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세권’이란 말의 정확한 뜻이 궁금해 검색해보니 그런 말이 사전에 정말 있었다. 숲세권(숲勢圈), 숩쎄꿘이라 발음하며 숲이나 산이 인접해 있어 자연 친화적이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는 주거 지역이라고 나온다.어떻게 이런 말이 국어사전에 있을까 자세히 보니 ‘우리말샘’이란 사전에 있는 것이고, 다시 우리말샘이 무엇일까 찾아보니 국립국어원이 운영하는 누리집으로 함께 만들고 모두 누리는 우리말 사전이라 한다.아하. 요즘 워낙 새롭게 만들어지는 말이 많다 보니 이렇게 집단지성의 힘을 모아 단어의 뜻을 정하는 그런 공개된 사전인 셈
한 달 전 계획한 여행 일정이 아이들 사정으로 남편과 단 둘이 가게 되었다. 둘 만의 여행이 처음이라 낯설고 모처럼의 여행이라 설렜다. 목적지는 경북 청송이다.삼월 마지막 날이었는데 용인에서 청송까지 벚꽃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경기도는 만개하고 있었고, 안동과 청송은 벌써 만개했다는 조금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산소까페 청송’ 청송 곳곳에 쓰여 있었다. 산소 가득한 숙소에 짐을 풀고 우리는 주왕산에 가기로 했다. 평일 오후라 사람이 거의 없었다. 주차하고 올라가는 그 길에도 벚꽃이 만개했다.입장료를 내고 주왕산에 오르니
날이 풀리니 슬슬 바빠지기 시작한다. 마당에선 드문드문 올라오고 있는 잔디 싹 사이로 보란 듯 민들레가 이미 꽃봉오리를 내밀고 있다.평소 같으면 바로 내쳐졌겠지만 따뜻한 햇볕을 쬐고 있노라니 이마저도 정겨워 보인다. 솔솔 부는 봄바람에 이웃의 밭에 뿌려진 거름 냄새가 요란하니 덩달아 올해에는 무얼 심을까 고민이 들었다.매번 그러하듯 고구마, 옥수수, 상추, 고추, 토마토, 대파 등을 으레 심을 것인지 아니면 심고 싶은 다른 것이 있는지 가족들에게 물어봤다.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것저것 키워보자 요구했던 아이들은 훌쩍 커버린 탓인지
전원마을로 이사한 지 벌써 7년째가 되어 간다. 처음 전원에 살기 시작할 때는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이사하고 몇 개월 동안 저녁 해가 지고 나면 집 앞 컴컴한 숲에서 멧돼지라도 나올까 봐 두려웠고, 마당 뒤편 어둑한 곳에서 누군가 숨어있을 것 같아서 현관문 밖에 물건을 가지러 갈 일이 생겨도 혼자서는 나가지 못했다.이사하고 얼마의 기간이 지난 어느 날, 손님 초대할 일이 생겨서 하루를 바쁘게 보내다 보니 2층 베란다에 널어놓은 빨래를 잊고 있었다. 어두운 밤이었지만, 밖에 나가 빨래를 걷으면서 바
스무살, 담배를 피워본 적이 있다. 호기심에, 어른들이 피우는 담배라는 것을 한번 물어봤다. 호기롭게 친구들과 담배를 한 개피씩 나눠 갖고 둘러앉아 불을 붙이곤 쭉 빨아들였다. 그 독한 냄새와 연기에 내 기관지는 심하게 요동치며 거부반응을 표현했고, 난 그것을 받아들여 그 이후로 절연했다.담배와의 두 번째 만남은 농활이라 칭하는 농촌봉사활동에서였다. 충북 보은의 농촌마을이었는데, 논농사보다 밭농사가 많았다. 주로 고추와 담배농사였다. 여름방학을 맞아 찾아간 농활에서 주로 빨갛게 잘 익은 고추 따기와 담배밭에 콩 심기가 주된 농사일이
성복천 대신 광교산으로 발길을 옮겼다. 산으로 향하는 첫걸음, 시선을 들면 보이는 큰나무가 있었다. 지금이 더 잘 눈에 띄는 이유가 큰 키와 함께 주렁주렁 달려 있는 수꽃차례 때문일 것이다.가까이 가서 보면 곧 길게 늘어뜨릴 수꽃차례와 잎눈 씨앗을 날리고 벌어져 있는 작은 솔방울, 마른 잎들이 나무 한 그루에 다 모여 있었다. 줄기는 매끈하지가 않았다. 쩍쩍 갈라진 수피도 그렇지만 군데군데 박힌 옹이와 맹아지는 그 삶이 그리 녹록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듯했다.물오리나무다. 산에 가보면 심심치 않게 보이는 나무다. 수꽃차례 사진을 찍고
길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다. 머릿속이 텅 비고 멍하다. ‘무엇을 어떻게 할까?’ 갈피를 잡을 수도, 주제로 삼을 거리조차 떠올리기도 힘들다. 난감한 상황이라는 걸 인지하고 왜 그런지 이것저것 핑곗거리를 찾아보지만 소용없다. 게으름이 발목을 잡는구나.유난히 여느 해보다 눈도 많이 내리고 추웠던 지난겨울, 어느 날은 눈이 많이 와서, 어떤 날은 날이 너무 추워서, 또 어떤 날은 너무 피곤해서, 바빠서 등등 집 밖을 안 나갈 궁리를 찾았고 그런 궁리는 잘도 찾아졌다.무언가 할 거리를 찾는 부지런한 남편도 지난 연말부터 바빠진 회사 일에
2015년, 남편이 정년퇴임을 하고 그 이듬해에 처인구 원삼면에 작은 전원주택을 지어서 이사했다. 두 남매를 결혼시키고 할 일을 다 했다는 홀가분함도 있었지만, 일 년이면 몇 번씩 돌아오는 제사와 집안 대소사를 쫓아다니다 보니 많이 지쳐 있었다.마음을 편히 쉬게 할 쉼터가 필요했기에 우리 부부는 도시의 편안한 생활을 뒤로하고 손이 많이 가는 전원생활을 선택하게 되었다.200여 평 되는 대지에 집과 잔디밭을 작게 만들고, 나머지는 텃밭을 만들어서 봄부터 가을까지 고추며 배추, 쌈채류, 토마토, 오이, 호박 등 20여 가지 채소들을 심
어렸을 때 다시 태어난다면 새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날개를 쭉 펼치고 거칠 것 없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는 자유의 상징 같았다.저렇게 맘껏 날아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그런가, 어른이 된 지금도 새가 좋다. 다른 동물들에게선 예외가 있는 호불호가 새에게는 없다. 그저 모든 새가 좋다. 흔한 참새도 귀엽고, 시끄러운 직박구리도 반갑고, 거대한 날개를 가진 말똥가리는 사랑한다.이렇게 새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협동조합 문화와함께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강사로 참여해 용담호수의 새 이
봄날 같던 날씨는 어디로 사라지고 한파가 며칠째 기승이다. 산도 강도 길도 어느 곳 하나 얼어붙지 않은 곳이 없다. 거의 매일 걷던 성복천도 추위로 며칠 동안 못가고 있다.그러다 문득 사진같이 각인된 올 겨울 성복천의 모습이 떠올랐다. 봄에 걸쳐 여름까지 성복천은 흰뺨검둥오리의 산란과 새끼 키우는 모습에 사람들은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올 겨울 성복천에는 백로들이 사람들의 걸음을 멈추고 휴대폰을 들게 했다.성복천에 항상 머무르는 작은 백로인 쇠백로는 그렇게 무리 지어 생활하지 않았는데, 이 백로는 여러 마리가 무리 지어 생활
취미가 목공인 남편을 둔 덕에 집에 있는 소소한 가구들은 대부분 남편의 작품들이다. ‘뭐가 필요하다’ 운만 떼면 바로 만들 궁리부터 한다.직접 디자인하고 나무를 구하고, 시간 나는대로 틈틈이 만들다 보니 긴 시간이 걸리는 턱에 만들어 달라고 말하길 주저하고 마음 한구석에 고이 접어둘 때도 많다.그러다가 몇 년 전에 정말 마음에 드는 의자를 발견하고 넌지시 의자 만들기를 권하니 품이 너무 많이 들고, 만들고 난 이후 만족감에 대해 장담하지 못해 망설여진다는 이야길 들었다.그러고 보니 식탁은 크기만 클 뿐 들어가는 나무 조각 개수가 1
마을 길을 돌다 보니 옆에서 후두둑 후두둑 소리가 났다. 길을 따라 있는 작은 관목 사이, 관목들을 덮고 있는 환삼덩굴이나 칡의 다 낡아빠진 거친 갈색 잎 사이에서 뭔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들이 있었다. 멈춰서 보니 작은 새들이었다. 우리가 가장 흔하게 얘기하는 참새였다.아기시절부터 아마 새 이름 중에 가장 먼저 알게 되는 새가 바로 참새일 것이다. 구구단 공식처럼 ‘참새 짹짹’이 정석이다. 참새를 몰라도 이름은 알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가까운 새, 그 흔한 참새 얘기를 해보려 한다.참새는 우리나라 전역에 사는 대표적인
1633년 6월 22일 이탈리아 로마의 산타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에서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다. 무릎을 꿇고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피고인에게 재판관은 유죄를 선고하고 선고문을 낭독하게 했다. 피고는 괴로운 표정으로 선고문을 낭독했다.“나는 이단, 즉 태양이 우주에 중심에 있고 움직일 수 없으며 지구가 그 중심에 있지 않으며 태양이 움직인다고 주장하고 믿었다는 강력하게 의심되는 판단을 받았습니다. (중략) 앞으로도 이단의 의혹을 받을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절대로 말이나 글로 주장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그래도 지구는
2014년 개인 블로그를 통해서 시인들의 시를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시를 공부하자는 의미로 시작했지만, 이 작업이 오래 유지되면서 시인들에게 중요한 블로그로 발전했습니다.블로그를 만들고 운영하면서 세웠던 원칙이 있다면, 내가 샀거나 선물 받았던 시집 위주로 소개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다양한 시들을 소개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시집을 구매하게 되었고, 그것이 쌓이니 꽤 많은 양이 되었습니다.사실 서재에 얼마나 많은 시집이 있는지는 모릅니다. 마음먹고 세려면 셀 수 있겠지만, 굳이 얼마나 많은지 알 필요는 없어서 대략 짐
아침부터 눈이 내렸다. 얼마 전 내린 눈은 황사를 쓸고 내려와서 많은 차에 폭탄을 터트렸다. 다행히도 이번 눈은 보이는 데로 하얀 눈이었다. 한파가 아니라 눈은 오후 동안 많이 녹았다.숲에선 눈이 온 뒤, 녹은 눈이 비처럼 다시 한번 내렸다. 숲엔 안개가 낀 듯 눈과 비가 함께 섞였다. 아이들은 눈썰매 타기에 적당한 곳을 찾아 떠돌기도 하고, 눈싸움을 하거나 눈사람을 만들었다. 얼마 전 유행하던 눈오리가 곳곳에 있기도 했다.필자 고향은 눈이 많이 내리는 동해안에 있다. 어린 시절 겨울에는 항상 내복, 모자, 장갑과 부츠가 빠지지 않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17년 약 7000명이었던 국내 췌장암 환자는 2019년 8000명 이상을 기록하며 수년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미국 내 암 환자 예측에서도 췌장암은 2030년경 유방암, 전립선암, 대장암을 제치고 암 관련 사망 순위 2위로 올라설 것으로 예측되어, 서구화된 한국의 암 지표를 고려할 때 국내 췌장암 발병률 또한 상승이 예측된다.췌장암은 인슐린과 소화효소를 분비하는 기관인 췌장에서 발생하는 암종으로 ‘신경내분비세포암’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일반적으로 췌장암은 가장 흔한 ‘췌장선암’을 가리키며 예후가 매우
“어떻게 이런 걸 차리셨어요?”위 질문은 ‘카페 드 바로크’에서 내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이런 거’라고 불리는 ‘복합문화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전망이 좋다며 호기롭게 4층에 차렸지만 역시 카페는 1층이 진리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다.이곳에서 내가 하는 일은 음료 제조, 디저트 제조, 공연 기획, 악기 수업, 독서 모임, 피아노 연주 등이다. 많은 일을 하는 것 같지만 대부분 독서와 연습으로 시간을 보내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손님이 없어서! 손님을 기다리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나의 하루 중 가장 많은
1916년 미국의 마가렛 생어는 계획되지 않은 임신으로 많은 자녀를 가진 가족들의 어려움을 목격했다. 몇몇 가족은 10명이 넘는 자녀를 돌보면서 생계를 꾸려가야 했다.특히 자리를 잡지 못한 이민 노동자들에게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중세 기독교 문화로 피임과 낙태를 죄악시 여기는 문화로 가족계획 방법을 홍보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마가렛 생어는 여성들을 상담하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30일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다.그러나 생어의 투옥은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피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면서 의료계에서 피임약을 개발하는 데
며칠 춥던 날씨가 따뜻해지고 겨울 숲에 가기 좋은 날이다. 친구들과 만날 생각에 들떠 조금 일찍 숲으로 출발했다. 도착한 숲은 조용했다.부스럭하는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그러다 햇살이 비치는 숲 가장자리 다른 나무를 폭 감싸 자라면서 유독 예쁜 씨앗을 한가득 달고 겨울을 보내는 풀인 듯 나무인 나무가 보였다. 사위질빵이다.사위질빵은 쌍떡잎식물 미나리아재비목 미나리아재비과 식물로 산과 들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마주나고 3장의 작은 잎이 나온 겹잎이며, 잎자루가 긴 잎은 볼수록 참 예쁘고 귀엽다.꽃은 7~8월에 흰색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마음이 분주하다. 마당 꽃나무들은 겨울 채비를 하지도 못한 채 추위를 맞아 맘이 바빠졌다. 급한 마음에 종이상자로 옷을 입혀준 뒤, 떨어진 낙엽을 긁어모아 임시방편으로 보온을 해주었다.조금의 수고와 노력을 보태어 동네 논에서 볏짚을 모아 잘 감싸면 되는데, 게으름에 그마저도 놓쳤으니 결국 돈을 들여 보온재를 구입했다. 주말에 다 못한 나무들 보온을 해줘야겠다.마당에선 식물들의 겨울 준비로 신경 쓰는 동안 집안에선 바닥난방과 더불어 따뜻한 불을 쬐며 본격적인 겨울 난방을 시작했다. 단독주택이라 아파트보다 추운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