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목공인 남편을 둔 덕에 집에 있는 소소한 가구들은 대부분 남편의 작품들이다. ‘뭐가 필요하다’ 운만 떼면 바로 만들 궁리부터 한다.직접 디자인하고 나무를 구하고, 시간 나는대로 틈틈이 만들다 보니 긴 시간이 걸리는 턱에 만들어 달라고 말하길 주저하고 마음 한구석에 고이 접어둘 때도 많다.그러다가 몇 년 전에 정말 마음에 드는 의자를 발견하고 넌지시 의자 만들기를 권하니 품이 너무 많이 들고, 만들고 난 이후 만족감에 대해 장담하지 못해 망설여진다는 이야길 들었다.그러고 보니 식탁은 크기만 클 뿐 들어가는 나무 조각 개수가 1
마을 길을 돌다 보니 옆에서 후두둑 후두둑 소리가 났다. 길을 따라 있는 작은 관목 사이, 관목들을 덮고 있는 환삼덩굴이나 칡의 다 낡아빠진 거친 갈색 잎 사이에서 뭔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들이 있었다. 멈춰서 보니 작은 새들이었다. 우리가 가장 흔하게 얘기하는 참새였다.아기시절부터 아마 새 이름 중에 가장 먼저 알게 되는 새가 바로 참새일 것이다. 구구단 공식처럼 ‘참새 짹짹’이 정석이다. 참새를 몰라도 이름은 알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가까운 새, 그 흔한 참새 얘기를 해보려 한다.참새는 우리나라 전역에 사는 대표적인
아침부터 눈이 내렸다. 얼마 전 내린 눈은 황사를 쓸고 내려와서 많은 차에 폭탄을 터트렸다. 다행히도 이번 눈은 보이는 데로 하얀 눈이었다. 한파가 아니라 눈은 오후 동안 많이 녹았다.숲에선 눈이 온 뒤, 녹은 눈이 비처럼 다시 한번 내렸다. 숲엔 안개가 낀 듯 눈과 비가 함께 섞였다. 아이들은 눈썰매 타기에 적당한 곳을 찾아 떠돌기도 하고, 눈싸움을 하거나 눈사람을 만들었다. 얼마 전 유행하던 눈오리가 곳곳에 있기도 했다.필자 고향은 눈이 많이 내리는 동해안에 있다. 어린 시절 겨울에는 항상 내복, 모자, 장갑과 부츠가 빠지지 않
며칠 춥던 날씨가 따뜻해지고 겨울 숲에 가기 좋은 날이다. 친구들과 만날 생각에 들떠 조금 일찍 숲으로 출발했다. 도착한 숲은 조용했다.부스럭하는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그러다 햇살이 비치는 숲 가장자리 다른 나무를 폭 감싸 자라면서 유독 예쁜 씨앗을 한가득 달고 겨울을 보내는 풀인 듯 나무인 나무가 보였다. 사위질빵이다.사위질빵은 쌍떡잎식물 미나리아재비목 미나리아재비과 식물로 산과 들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마주나고 3장의 작은 잎이 나온 겹잎이며, 잎자루가 긴 잎은 볼수록 참 예쁘고 귀엽다.꽃은 7~8월에 흰색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마음이 분주하다. 마당 꽃나무들은 겨울 채비를 하지도 못한 채 추위를 맞아 맘이 바빠졌다. 급한 마음에 종이상자로 옷을 입혀준 뒤, 떨어진 낙엽을 긁어모아 임시방편으로 보온을 해주었다.조금의 수고와 노력을 보태어 동네 논에서 볏짚을 모아 잘 감싸면 되는데, 게으름에 그마저도 놓쳤으니 결국 돈을 들여 보온재를 구입했다. 주말에 다 못한 나무들 보온을 해줘야겠다.마당에선 식물들의 겨울 준비로 신경 쓰는 동안 집안에선 바닥난방과 더불어 따뜻한 불을 쬐며 본격적인 겨울 난방을 시작했다. 단독주택이라 아파트보다 추운 점
11월 말이 12월 초로 바뀌며 겨울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날씨앱에서 갑작스런 기온 하강에 어제보다 섭씨 10도가 넘게 떨어졌다고 선명한 마이너스 숫자를 전한다. 추위를 유난히 타기에 이제 밖에 나가기가 두려워진다.특히 온도 차에 민감해 따듯한 실내에 있다가 차가운 실외로 나가면 어깨가 안으로 접히고, 몸이 쪼그라들어 갈비뼈가 부러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심하게 추위를 느낀다. 그래서 따듯한 겨울나기에 신경이 많이 쓰인다.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이름을 부를 때 볼게 생겨 봄, 열매가 열려 여름, 색을 갈아 가을이라는데,
우리 동네 뒷산으로 올라가는 길 아래에는 잘 정비된 공원이 있다. 여러 가지 식물이 소복소복 있고, 계절을 고려해 구성한 듯 언제나 보기 좋다. 지금도 억새와 단풍 그리고 상록수가 있어 아기자기하고 참 좋다. 아직은 조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조금 작게 느껴지지만, 식물들이 나이 들고 무성해지면 정말 멋진 공원이 될 것 같다.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숲을 찾아 들어온다. 각자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다. 혼자 열심히 걷는 사람, 반려견을 챙기며 산책하는 사람, 짝을 지어 열심히 수다를 떠는 사람, 함께 발을 맞춰 걷는 노부부, 숲을
파란 하늘과 그에 어울리듯 단풍이 절정이다. 공기의 느낌이 달라져 공기마저 차분해진 늦가을의 하루다. 아이들과 마지막 수업을 하러 가는 날이었다. 주제를 무엇으로 할지, 수업내용을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이 많았다.이번 수업은 ‘생태계 평형’이었다. 주제가 참 어렵다.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생태계부터 정의해 보기로 했다. 생태계는 생물군집과 그 군집이 접한 비생물 환경(물리적, 화학적 환경)이 유기적인 집합을 이룬 것을 말한다.그럼 ‘먹이사슬’ 개념이 나온다. 먹이사슬은 생명체 내에서 먹고 먹히는 관계를 일차원적으로
필자는 요즘 집에선 냥집사로, 출근하면 식물 집사로 변신한다. 분주히 아침을 준비하고 남편 출근과 아이 등교를 마치고 나면 고양이와 개밥을 챙겨주고, 부랴부랴 강아지 산책 준비를 하며 짧고 굵은 산책을 정신없이 다녀온다.낮 동안 혼자 있을 ‘녀석’이 안쓰럽고 미안해 나름대로 정해놓은 생활 습관이다. 그렇게 집에서 정신없는 2시간을 보내고 출근해 식물 집사로 변신하는 순간, 밤사이 공간을 가득 메운 식물들의 향기가 필자를 반겨준다. 아이가 엄마의 손길을 기다리듯 식물들이 필자의 손길을 기다리는 듯한 분위기는 묘한 기분과 만족감을 선사
아직도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언제까지 눈으로만 보라고 할 수 없었다. 생태체험을 하며 직접 만져보고 느껴봐야 더 기억에 남고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낯선 인간의 손길이 좋을 리 없는, 오히려 큰 두려움을 느낄 자연의 생명들에겐 너무나 미안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자고 했다. 그래서 잘 만지는 방법으로 생명을 다치게 하지 않고 스트레스를 덜 주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도롱뇽, 개구리, 지렁이, 달팽이는 피부로 호흡하기에 몸에서 끈적한 액체를 내뿜어 항상 촉촉하게 젖어있다. 그래야 피부세포도 보호하고 공기 중 산소가 피부를
올해 단풍철이 막바지다. 봄에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도 볼거리이지만 바람에 눈처럼 날리는 낙엽을 보는 것과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는 것도 너무 좋다. ‘주변에 단풍 구경하기 좋은 곳이 어디더라’ 이쯤 되면 다시 찾게 된다.사람 습관이 만들어지는 데 3개월 걸린다고 했다. 그런데 무려 3년 동안 마스크를 쓰고 있었으니 이제 마스크가 몸의 일부로 느껴진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답답한 줄 모른다.야외에서 산책을 하면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다. ‘아차!’ 하며 마스크를 내리자 가을이 몸으로 스며든다. 마스크가 없었다면 소중하게 느끼지 못했을
10월, 벼는 익어가고 주차장 은행나무에서 은행이 툭툭 떨어져 특유의 향이 진동했다. 밟으면 종일 고생일 터였다.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그네를 타고, 다른 무리는 패드로 뭔가를 신나게 촬영하고 있었다. 비눗방울 놀이를 하는 유치원생들도 보였다. 한 발 떨어진 학교는 참 평화로웠다.5학년 친구들과 숲 체험이 있었다. 일찍 와서 수업에 쓸 준비물을 확인하고 수업할 숲을 한 바퀴 둘러봤다. 학교 뒤 풀밭에는 메뚜기들이 풀쩍풀쩍 뛰어 깜짝 놀랐다. 놀란 가슴을 안고 가면 묘지에 잠자리 떼가 유유히 하늘을 날아다니고, 밤송이는 떨어져 알밤을
1년 365일 중에 몇 번 없는 쾌청한 날이었다. 상쾌한 공기가 콧속을 파고들었다. 하늘에 뭉게구름이 피어올랐다. 적당히 서늘한 바람과 쪽빛 같은 하늘빛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집에만 있기엔 날씨가 너무 아름다웠다.서둘러 산책 채비를 했다. 집을 나서며 콩과 팥이 잘 자라고 있는지 살펴봤다.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무성해진 고구마를 캐야 하는데 언제 캐야 하나 고민하던 중 옆집 마당에 있는 대추나무에 눈길이 갔다.지금이 아니면 먹기 힘든 사과대추가 눈앞에 보이니 고민은 잠시 제쳐두었다. 손이 닿는 부분은 사람들이 오며 가며 따먹
따뜻하게 챙겨입고 숲으로 간다. 쌀쌀한 기운에 손이 시리듯 차갑다. 비가 시원하게 오고 난 후 하루가 다르게 추워진다. 이슬이 차가워지는 한로(寒露) 즈음이라 그런가 보다. 매일 기온이 조금씩 떨어지는 것을 언제부터 피부로 느꼈을까? 생각해보니,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부터인 것 같다.자연을 공부하는 사람이었지만 계절에 민감해진 것은 자연과 가까이에서 공부하던 때가 아니었다. 그보다 한참 지나 자연을 그리워하면서부터인 것 같다.이렇게 세월이 지나고 나니 계절은 너무도 빠르게 지나감을 느낀다. 요즘은 계절을 탈 시간도 없다. 아이들
오전에 어린이집 아이들과 숲체험 나들이를 갔다. 숲체험이면 숲체험이지 굳이 나들이라고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숲으로 가는 체험이 아니라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화단에서 하는 생태체험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이들에겐 건물 안에 있다가 밖으로 나가는 것만으로도 신나는 나들이였다.화단을 따라가며 아이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무엇을 함께 볼까?’ 유심히 보았다. 그러다 눈에 띈 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스트로브잣나무 열매였다.“이게 뭘까?” “솔방울이요”“누구한테서 떨어진 걸까?” “소나무요”아이들이 소나무와 잣
도대체 여름은 언제 가나 싶게 무덥던 날씨가 갑자기 돌변해 가을옷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추위를 맞이하고 있다. 추위에 민감한 남편은 부랴부랴 긴 소매 옷에 가디건까지 걸치고 출근한다. 날이 추워졌으니 바로 자동차로 직행할법한데 현관을 나서자마자 마당 한쪽 텃밭으로 발걸음을 향했다.초여름에 씨앗을 직접 심어 지금은 한참 열매를 맺고 있는 팥을 둘러보며 행여 추운 날씨로 잘 자라지 못할까 걱정스러운 눈빛이었다. 생전 처음 심어본 농작물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팥을 워낙 좋아하는 탓에 올겨울엔 직접 심은 팥으로 만든 팥칼국수, 시루떡,
9월의 수업 주제는 마디풀과 식물들이다. 여뀌, 개여뀌, 고마리, 소리쟁이, 마디풀…. 사진을 인쇄하고 풀에 대해 공부하고 숲으로 갔다. 그 흔하디흔한 개여뀌는 그날따라 왜 그리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대신 파란 꽃잎이 항상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닭의장풀이 지천이었다.닭의장풀은 닭의장풀과의 한해살이풀이다. 길가나 풀밭, 냇가 습지에서 흔히 자란다. 줄기 밑 부분은 옆으로 비스듬히 자라고, 땅을 기고 마디에서 뿌리를 내리며 많은 가지로 갈라진다.줄기 하나를 잘라내면 잘라낸 줄기에서 다시 뿌리가 나올 정도로 번식력이 강하다. 꽃은 7
9월, 가을에 접어들었다. 공기냄새가 달라졌다. 낙엽 냄새가 섞인 시원한 향기가 났다. 구름은 높고 하늘은 더 높다. 에어컨은 이제 커버를 씌우고 리모컨도 잘 치워두었다. 가을을 알리는 무당거미와 버섯을 여기저기에서 자주 본다.벌초하러 다녀온 시골 화단엔 맨드라미가 한창이었다. 하지만 그 옆 텃밭에 고추 일부는 탄저병에 걸려서 시들해 고춧대만 남아 있었다. 8월 비가 자주 내린 것이 원인이었다.시골에 다녀오니 필자의 어릴 때가 생각난다. 유아기 때 찍은 어느 사진에선 마당에 멍석을 깔아 빨간 고추를 말리고, 화단에는 맨드라미와 채송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잠깐 틈이 생길 때, 무엇을 할까 하다가 노트북을 열고 내 파일상자를 뒤진다. 평소엔 수많은 사진과 파일들을 딴 곳에 흘리지 않고 이 상자 속에 쌓아두고 모아 놓는 것에 만족하다가 이렇게 틈틈이 시간이 날 때면 다시 하나하나 해당 폴더로 분리하는 작업을 한다.며칠 전 사진 정리를 하다가 동영상 하나가 나왔다. 10초 정도 되는 아주 짧은 영상이었는데, 예전에 처인구 이동읍 천리에 있는 신원저수지 둘레길에 갔다가 찍은 왕지네 사진이었다.지네 영상을 보고, 내친김에 자막도 깔고 편집도 해서 유튜브 채널에 올
어딘가에서 씨가 날아왔는지 작년엔 보이지 않던 구릿대가 지난봄부터 마당 끝자락에서 자라고 있었다. 키가 2m 가까이 자라는 잡초(필자 기준엔)인지라 더 자라기 전에 뽑을까 말까 고민을 엄청 했더랬다.그러다 문득 몇 년 전 아이들과 수업하던 중 구릿대에서 발견한 산호랑나비 애벌레 생각이 나서 일단 뽑지 않고 살려두었다. 거기에다 구릿대에겐 운 좋게도, 필자에게는 우울하게도, 봄 끝자락에 다리를 다쳐 근 두 달 동안 마당 근처는 얼씬도 하지 못했다.소파에 누워 풀이 쑥쑥 자라는 마당을 한없이 쳐다보기만 하는 게 올 여름 필자의 일상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