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한창인 요즘, 주말이 되면 남편은 여느 때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대충 세수를 하고 별다른 말 없이 밖으로 나간다.수돗가에 앉아 쓱쓱 낫을 갈아 엄지손톱에 살짝 대보곤 쪼그려 앉아 마당과 집 주변에 있는 잡초를 베기 시작한다. 필자가 심어 놓은 꽃들 덕에 엔진 예초기를 사용하지 못해 힘들어도 손 낫을 쓸 수밖에 없으니 한편으론 미안한 마음이 든다.아침밥을 준비하는 와중에 남편의 손이 느려지는 것처럼 보이면 음료수를 챙겨 그늘로 부른다. 잠시 쉬는 동안 부부간 대화가 하루 중 처음으로 시작된다.아이들, 회사, 이웃 등 이런저런
풍성한 봄꽃 향연이 끝나면 무성한 잎 사이로 여름꽃이 피어난다. 6월부터 여름이었으니 이때 피는 대표적인 밤나무·모감주나무 꽃처럼 화려한 꽃, 사철나무·작살나무·수국 등 수수한 꽃이 무성한 잎에서 양분을 듬뿍 받아 양으로 승부한다.봄부터 여름에 걸쳐 피는 민들레, 씀바귀, 강아지풀도 피고 지는 모든 꽃을 살핀다면 그 양이 어마 어마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꽃이 피고 지는 줄 모르고 오늘도 바쁘게 보내고 있다.사철나무 꽃이 무성하다. 어쩌면 필자 눈에만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연한 노란색 꽃잎이 꽃잎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렵다.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작은 시골 마을에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이다. 거실 창 방충망에 뭔가 반짝하는 게 날아와 앉았다. 뭐지? 세상에, 반딧불이었다.아무리 시골 마을이지만 동네 한가운데 자리 잡은 필자 집에 찾아온 반딧불이가 너무나 반가웠다. 반딧불이를 처음 보는 필자는 신기해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이내 ‘포르르’하고 날아가 버렸다. 비록 한 마리였지만 ‘우리 동네에 반딧불이가 사는 구나’ 하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참 기뻤다. 그렇게 반딧불이와 첫 인연이 생겼다.시간이 흘러 2018년 원삼면의 한 체험농장에서
한낮 집 안은 살짝 덥다. 그런데 거실 창으로 밖을 내다보면 나무들이 몸을 살랑거린다. 아니 살랑거림이 아니다. 좀 더 힘 있게 흔들린다. 기분 좋은 바람이 초록의 나무를 기운차게 흔든다. 그 모습에 반한 나는 창을 열어 집 안으로 바람을 들인다.6월이 사람을 설레게 한다. 낮 동안 조금 더운 기운이 오히려 밤의 서늘함을 기대하게 하고, 초록 잎 사이사이로 지나다니는 바람이 나를 너무나 설레게 한다. 숲에서도 마찬가지다. 미세먼지 없는 맑은 날에 따가운 햇살이 그대로 내 피부에 와 닿는다.두껍게 바른 썬크림이 소용없어지는 햇빛 때문
이른 아침. 마당이 새소리로 시끄러웠다. 날이 따뜻해진 이후 땅속에서 올라오는 벌레들을 먹으려 아침마다 이런저런 새들이 놀러와 즐거운 소리를 냈다.식사하는 여느 때의 소리와 사뭇 달랐다. 무슨 일인가 궁금해 창밖을 보니 까치 한 마리가 때까치 여러 마리에게 쫓기면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보이지 않던 덩치 큰 녀석이 갑자기 나타나니 다른 새들이 먹이를 빼앗길까 시비를 걸어온 것 같았다.그 요란함에 놀란 덕인지, 얼마 전 필자 집 마당 벚나무 위에 나뭇가지를 하나하나 가져다가 둥지를 짓고 있던 까치가 더 이상 보이
필자는 매일 아침 남편과 산책한다. ‘성인병에는 걷기운동이 최고’라는 의사 선생님의 예방 차원의 권유도 있었지만, 동네 논둑 길 위 산책은 어린 시절 고향길을 걷는 듯해서 몇 년 동안 해오고 있다.이른 봄 들길에서 만난 풀꽃 중에는 추위를 지나자마자 부지런 떨며 씨앗을 만들었다. 일찍이 꽃대를 올려 노란 꽃잎이 바람 따라 하늘거렸던 뽀리뱅이는 애지중지 기른 씨앗을 작은 솜털로 감싸 안고 편히 살 곳으로 보내기 위해 노심초사 중인 듯했다.소리쟁이는 어느새 긴 꽃대 줄기에 씨앗을 주렁주렁 매달고 둑 옆에 전사처럼 서 있었다. 봄이 오면
‘숲세권’이란 말을 써가며 집 앞에 광교산 자랑을 한 지 두 주가 지나고 나서야 다시 광교산에 올랐다. 그동안 뭐가 바쁜지 바로 앞에 두고도 못 간 사이, 그렇게 도도하고 우아하게 피었던 철쭉은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져 버렸고, 초록의 짙어짐이 시간의 흐름을 말하고 있었다.대신 아까시나무 꽃이 진한 향을 내뿜으며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었다. 마침 전날까지 비가 왔기에 공기는 맑았고, 갓 피어난 아까시나무 꽃의 꿀은 너무나 달콤했다. 그 향기에 취해 숲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어느덧 가장 좋아하는 길에 접어들었다. 숨어있는 작은 보물인
지난달 원고에 쓸 벚나무 사진을 찍기 위해 마을을 돌아다닐 때 벚나무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 꽃이 개나리이다. 이미 그때도 봄 더위에 이르게 꽃을 피우고 남아있는 꽃이 많지 않았다.숲에는 아까시나무, 덜꿩나무, 노린재나무, 산사나무 등 흰 꽃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지금 계절에는 어떻게 된 일인지 노란 꽃을 찾아보기 힘들다.개나리는 물푸레나무과의 낙엽활엽목이다.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개나리는 중국과 일본에도 자생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개나리만큼 색이 아름답지도 않고 꽃도 성글다고 한다. 영어로 코리안 골든벨(Korean golde
첫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을 고대하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내년이면 성년을 바라보고 있다. 세상의 많은 엄마가 그렇듯이 처음 임신했을 때의 두려움과 설렘은 잊히지 않는 기억이다.임신 동안 아이가 태어나면 당장이라도 모성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막상 아이를 낳았을 때에는 몸이 너무 힘들어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흐르면서, 눈을 마주치고 새로운 경험을 공유하면서 모성이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를 낳았다고 바로 모성이 생긴 것이 아니라 아이를 돌보고 키우면서 그 감정 또한 커져 갔다.육아를
몹시도 추웠던 긴 겨울을 지내고, 촉촉하게 봄비가 내려서 인지 동네 한 바퀴 돌아 걷는 산책길에서 만난 봄 내음이 향기롭다. 어느 사이, 연두색으로 물들여 늘어뜨린 버드나무의 몸짓은 정겹기까지 하다.우리 집을 방문한 한 지인이 둘이 살기 적적하니 반려견이라도 키우면 좋겠다고 권했다. 그동안 울안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들을 떠올리고는 우리에겐 무한한 사랑을 주고받는 반려 목들이 있다고 하자, 그 지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집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가 많다. 6년 동안 아침저녁으로 눈인사를 주고받고 쓰담쓰담하며 정도 들었
‘숲세권’이란 말의 정확한 뜻이 궁금해 검색해보니 그런 말이 사전에 정말 있었다. 숲세권(숲勢圈), 숩쎄꿘이라 발음하며 숲이나 산이 인접해 있어 자연 친화적이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는 주거 지역이라고 나온다.어떻게 이런 말이 국어사전에 있을까 자세히 보니 ‘우리말샘’이란 사전에 있는 것이고, 다시 우리말샘이 무엇일까 찾아보니 국립국어원이 운영하는 누리집으로 함께 만들고 모두 누리는 우리말 사전이라 한다.아하. 요즘 워낙 새롭게 만들어지는 말이 많다 보니 이렇게 집단지성의 힘을 모아 단어의 뜻을 정하는 그런 공개된 사전인 셈
한 달 전 계획한 여행 일정이 아이들 사정으로 남편과 단 둘이 가게 되었다. 둘 만의 여행이 처음이라 낯설고 모처럼의 여행이라 설렜다. 목적지는 경북 청송이다.삼월 마지막 날이었는데 용인에서 청송까지 벚꽃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경기도는 만개하고 있었고, 안동과 청송은 벌써 만개했다는 조금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산소까페 청송’ 청송 곳곳에 쓰여 있었다. 산소 가득한 숙소에 짐을 풀고 우리는 주왕산에 가기로 했다. 평일 오후라 사람이 거의 없었다. 주차하고 올라가는 그 길에도 벚꽃이 만개했다.입장료를 내고 주왕산에 오르니
날이 풀리니 슬슬 바빠지기 시작한다. 마당에선 드문드문 올라오고 있는 잔디 싹 사이로 보란 듯 민들레가 이미 꽃봉오리를 내밀고 있다.평소 같으면 바로 내쳐졌겠지만 따뜻한 햇볕을 쬐고 있노라니 이마저도 정겨워 보인다. 솔솔 부는 봄바람에 이웃의 밭에 뿌려진 거름 냄새가 요란하니 덩달아 올해에는 무얼 심을까 고민이 들었다.매번 그러하듯 고구마, 옥수수, 상추, 고추, 토마토, 대파 등을 으레 심을 것인지 아니면 심고 싶은 다른 것이 있는지 가족들에게 물어봤다.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것저것 키워보자 요구했던 아이들은 훌쩍 커버린 탓인지
전원마을로 이사한 지 벌써 7년째가 되어 간다. 처음 전원에 살기 시작할 때는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이사하고 몇 개월 동안 저녁 해가 지고 나면 집 앞 컴컴한 숲에서 멧돼지라도 나올까 봐 두려웠고, 마당 뒤편 어둑한 곳에서 누군가 숨어있을 것 같아서 현관문 밖에 물건을 가지러 갈 일이 생겨도 혼자서는 나가지 못했다.이사하고 얼마의 기간이 지난 어느 날, 손님 초대할 일이 생겨서 하루를 바쁘게 보내다 보니 2층 베란다에 널어놓은 빨래를 잊고 있었다. 어두운 밤이었지만, 밖에 나가 빨래를 걷으면서 바
스무살, 담배를 피워본 적이 있다. 호기심에, 어른들이 피우는 담배라는 것을 한번 물어봤다. 호기롭게 친구들과 담배를 한 개피씩 나눠 갖고 둘러앉아 불을 붙이곤 쭉 빨아들였다. 그 독한 냄새와 연기에 내 기관지는 심하게 요동치며 거부반응을 표현했고, 난 그것을 받아들여 그 이후로 절연했다.담배와의 두 번째 만남은 농활이라 칭하는 농촌봉사활동에서였다. 충북 보은의 농촌마을이었는데, 논농사보다 밭농사가 많았다. 주로 고추와 담배농사였다. 여름방학을 맞아 찾아간 농활에서 주로 빨갛게 잘 익은 고추 따기와 담배밭에 콩 심기가 주된 농사일이
성복천 대신 광교산으로 발길을 옮겼다. 산으로 향하는 첫걸음, 시선을 들면 보이는 큰나무가 있었다. 지금이 더 잘 눈에 띄는 이유가 큰 키와 함께 주렁주렁 달려 있는 수꽃차례 때문일 것이다.가까이 가서 보면 곧 길게 늘어뜨릴 수꽃차례와 잎눈 씨앗을 날리고 벌어져 있는 작은 솔방울, 마른 잎들이 나무 한 그루에 다 모여 있었다. 줄기는 매끈하지가 않았다. 쩍쩍 갈라진 수피도 그렇지만 군데군데 박힌 옹이와 맹아지는 그 삶이 그리 녹록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듯했다.물오리나무다. 산에 가보면 심심치 않게 보이는 나무다. 수꽃차례 사진을 찍고
길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다. 머릿속이 텅 비고 멍하다. ‘무엇을 어떻게 할까?’ 갈피를 잡을 수도, 주제로 삼을 거리조차 떠올리기도 힘들다. 난감한 상황이라는 걸 인지하고 왜 그런지 이것저것 핑곗거리를 찾아보지만 소용없다. 게으름이 발목을 잡는구나.유난히 여느 해보다 눈도 많이 내리고 추웠던 지난겨울, 어느 날은 눈이 많이 와서, 어떤 날은 날이 너무 추워서, 또 어떤 날은 너무 피곤해서, 바빠서 등등 집 밖을 안 나갈 궁리를 찾았고 그런 궁리는 잘도 찾아졌다.무언가 할 거리를 찾는 부지런한 남편도 지난 연말부터 바빠진 회사 일에
2015년, 남편이 정년퇴임을 하고 그 이듬해에 처인구 원삼면에 작은 전원주택을 지어서 이사했다. 두 남매를 결혼시키고 할 일을 다 했다는 홀가분함도 있었지만, 일 년이면 몇 번씩 돌아오는 제사와 집안 대소사를 쫓아다니다 보니 많이 지쳐 있었다.마음을 편히 쉬게 할 쉼터가 필요했기에 우리 부부는 도시의 편안한 생활을 뒤로하고 손이 많이 가는 전원생활을 선택하게 되었다.200여 평 되는 대지에 집과 잔디밭을 작게 만들고, 나머지는 텃밭을 만들어서 봄부터 가을까지 고추며 배추, 쌈채류, 토마토, 오이, 호박 등 20여 가지 채소들을 심
어렸을 때 다시 태어난다면 새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날개를 쭉 펼치고 거칠 것 없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는 자유의 상징 같았다.저렇게 맘껏 날아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그런가, 어른이 된 지금도 새가 좋다. 다른 동물들에게선 예외가 있는 호불호가 새에게는 없다. 그저 모든 새가 좋다. 흔한 참새도 귀엽고, 시끄러운 직박구리도 반갑고, 거대한 날개를 가진 말똥가리는 사랑한다.이렇게 새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협동조합 문화와함께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강사로 참여해 용담호수의 새 이
봄날 같던 날씨는 어디로 사라지고 한파가 며칠째 기승이다. 산도 강도 길도 어느 곳 하나 얼어붙지 않은 곳이 없다. 거의 매일 걷던 성복천도 추위로 며칠 동안 못가고 있다.그러다 문득 사진같이 각인된 올 겨울 성복천의 모습이 떠올랐다. 봄에 걸쳐 여름까지 성복천은 흰뺨검둥오리의 산란과 새끼 키우는 모습에 사람들은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올 겨울 성복천에는 백로들이 사람들의 걸음을 멈추고 휴대폰을 들게 했다.성복천에 항상 머무르는 작은 백로인 쇠백로는 그렇게 무리 지어 생활하지 않았는데, 이 백로는 여러 마리가 무리 지어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