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인구 김량장동과 남동이 걸쳐있는 처인구 도심의 남쪽 모습이다.1986년 당시 용인문화원 주최로 용구문화제가 처음 열렸다. 그 장소가 바로 터미널 부지 공터다. 용인문화원은 당시 용구문화(龍丘文化)라는 계간지 발행과 함께 향토전통축제 발굴에 나서 ‘용구’문화제를 열었다.그네뛰기, 두레경연, 씨름대회 등 주로 민속중심의 내용으로 채워졌다. 오늘날 포은문화제와 처인성 문화제가 그 후신이라 할 수 있다.당시만 해도 용인사거리 가까이에 공용버스터미널이 있었는데 가까운 장소로 이전을 준비 중이었던 공터다. 37년이 지난 그 지역은 여전히 터
수지의 변화는 매우 극적이다. 대한민국 난개발사에 주로 등장하는 지역적 사례가 되기도 한다. 35년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사진 속 1988년은 수지면 지역이다. 현 수지구 전체와 다를 바 없다. 그 직전인 1983년엔 이의리, 하리가 수원에 편입돼 면적이 줄었다. 1996년 용인군이 시로 승격하자 면에서 읍이 됐다. 곧이어 2001년엔 수지출장소로 다시 승격되면서 리(里)가 동(洞)으로 바뀌었다. 2005년 수지구청이 됐다.1914년 수지면에서 읍까지 82년이 걸렸다. 반면 읍에서 구까지 승격하는 데 단 9년이면 족했다. 19
처인구 이동읍이 다시 뜨겁다. 이동읍과 남사읍에 걸쳐 국가산단 계획이 전격 발표되면서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됐다.이동읍 덕성리는 이미 용인테크노벨리(덕성1산단) 조성이 마무리된 가운데 2산단 사업 본격 추진을 눈앞에 두고 있다. 덕성리는 원덕성리, 금현, 삼배울, 신창 등 4개 마을이 있다. 이미 마을 두 곳은 원형이 사라져 나머지 동네도 온전할 거로 믿는 이는 드물다.입장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공동체 해체란 해당지역 주민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다. 오랫동안 누대에 걸쳐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온 터전이기 때문이다.
이태 만에 사진으로 만나는 마을 모습이다. 멋진 농경지와 안온했던 동네가 사라졌다. 누대에 걸쳐 살아온 주민들 입장에선 가슴이 미어질 듯하다.처인구 원삼면 독성리는 하사(1리), 잿말(2리), 야광(3리)이 있는데 온전히 남는 동네는 ‘야광’마을뿐이다. 잿말은 전체가 SK산단 사업부지에 포함됐다.이미 가옥은 전부 철거를 한 상태로 마을에 사는 이는 없다. 새로운 삶터를 찾아 곳곳으로 흩어졌다. 125만평에 달하는 SK반도체클러스터 부지 터파기 공사가 이미 본격화됐다.그 높던 구봉산 자락 산줄기가 어느새 절반은 사라져 버렸다. 그간
처인구 역북동 명지대역에서 명지대 사거리를 연결도로 220m 길은 도시계획도로다. 이미 오래전부터 확장 설계가 돼 있었지만 10년 남짓 걸린 듯하다.고속도로, 국도 등과는 달리 용인시 예산이 투입되는 도시계획도로는 대개 설계 후 오래 걸리는 게 현실이다.예산이 걸림돌이다. 아직도 처인구 경전철 역사 주변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곳이 많다. 역세권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다.
신갈천을 사이에 두고 기흥구 상갈동과 신갈동이 마주한다. 한때 신갈의 번성을 상징했던 업소와 건물을 통해서도 비교가 되곤 한다.박승식(60) 씨가 운영했던 은 전통 한식을 전문으로 하는 신갈지역의 대표 식당이었다. 한국민속촌과 경기도박물관 등 주로 외국 또는 외부에서 오는 손님들이 많이 찾던 곳이다. 그러나 지난해 문을 닫고 철거됐다. 그 자리엔 고층 복합건물이 한창 공사 중이다.상호 ‘박카스’ 옥상간판이 크게 세워져 있는 빌딩은 로 불렸다. 한 시절 규모 있는 행사나 집회는 대부분 이곳에서 치러질 정도였다. 뷔
기흥구 상갈동에서 바라본 신갈IC 주변이다. 교통망의 변화를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현장이기도 하다. 왼편에 보이는 흥덕동 두진아파트(1996년)와 신일아파트(1998년) 준공시점으로 봐선 1990년대 말 사진으로 보인다.43번 국도와 경부고속도로 신갈(수원)IC가 연결되는 간결한 도로망이 매우 복잡한 구조로 바뀌었다. 특히 도로 위로 도로가 층층이 올라가는 ‘4중 도로’는 용인에서 유일하다. 아마 전국적으로도 흔치 않을까 싶다.멀리 수원방향으로 시선을 옮겨보면 돌고개(석현) 넘어 흥덕동 신도시가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 신갈동 상미마
용인YMCA 수지녹색가게 주관으로 16일 구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사랑의 교복 나눔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새 학기 교복 구입비에 대한 가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진행됐다. 용인YMCA는 2010년부터 기증받은 교복을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행사를 진행해왔다. 코로나19 여파로 잠시 중단됐다가 이날 4년 만에 재개한 것이다. 녹색가게는 이날 행사를 위해 지난 1일부터 학생과 학부모 대상으로 교복 기증 및 위탁 접수를 받아 상의, 하의, 외투, 조끼 등 1630점의 중고 교복을 준비했다.기증받은 교복은 세탁과 수선을 거쳐 1000
용인성당의 출발은 양지본당 용인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면서부터다. 1956년 건립기성회가 조직돼 처인구 김량장동 133-28번지 부지 약 370평을 매입했다.당시엔 제재소와 목욕탕이 있었다. 1957년 12월 25일 새로 지은 성당에서 첫 성탄미사를 봉헌하는 것으로 김량장 시대를 알렸다.그 당시 김량장을 보여주는 여러 사진을 보면 첨탑이 있는 고딕양식의 용인성당이 가장 돋보였다. 용인의 랜드마크 격이었다. 건축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자랑스러운 용인성당은 아쉽게도 1982년 6월 24일 헐렸다. 3년 후 김량장동 64번지 현재 위치로 옮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일대에서 추진되고 있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에 편입된 토지와 건물 등에 대한 보상이 일부를 제외하고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 올해 상반기 중 본격적인 토목공사가 시작될 전망이다.사진은 소유권이 확보된 토지에 대한 벌목공사와 가설물 설치 등의 공사가 한창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 조성공사 현장 전경.
기흥이란 지명은 1914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만들어졌다. 기곡면과 구흥면을 합치고, 지내면 일부인 영통리가 포함돼 기흥면이라 했다.1985년 10월 1일 읍으로 승격했으니 71년 만이다. 오늘날 그 자리는 기흥구 신갈동주민자치센터와 행정복지센터로 쓰이고 있다.기곡면은 보라·공세·지곡·고매동 지역으로 행정소재지가 있던 구성을 기준으로 남쪽 관문에 해당한다. 구흥은 구갈·신갈동 지역으로 처인구 쪽에 가까운 지역이다. 아마도 기흥의 중흥기는 읍으로 승격했던 1980년대 중반부터가 아닐까 싶다.시의원을 지낸 이양구 초대 기흥
용인 행정지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비상하는 독수리 모형을 어렵지 않게 연상할 수 있다.겨울 추위가 한창인 이달 초 처인구 백암면 가창리 한 들판에 독수리 10여 마리가 무리를 지어 주위를 살피고 있다. 독수리는 용맹 그 자체다. 최상위 포식자라고 하지만 당장 주변서 먹이를 찾기 쉽지 않아, 일부 시민은 ‘육계’를 전해줬지만 아직은 사람과 거리를 두고 있단다.3일 독수리에게 먹이 주기에 나선 양춘모 씨는 “아직은 거리를 두고 있어 먹이를 먹지 않았다. 조만간 다시 찾아 시도할 것”이라며 “2023년 용인시민들도 독수리처럼 용맹하게 비상
용인 기흥구 흥덕동(영덕동)은 수원시와 맞닿아있다. 행정구역상 경계마을이지만 사실상 영통생활권역이라 해도 무방하다.지리적으로 광교테크노밸리(약 335만 평)와 영통신도시(약 100만 평) 사이에 있는 65만 평 규모의 신도시로 조성됐다. 조성 당시 ‘유비쿼터스 디지털 시범도시’로 널리 홍보됐던 것이 생각난다.지금이야 수원시와 용인시가 나란히 ‘특례시’라는 동등한 위상이지만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수원시의 뜻대로 떼어주어야 했다. 이의동이 대표적인데 1983년 2월12일 용인군 수지면 이의리, 하리가 수원시에 편입됐다.《이의동지》(
도시화는 필연 자연의 영역을 인공구조물로 채워가는 과정이기도 하다.처인구 김량장동 은덕골에선 더 이상 양계장, 포도밭, 약수터, 텃밭, 지천에 널린 꽃들을 보기 어렵다. 한 치의 땅도 놓아둘 수 없도록 인심은 흘러간다.은덕골은 예전에 북구로 통했다. 김량장을 중심으로 방위각에 따른 동서남북 개념이다. 은덕골은 돌봉산에 오르는 길목이다. 지대가 높은 산동네다. 반대편 서구는 노고봉이 우뚝 버티고 있다. 김량장동은 돌봉산과 노고봉 사이의 분지형 입지다.그러나 은덕골에서 바라본 카메라 앵글엔 노고봉이 점차 가려진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철도선로의 궤도 폭은 1435㎜라고 한다. 협궤열차는 일반선로의 그 절반으로 762mm이다. 이재규(1936~2021)선생 이 제공한 옛 사진을 보면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철로를 짚고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다.내복까지 드러낸 이 사진은 아마도 젊은 시절 다양한 포즈 중에도 압권이 아닐까싶다. 당시 선로 폭이 채 1미터가 안되니 가능했을 사진이다. 수여선은 협궤열차가 다니는 길이었다.1972년 폐선 후 선로를 걷어냈지만 옛 철길은 한동안 그대로 두었다. 기흥구 중리 초당곡부터 어정까지 대부분 남아있던 그 길은 주민들의 사랑을
지장실은 처인구 유방동에서 석성산(처인구 포곡읍) 자락 바로 아래 동네다. 용인12실의 하나로 불리는 곳이다.‘12실’은 전쟁의 화를 피할만한 은거지 12곳을 말한다. 보통 ‘피난꼬지’(피난곶이)라 하는데 지장실은 그만큼 외졌으며 깊은 골짜기 마을이란 뜻이다.밀양 박씨가 터를 잡은 뒤로 400여 년 내려온 유서 깊은 동네다. 골짜기가 40여 개에 달할 정도로 산세가 험하다. 호랑이굴 전설도 전해지는 마을이다.사진을 찍은 2005년 12월 20일만 해도 뒤로는 석성산을 등지고 앞으론 농지가 펼쳐진 전형적인 농촌마을 모습이었다. 최근
2022년 한 해가 저물었다.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제법 연말 분위기도 난다. 코로나19에 가로막힌 사회적 거리두기가 상당히 완화된 영향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용인에서 한 해를 보낸 시민 저마다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을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365일 기억 속에 제법 많은 것들이 담겼을 것이며, 이는 새해를 새로운 마음으로 맞을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2022년 용인시는 특례시로 첫걸음을 내딛었다.1년 만에 큰 변화를 기대하는 것이야말로 ‘우물에서 숭늉 찾기’다. 하지만 시민 일상은 우물에서 숭늉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일 만큼 팍
용인하면 떠오르는 수식어 중에 급변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들이 많다.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지자체 가운데 손꼽히는 곳이 용인이기 때문이다.‘상전벽해’의 고장 용인 모습 중 용인시청 주변은 예외적이라 할 만큼 변화가 없다. 경전철이 생긴 것 외에 도로 확장과 몇 개의 건물이 새로 지어진 것뿐이다.이유야 대개 알고 있듯 역삼지역주택사업이 십 수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민간사업이라고는 하지만 용인특례시를 비롯한 공공영역이 손 놓고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대한민국 ‘10대도시’ 용인특례시 행정기관이
도로마다 관리주체가 다르다. 고속도로, 국도, 국지도는 교통부와 광역지자체가 관리한다. 반면 도시계획도로는 시가 도시계획 사업의 일환으로 건설하고 관리하는 도로다. “용인시 예산이 엄청난데 왜 이 모양이냐”고 여기저기서 말들을 한다. 나도 때론 거든다.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안타까운 현실이다. 용인시는 많은 예산이 도시기반시설을 개선하고 확충하는 데 쓰인다. 이미 도시화된 인근 지자체와는 처지와 발전단계가 다르다.가끔 기회가 있으면 용인시와 수원·성남시를 브릭스 5개국과 선진국의 차이라고 말하곤 한다. 용인시는 잠재력은 대단하나
올해 용인시 처인구 역삼동이 역북동과 삼가동으로 분리됐다. 용인의 대표적인 기관과 시설이 삼가동에 주소를 두게 됐다. 용인시청과 용인미르스타디움이다.예로부터 풍수에선 ‘땅에도 팔자가 있다’고 했다. 이를 예언지명(豫言地名)이라 한다. 삼가동도 ‘세거리’란 뜻인데 중부대로와 동백죽전대로가 만나는 지점이 삼가동이다.용인경전철 차량기지가 자리 잡아 말 그대로 ‘경전철 세거리’가 됐다. 최근엔 제2수도권외곽순환고속도로 ‘서용인IC’가 삼가동에 생겼다. 석성산과 부아산 연결 한남정맥을 경계로 물길도 갈리는 데 동남쪽으론 경안천 지류 금학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