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를 그리며 생각했다. ‘요즘은 참 시도 때도 없이 해바라기가 피는구나!’ 하고. 미술이란 시각적·조형적인 모든 아름다움을 통칭하는 것이리라! 아름다울 미(美) 꾀 술(術). 아름다움을 꾀하는 삶을 나는 미술이라 말한다. 오늘도 나는 미술 속에서 마술 같은 아름다움을 꾀하고 싶다. 사랑도 젊음도 신의도 모래시계처럼 닳아 없어지는 것이지만 다시 뒤집어 채우고 형성하고 이어가야만 또 다른 소중한 삶의 형태를 이룰 수 있겠지.‘팜 카밀레’에 갔었다. 풍접초, 터키블루 빛깔의 수많은 수국, 갖가지 빛깔의 델파늄, 에키네시아, 눈처럼
발레리나의 토 슈즈같은 파란 가죽구두를 신고 나갔다. 비에 목욕을 한 꽃들 사이로 작은 새들이 무리지어 날아 다닌다. 아 기분 좋아! 단비라는 게 이런 거구나! 갈증에 겨워 푸석푸석한 땅을 적셔 꽃의 뿌리로부터 환희의 색감을 밀어내게 하는, 바로 그런 거였구나! 수천 번 수만 번 빗방울을 뿌려주어 꽃을 미소짓게 해준 단비. 그 단비 머금은 꽃을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의 그림 제자께서 싹둑 잘라 수업시간에 가져오시어 내민다.“선생님께서 꽃을 좋아하셔서 잘라왔어요”비닐 봉투 안에 분홍 낮달맞이가 한가득 들어있다.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으나
보내기 아쉬운 봄이 막바지 절정이다. 다른 지역보다 다소 늦게 피어나는 나의 화실 뜨락은 푸른바다의 부서지는 포말처럼 하얗게 피어있는 이팝이 3층 지붕까지 닿아있다. 공조팝은 또 어떠한가! 꿈많은 신부의 드레스가 이토록 우아하며 찬란할 수 있을까? 말발도리가, 수레국화가, 독일붓꽃이, 그리고 각양각색의 작약이 마치 경주하듯 피어 화실 건물이 꽃에 휩싸여 있다.제자들도 밖에서 빙빙돈다. 향기 맡고 꽃을 만지며 모양을 살피며 말한다. “해당화 향기도 그리고 싶어. 담아서 집에 가져갈 수 있음 좋겠다.” 장미과의 꽃들을 한데 모아 심어
“안녕 꽃들아, 봄이 되니 어김없이 솟아 나왔구나! 그 딱딱한 땅을 뚫고 짙은 향기로 피어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니? 내가 그려주마. 하얀 백퍼센트의 코튼종이(Arches) 위에 너의 향기를, 그 가녀린 꽃잎을 그려주마. 복을 담는 복주머니 위에도 너를 그리고, 복을 싸는 조각보 위에도 그려주마. 그리고 복을 지키는 골무 위에도 네 향기를 얹어 주마. 민들레야 모란아 많은 꽃들아. 우리 함께 꽃의 언어로 말하고 향기 가득 뿜으며 이 계절을 노래 부르자.”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던가! 이름은 봄이라 했는데 한겨울의 냉기가 온 뜨락에 가득하다. 화폭 안에 옅은 핑크(brilliant pink)의 작약(peony)을 가득가득 그리며 봄을 부른다. 새벽 4시, 혹은 새벽 5시부터가 나와 화폭의 만남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신께서 우리에게 축복처럼 내리신 아름다운 꽃과 유년시절 엄마의 향내가 배인 조각보, 골무, 그리고 복주머니들과 배치하다 보면 어느새 향기로운 아침이 나의 주변을 감싼다
신기하기도 하지! 낙엽을 걷어내니 그 속에서 꿈틀대며 솟아오른 꽃무릇, 꽃범의꼬리, 구절초 등의 어린 싹들이 가녀린 연둣빛 얼굴을 내밀며 인사한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햇살은 고른 분배를 하고 있고, 겨우내 나의 화실 마당을 들락거리며 지인들이 살며시 놓고 간 먹이를 배부르게 먹어 살이 통통 오른 고양이가 졸린 눈으로 봄 햇살과 조우한다. 수선화, 영춘화, 돌단풍, 산수유는 벌써 뜨락에 자신들의 영역을 넓히며 피어있다. 화가들은 현실 속에서 상상을 한다. 아마도 그것이 창조의 원동력일 것이다. 왜냐하면 깽깽이풀과 수선화 등을 보고
어느 봄날, 너무나 나른해 스르르 눈이 감기던 날, 그 긴장과 나른함을 동시에 깨는 꽃과 마주했다. 멀리서 느껴지는 고혹적인 능수매화의 향기! 매화는 그렇게 향기로 다가와 말한다. 긴 겨울이라는 터널을 지나오니 향기로운 봄이 기다리고 있었노라고.꽃은 나의 깊고 무한한 추억의 심연 속에서 탄생했다. 어머니의 무명 행주치마 같은 찔레꽃, 삼라만상 위에 변화무쌍한 인간세계와도 같은 수국, 부귀롭지만 품위를 잃고 싶지 않은 모란, 먼 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리움의 대명사 도라지, 그리고 꽃 꽃 꽃···꽃은 말없이 억겹의 삶을 바라보