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도시에서 살고 싶은가”에 대해 자문해 본 적이 있는가. 어떤 도시가 더 살기 좋은 도시인가 혹은 살고 싶은 도시인가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해 보았는가? 그럼, 이런 질문은 어떤가? 어떤 도시가 사람과 돈을 모으는 도시인가? “라이프스타일 도시로의 전환은 숙명”이라고 강조한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모종린 교수는 걷고 싶은 거리와 개성 있는 마을이 많은 도시, 도시에서 창의적인 일을 하는 크리에이터들이 모여 있는 ‘라이프스타일 도시’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선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호에 생존을 위
2020년 용인시도시기본계획은 2001년 승인 받은 ‘2016년 도시기본계획’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동·서간 불균형 해소를 위한 도시공간구조 개편에 초점을 맞췄다. 이 계획은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용인 동부권(처인구)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도·농복합도시의 균형발전을 위해 첨단산업·연구기반을 확충하고, 체류형 관광지구를 확대해 문화·관광 인프라를 구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난개발의 대명사로 알려진 수지로 대표되는 용인 서북부지역을 거울삼아 무분별한 도시개발 확산을 막아 개발과 보전이 조화되는 환경 생태도시를 만들겠다
현장에서 바라본 용인 지역언론 현황과 보도 ‘행태’ 용인시에 정보공개 청구를 하면 잘 공개 되지 않은 것 중 하나는 ‘언론사별 광고비 지출 현황’이다. 여기에 일부 언론은 기자회견 등을 통해 용인시에 직접 질문을 던져도 답변을 쉽게 받기 힘들다. 그만큼 언론과 자치단체간 광고비는 예민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용인시는 최근 광고비 지출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조례 제정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말 그대로 ‘야단법석’이다. 조례 내응에 대한 한계는 꾸준히 보도되고 있는 상황이라 차선으로 넘
용인시는 1996년 군에서 도농복합도시로 승격했다. 이후 3년만인 1999년 이 창간호를 발행하고 본격적인 견제에 들어갔다. 20년이 흐른 2019년 용인시는 인구 107만의 대한민국 중요 도시로 자리 잡았으며, 은 1000호를 맞은 청년으로 성장했다. 용인시 발전 과정에서 발생한 굵직한 사건에는 지역언론으로 함께 했다. 용인시청에 등록된 언론사만 수백 곳에 이른다. 기자명수로 하면 이보다 훨씬 많다. 이 가장 신속하게 보도, 공명정대했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저 늘 노력하는 자세로 20년을
‘시간창고로 가는 길’ 연재를 시작한 첫 회, 유년시절 지금의 처인구 남동 동진마을로 이어진 아리랑고개의 무서웠던 추억을 언급한 적이 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고개를 넘을 때면 짐승들 울음소리에 머리카락이 곤두섰을 만큼 무서움에 고개를 뛰어서 넘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땐 짐승 울음소리도 무서웠지만, 더욱 오싹하게 만들었던 건 지금의 용인문예회관 근처쯤에 있었던 허름한 작은 집(창고)이었다. 상여와 각종 제구를 넣어두었던 상엿집이었기 때문이다.당시에는 한낮에도 감히 접근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정도였으니 기자에게 상엿집은 꽤나 강렬
“삼월은 늦봄이라 청명, 곡우 절기로다. 봄 날씨 따뜻해져 만물이 화창하니 온갖 꽃이 만개하고 새 소리 각색이라.” - 농가월령가 3월령가 중에서“사월은 초여름이라 입하, 소만 절기로다. 비 온 끝에 햇볕이 나니 날씨도 화창하다.” - 농가월령가 4월령가 중에서“구월이라 늦가을이니 한로, 상강 절기로다. 제비는 돌아가고 떼기러기 언제 왔느냐.” - 농가월령가 9월령가 중에서“시월은 초겨울이니 입동, 소설 절기로다. 듣거라 아이들아, 농사일 끝났구나, 남의 일 생각하여 집안 일 먼저하세.” - 농가월령가 10월령가 중에서용인이 도시화
◇여유롭고 활기찬 문화‧체육‧관광도시= 각종 개발로 용인 곳곳이 파헤쳐졌지만 정작 용인에서 발굴된 유물을 시민들은 곁에서 손쉽게 관람할 수 있는 공간조차 부족했다. 이에 문화‧역사계 뿐 아니라 시민들은 시가 직접 나서 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이에 백 시장을 임기 내인 2022년까지 용인시립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겠다며 사실상 문화 체육관광 관련 공약 1순위에 올렸다. 추진 일정을 보면 올해까지 기본계획을 수립, 내년부터 2021년까지 모든 준비과정을 마치고 착공에 들어가 2022년 준공한다는 방침
서로군정서(부독판 여준) 중대장으로 청산리·봉오동 전투를 승전으로 이끈 오광선은 1933년 임시정부 김구 주석의 요청에 따라 산해관을 넘어 낙양의 군관학교 교관으로 초빙됐다. 이어 밀명을 받아 일본군 점령 하의 북경으로 밀파돼 금은방을 차리며 비밀공작에 종사했다. 하지만 곧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됐고, 1937년 11월 신의주 형무소에 수감되고 말았다.오광선의 체포 소식을 들은 남경의 임시정부 지도부와 가족들은 그가 처형당했을 것으로 여겼다. 임정 요인들은 부인 정정산과 희영(1925년생)·희옥(1927년생) 자매, 그리고 유복자인
시인 류완희는 1901년 용인 내사면(현 처인구 양지면) 송문리 429-1번지에서 태어났다. 양지공립보통학교를 4회로 졸업한 후 경성제1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에 이어 경성법학전문학교(현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행정법과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많은 시간 문학도서 탐독으로 보냈다고 한다.1923년 3월 20일 본과를 1회로 졸업한 류완희는 법률가가 되라는 주위의 권고를 뿌리치고 경성일보의 편집부 겸 학예부 기자로 입사했다. 이후 그는 동아일보와 시대일보, 중외일보 등에서 당대 사회의 모순과 불합리성을 파헤치는 기사를 쓰는 한편
숙박 장소 도내 2위 전국 10위 권 수준에버랜드 관광객 활용한 상품 발굴 절실 용인시의 경우 2016년 가평군에 이어 13.1%로 2위를 차지하다 2017년에는 5.2%로 급락했다. 분기별로 보면 용인시는 2분기(31.8%)와 3분기(29.3%)로 1위를 차지했다. 즉 봄‧여름철에 집중적으로 몰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봄과 여름철과 관련한 관광 상품을 용인시가 개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또 다른 볼거리는 성별 연령별 거주지별 숙박지역 현황 분석이다.용인시는 연령대가 낮을수록 숙박 비율이
맑은 공기를 주는 석성산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보전하기 위해 올해 4월 25일 용인 크리스토퍼 산악회에서 조진이 회장을 비롯한 회원 21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4회 환경 캠페인을 실시했다.용인에 사는 사람이면 한 번쯤 다녀간 친근한 석성산은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산으로 새해 해맞이와 아침 산행, 가족 산행, 직장동료들과 함께하는 등 우리에게 사랑받고 있는 친구 산이다. 진달래가 여기저기 수줍게 피어나는 아침, 하하 호호하면서 등산로 주변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 이들은 즐겁고 행복한 마음이었다.용인시청에서 출발하여 정상을 거쳐 마성
대한민국에는 200여 종합대학이 있고, 용인시에만 9개 대학이 있다. 하지만 독립운동가가 설립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독립운동사를 정규강좌로 가르치는 대학은 용인의 단국대학이 유일하다. 단국대학을 설립한 범정 장형 선생은 1889년 1월 18일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났다. 9살까지 한학을 공부한 그는 1908년 서울로 올라와 보성전문학교 법과에 입학했다. 학창시절 그는 설립자 이용익을 비롯해 안창호와 손병희 선생에게 강한 영향을 받았다. 1909년 일제의 국권침탈로 단 한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장형도 학업
【개업】‘더고운인테리어’ 정우형(39기)▶ 사업내용: 인테리어 디자인, 리모델링, 홈인테리어, 상업인테리어 등▶ 위치: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둔전리 400-2▶ 연락처: 031-333-1294 / 010-3087-1294 【이전 개업】‘고운맘재가노인복지센터’ 심효순(38기)▶ 사업내용: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을 대상으로 방문요양(신체활동지원,정서지원,인지활동지원,가사 및 일상지원) 방문목욕(전문요양보호사 2명이 가정을 방문하여 서비스제공)▶ 위치: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 343-13(용인시 처인구 중부대로 1438)▶ 연락처: 03
전쟁 상흔 남긴 용인…좌·우익 대립 생채기도6월이 되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현충시설을 찾는 유족과 학생들의 발걸음이 늘어난다. 용인에는 나라를 되찾거나 지키기 위해 희생한 독립운동가와 참전용사들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현충시설’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시설이 용인중앙공원에 있는 ‘현충탑’과 터키군의 한국전 참전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터키군 참전기념비’이다.용인에 현충시설이 곳곳에 만들어진 것은 6·25전쟁 당시 이념의 대립으로 인한 민간인 희생과 남북한이 격렬한 전투를 벌인 현장이 용인 곳곳에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경제‧문화 등 각 부문에서 핵심 사업 중심지 역할난개발 이미지 벗고 위상에 걸맞은 도시 만들어야 용인시 위상이 달라졌다. 인구수는 이미 경기도 인구 서열은 수원에 이어 2위를 차지지만 고양시와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사실상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도시를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에 용인에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 중 하나인 유명 위락시설도 있다. 최근 원삼면에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지로 확정됨에 따라 도시규모 뿐 아니라 성장 잠재력까지 갖출 수 있게 됐다. 용인시 지속적인 성장에 위상
호국·보훈의 달 6월에 용인시 문화예술원에서는 용인시민 소장 문화재전과 독립운동 자료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이한응·민영환·오광선 등 용인에서 배출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들의 손때가 묻은 귀중한 유품과 생생한 역사자료를 만날 수 있는 귀중한 기회이다. 이 중 용인 태생의 민족시인이지만, 현재 화성시 동탄면에 자리한 문학관에서 보관 중인 홍사용의 유품도 만날 수 있다. 암울한 일제 침략 시기 눈물과 순우리말로 민족적 울분을 쏟아내며 저항한 시인 노작 홍사용이 태어난 곳은 오늘날 삼성반도체 공장이 자리한 용인 기흥구 농서동 151번지, 이
용인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는 한국 성리학의 시조이자 충신의 상징인 포은 정몽주 선생이 모셔져 있지만, 그 옆 종산에 독립운동가가 묻혀 있음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바로 포은의 24대 종손인 고철 정철수이다. 그는 1922년 포은 후손들의 수백 년 집성촌인 능원리에서 태어나 1930년 모현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이어 수원보통학교 2년을 다닌 후 1942년 현 고려대학교인 보성전문학교 상업과에 입학해 법학을 공부했다.재학 도중 결혼해 뱃속 아이까지 있었건만,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정철수와 같은 4385명의 청년들을 군대로 끌고
최근 10년 출생아 대비 다둥이 가정 비율은 비슷 국내 경제적 부흥시기에 이르기 직전인 1960~70년대 뿐 아니라 80년대까지만 해도 가족계획이라고 하면 자녀수를 줄이자는 것이었다. 가족계획은 국가경제와 맞불려 자녀수를 줄이면 나라가 부흥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자녀는 국가 차원에서 양육하고 있다. 그만큼 국가 경쟁력 핵심이기 때문이다.국가 차원에서 자녀 양육 자원에 나섰지만 출생수는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용인도 마찬가지다. 용인시청 홈페이지에 올라 온 통계자료를 보면 2007년 출생아수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으로 국호를 바꾼 임시정부는 4월 30일 오늘날의 국회에 해당하는 의정원 첫 회의를 가졌다. 용인 출신으로서 경기도를 대표한 임시의정원은 오의선(이명 희선, 于丹宇·禹丹宇)이다. 오의선은 1889년 용인군 원삼면 죽릉리 669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오희선과 우단우 등이 확인되는데 호적등본에는 오의선으로 나온다. 서울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30세의 늦은 나이에 제국의 심장부인 도쿄로 유학길을 떠났다. 1918~1920년에 작성된 조선총독부와 일본 내무성 보고자료인 『조선인개항』에 의하면, 오의선은
용인에서 매년 7명 이상 무연고 사망자 발견간소한 장례절차 후 평온의 숲에 영면하지만… 한 공간에 살면서 같이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을 식구라고 한다. 대체로 혈연적 관계에 있지만 대가족에서 핵가족을 넘어 단세포수준으로 쪼개지는 현실 속에서 사회적 관계로 맺어진 가족도 흔하다. 다각적인 관계도가 생겼지만 중요한 것은 점점 외로워지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전분세락(轉糞世樂)이라고 했나. 제 아무리 외로운 삶이라 해도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날 수 있는 분명 죽음보다는 좋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