발생한 ’황소의 난‘은 해안가를 중심으로 무역을 하던 이슬람인들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 일부는 탈출해 다른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