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는 올 여름 계곡은 정말 깨끗하고 멋지다. 시원스레 흐르는 물소리와 함께 수량이 풍부해 아이들은 그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다이빙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신나는 놀이터로 변신했다.그렇게 재밌게 아이들과 계곡에서 만날 생각으로 숲에 도착했다. 근데 차를 주차하려는 순간 오래된 밤나무 줄기에 앉아있는 익숙한 듯 낯선 새의 모습에 눈을 뗄 수 없었다.6월 어느 때부터 걷다 보면 어린 새들과 자주 마주친다. 털은 조금 덜 자란 듯하고 덩치도 작고, 걷고 뛰는 모습들, 먹이를 찾는 모습들, 주변을 살피는 모습들도 아직 미
사람은 적응이 빠른 동물이다. 여름이 시작될 때는 이렇게 더워서 어떻게 여름을 날까 걱정했는데, 이젠 한낮에도 그늘을 찾아다니며 여름에 몸이 적응한 것이 놀랍다. 사계절이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 아닐까?정해져 있는 자연법칙이지만 언제나 다른 사건이 생기는 계절은 우리에게 변화에 대처하는 기회를 주고, 그에 대한 적응력을 갖게 한다. 평생 사계절을 경험하며 적응력을 갖는 것은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어벤져스에도 나오지 않는 초능력 하나를 장착한 느낌이랄까!더위를 식히며 시원한 커피 한잔 마시고 산책
아침 10시 약속으로 부리나케 걸어가고 있었다. 앞에는 어린이집에 가는 아이와 엄마가 걷고 있었다. 남자 아이였는데 가면서 자꾸만 “여기, 여기. 여기”란 말을 하고 있었다. 말과 함께 아파트 담벼락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뭐지? 궁금함에 아이가 가리키고 간 곳을 바라보니 세상에, 아파트 시멘트 담벼락에 매미 애벌레 허물들이 붙어있었다.한두 마리도 아니었다. 가면서 보니 계속이었다. 나무줄기나 풀잎에 올라와 있는 매미 애벌레 허물은 많이 봤지만, 이렇게 길가 시멘트 담벼락에 붙어있는 모습은 왠지 낯설었다.어디서 왔을까? 매미 애벌레들은
초등학교 입학 전이었던 것 같다. 변변한 유치원 하나 없는 시골 마을에 학교도 안 다니는 예닐곱 살 어린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친구들과 모여 노는 것뿐이었다.뜨거운 땡볕이 내리쬐는 여름엔 친구들과 마을 입구 개울가로 수영하러 가는 것이 중요한 일과였다. 필자 고향 마을엔 ‘동쪽골’과 ‘저건너’라는 두 개의 큰 개울이 있다. 해가 뜨는 동쪽에 있어서 ‘동쪽골’, 마을 저 건너에 있어서 ‘저건너’ 라고 지어졌던 듯싶다.어린 시절엔 아무렇지도 않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불렸던 그 이름이 커서 생각해보니 참으로 성의없게 지어졌다는 생각에 헛웃
한여름도 아니고 초여름의 요즘 날씨가 진짜 무덥다. 무더위가 물과 더위가 합쳐진 ‘물더위’에서 유래되었다는데 진짜 요즘이 물더위다. 지난주 장마가 계속되고 소강상태인 지금(7월 6일)은 물과 더위가 합쳐져 사람의 진을 빼고 있다.하지만 지난주 장마철에 아주 재밌는 경험을 했다. 비만 내리기 시작하면 밤마다 울어대는 어떤 소리가 며칠째 계속 되었다. 소리가 너무 컸다. ‘수컷아 얼른 암컷을 찾아 결혼하고 그만 울어라. 밤마다 오늘 밤이 마지막이길 바랐다.웬걸, 아니다. 다음날이면 또 어김없이 아주 큰소리로 암컷을 찾는다. 아니 한 마
장마가 시작되었다. 내리던 비가 잠시 주춤하다가 또다시 소나기처럼 퍼붓고 잠잠해지나 싶다가도 추적추적 오기 시작한다. 길을 걸을 때 신발이 젖는 것을 생각하면 장화를 신어야겠지만 발에 땀이 차는 것까지 생각하면 슬리퍼나 고무신(젤리슈즈)이 오히려 편하다. 발도 발이지만 많은 양의 비 때문에 축축한 공기 안에서 이러다가 모두가 물이 될 것 같다.비가 많이 오면 가장 좋은 곳은 습지일 것이다. 습지의 신비로운 모습과 그 진정한 모습을 모두 볼 수 있다. 가까운 곳에 논이나 연못이 있다면 지금 바로 가봐야 한다.지금 논은 모내기 후 작은
‘시골 쥐와 도시 쥐(때론 서울쥐)’라는 우화가 있다. 서로의 집에 놀러 가서 겪게 되는 이야기로 시골 생활과 도시 생활의 차이점으로 일어난 해프닝을 담고 있다. 요즘 필자는 사정이 있어 일주일 중 평일에는 주로 도시인 용인 수지구에 있고, 주말엔 시골인 처인구 원삼면에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시골과 도심을 오가며 서로 다른 것에 대해 새삼 실감하고 있다. 그 두 마리의 쥐처럼 말이다.오전에 시간이 날 경우엔 집 앞에 있는 광교산에 오른다. 물론 광교산은 용인과 수원에 걸쳐 있을 만큼 엄청 크고 넓어 뻗어 나간 한 자락에 잠시 오
매일 아침이 참 신선하다. 나뭇잎들은 하루가 다르게 그 색이 짙어지고, 바람은 그 사이를 지나다니며 나뭇잎들을 잠시도 가만두지 않는다. 바람과 나뭇잎이 부딪치는 소리에 귀가 즐겁다. 나뭇잎의 춤사위에 마음도 덩달아 춤춘다.아침부터 수업 준비로 분주하다. 집에서 꽤 먼 초등학교 수업을 하러 가는 날이었다. 일주일 내내 어떻게 수업할지 고민했다. 수업 날 아침 즐거운 긴장감이 계속되었다. 일찍 가서 준비물을 확인하고 수업할 장소를 둘러봐야 했다.수업은 나뭇잎이었다. 우선 바람과 햇빛과 온도가 높은 요즘, 잎의 증산작용을 알아보기에 좋다
길을 걷다가 잎이 축 처진 개망초를 보았다.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오랫동안 충분한 비 소식이 없었던 탓에 식물들이 여기저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꽃이 진 백당나무의 넓은 잎들도 아래로 늘어져 있었다.뿌리가 깊은 큰키나무들은 상대적으로 수분스트레스가 덜한 것 같다. 작고 뿌리가 얕을수록 그 모습이 불쌍하고 애처로웠다. 하지만 큰키나무들은 한번 잎이 죽기 시작하면 더 큰 피해를 입고 회복도 오래 걸린다.기상청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올해 경기도 누적 강수량은 138mm로 평년(256mm) 대비 54% 수준이다. 농가는 지금의
오랜만에 광교산에 올랐다. 거의 다 내려와서 많이 들어본 익숙한 소리가 났다. “쪽 쪽 쪽 쪽” 새 소리가 아니라 다람쥐 소리라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 다람쥐가 소리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에 좀 돌아가더라도 꼭 확인하고 싶었다.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향했다. 평소에 다람쥐는 나무 위로 높게 올라가기보다 땅에서 쪼르르 다니는 모습을 많이 보여줘 아래쪽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나 이상했다. 분명 소리는 나무 위에서 나고 있었다.이미 나뭇잎이 많이 우거져 나뭇가지 사이사이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리가 들리는
“5월은 1년 중 가장 게으른 달이다. 봄의 동력으로 여름으로 가면 되니까.” 라디오에서 이 말이 흘러나왔다. 세상에 5월을 이런 시선으로 볼 수도 있구나. 분홍과 빨간과 하얀의 화려한 산철쭉들이 피고 연이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이팝나무의 흰 꽃들이 도로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숲은 또 어떠한가? 애기똥풀, 엉겅퀴, 흰씀바귀, 씀바귀꽃이 무리 지어 노랗고 하얗고 보라색의 장관을 이루고 있다. 진한 향기의 찔레꽃에는 온갖 곤충들이 와서 식사를 하고, 그보다 더 진한 향기의 아까시나무에는 벌들이 꿀과 꽃가루를 모으느라 바쁘기만 하다.
날씨가 많이 따뜻해져서 밤 산책도 가볍게 할 수 있는 날이 되었다. 실외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 있게 되었지만 낮에는 마스크를 벗는 것이 어색하다. 2년이란 긴 시간 동안 너무도 벗고 싶었던 마스크인데 익숙함을 벗어던지는데 또 다른 용기가 필요한가 보다. 상대적으로 인적이 드물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좀 더 자유로운 밤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 밤 산책에서 오랜만에 자유를 느낀다.마스크로 후각을 버리고 지낸 시간이 길어서 일까, 어둡고 고요해서일까, 더 깊게 숨을 쉰다. 낮에는 시각에 몸과 마음이 집중한다면
날이 좋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야외 잔디 마당이 잘 관리돼 있는 카페에서 따듯한 햇볕을 쬐며 수다를 떨던 도중, 마당 한구석의 민들레가 눈에 들어왔다.두 개의 꽃대 중 하나는 노랗게 꽃이 피어 있고, 나머지 하나는 솜털이 활짝 피기 직전이었다. 그 모습을 본 후로 친구들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조금만 있으면 깃털이 활짝 펴서 씨가 날릴 것처럼 보이는데, 여기 카페 주인은 알고 있을까? 내가 가서 뽑아줘야 하나? 관리가 잘된 잔디를 보니 괜스레 조바심은 더 커진다.결국 참지 못하고 자리를 파하는 시점에 달려가 얼른 민
봄이 너무 짧다. 한낮엔 땀이 날 정도로 갑자기 더워졌다. 며칠 전 여름옷 꺼내며 이대로 봄이 끝나는 걸까 조바심을 냈다. 그랬더니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아직 봄임을 상기시켜준다. 봄철의 불청객이라 불리는 꽃가루 알레르기이다.기온이 높고 날이 맑으며 살랑살랑 바람이 불 때 꽃가루가 가장 잘 퍼진다. 딱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오전에 야외 공원에서 어린 친구들을 대상으로 숲체험이 있어 두 시간 가량을 보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너무 힘들었다. 차 안에 있었지만 내 몸속에 이미 들어와 있는 꽃가루들로 인해 눈이 뻑뻑해지고, 가렵고,
찬란하던 벚꽃이 졌다. 봄이 사라져 가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넓히면 벚꽃이 지는 그 자리에 또 다른 봄이 찾아온다. 숲에서 만나는 봄은 다채롭다. 멀리서도 보이는 진분홍 진달래는 언제 봐도 반갑다. 그 밑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형형색색 봄꽃들이 저마다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물론 봄꽃의 아름다움은 인간에게 아름답게 보이기 위함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꽃이 왜 이렇게 예쁘게 피었을까?”라고 물으면 아이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우리한테 예쁘게 보이려구요.” 하지만 아니다. 꽃가루받이를 위해 벌과 나비를 불러들이기 위해
봄에는 뭐니 뭐니 해도 벚꽃이 가장 화려하다. 큰 나무에 잎이 나기 전 연핑크의 봉오리가 맺히고 흐드러지게 필 땐 눈처럼 하얗다. 바람에 떨어질 때도 눈처럼 흩날리며 꽃잎이 한 장씩 떨어지고 바닥에 쌓이면 그것대로 참 예쁘다. 봄이면 떠오르는 노란 개나리도 얼마나 화려하고 따뜻한가!보라색 제비꽃도 여러 해를 지내며 커진 꽃무더기는 너무도 소담스럽다. 이렇게 우리 주변에서 자기를 마음껏 뽐내는 꽃이 있는가 하면 찾아보지 않으면 시기를 놓쳐 꽃이 피었는지조차 모르는 식물이 있다.필자는 4월이 되면 항상 무덤가를 기웃거린다. 올해도 ‘꽃
엄청 저렴하게 전세로 나온 시골집을 가족과 상의 없이 충동적으로 계약하곤 남편에게 흥분된 목소리로 전화했던 일을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처음 시골로 이사와 살던 곳은 비포장 길을 한참 들어가야만 도착할 수 있는 산자락 밑에 있는 오래된 집이었다. 몇 가구뿐인 아주 조용한 마을에서 매일매일 자연이 주는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며 매우 만족하며 살았다. 하지만 가장 큰 스트레스를 주는 건 각종 벌레도 비염을 자극하는 꽃가루도 아닌 뱀이었다.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집 현관 앞에서 햇볕을 쬐다가 필자를 보고 스르륵 사라지는 모습을 본 이후
‘너무 늦은 거 아닐까? 소위 말하는 뒷북치는 셈인데….’한참을 주저하며 망설여도 도저히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이 소재가 주는 여운이 너무 강해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이러다가 원고 마감 시한을 지키지 못하겠다는 조바심도 났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이 얘기를 꺼내야겠다.작년 11~12월 사람들 사이에 많은 인기가 있었던 사극 드라마가 있었다. ‘옷소매 붉은 끝동’ 이라는 조선시대 궁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였다. 물론 남자 주인공은 정조 이산이었지만 정조가 사랑했던 궁녀 성가 덕임과 그 주변 궁
비가 오고 난 후에 숲을 가니 바닥이 푹신푹신하고 기분이 좋다. 봄을 빨리 느끼려면 숲으로 가자. 쌓인 낙엽 사이로 푸릇푸릇한 풀들이 올라오고 있다. 쓰러진 나무들이 부슬부슬한 흙으로 변하고 있다. 새들의 노랫소리가 아름답게 들린다. 생강나무의 노랗고 작은 꽃들도 선명하게 보인다.말 그대로 살아 숨 쉬는 숲을 만날 수 있다. 동네 주민들이 숲을 공원삼아 산책을 많이 한다. 마스크를 쓰고 하는 산책이지만 숲에 들어간다는 자체가 뭔가를 얻는 느낌이다.그런데 며칠 전까지만 해도 동해안에 ‘2000년 동해안 산불’에 버금가는 대형산불이 발
올해 3월은 유난히 추운 듯하다. 아직 겨울옷을 그대로 입고 생활한다. 봄이 조금 늦게 우리 곁에 오는 듯하다. 숲도 그런가 보다. 여느 때 같았으면 산개구리 울음소리가 한참 전에 들렸는데, 올해에는 아직 소식이 없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수업 장소에 갔다.진짜다! 매년 도롱뇽과 산개구리들이 알을 낳으러 들르는 웅덩이는 내리지 않는 비로 말라 있었다. 다른 곳을 또 부리나케 찾아가 봤다. 아직 얼음이 얼어 있었다. ‘이를 어쩌지’ 하며 물이 흐르던 계곡을 올려 다 보았다. 계곡도 말랐고, 좀 더 위의 계곡은 얼어 있었다.산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